미국 성공회, '발견주의 원칙'과 관계 단절 선언하다
미국 성공회, '발견주의 원칙'과 관계 단절 선언하다
  • 안맹호
  • 승인 2009.11.10 03:0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대륙 정복의 근거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일'

미국 원주민들에게 '2009'년의 의미는 남다르다.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주변부로 밀려있던 원주민 문제가 다양한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 내면서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기독교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미국 원주민 관련 이슈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북미 원주민 선교사(Dana Ministries)이자, 미주장신대에서 '미국 원주민 선교학'을 가르쳐온 안맹호 목사가 최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미국 원주민 이슈를 몇 차례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 주)

미국 성공회가 '발견주의 원칙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미국의 정치사는 물론 기독교 선교사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번 선언은 지난 7월 애너하임에서 열린 미국 성공회 총회에서 나왔다. 'Repudiation of Doctrine of Discovery(발견주의 원칙과의 관계 단절)'라는 명명된 이 결의안은 총회에서 발의된 총 419개의 결의안 가운데 단연 돋보였다. 성공회 총회는 '발견주의 원칙'이 결코 복음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충 설명까지 덧붙였다.

   
 
  ▲ 성공회는 이번 총회에서 '발견주의 원칙'이 결코 복음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발견주의 원칙'이란?

'새로 발견되는 땅의 소유권은 발견한 국가에 귀속된다'는 것이 '발견주의 원칙'의 핵심이다. 교황의 '회칙'(bull)이 그 정당성을 보증했다.

발견주의 원칙의 기원은 15세기로 거슬러간다. 당시 팽창주의에 의한 발전을 유지해 온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새로운 영토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십자군전쟁 이후 이슬람 세력에 의해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무역로가 막혀버렸다. 때문에 새로운 항로 개척은 절실한 문제였으며, 팽창하는 인구와 이로 인해 끊이지 않던 유럽의 국경 분쟁은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고민거리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영토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으며, 당시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경쟁적으로 이 대열에 참여했다. 결국 두 나라는 그들의 영토 소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게 되고, 영토 확장이 기독교 선교를 위한 것임을 내세우며 분쟁의 조정자였던 교황의 회칙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또 다시 맞부딪혔다. 마침 새로운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스페인 내의 발렌시아 출신이었고, 당시 스페인 왕과 친분이 돈독한 관계이기도 했다. 이에 교황은 세 차례에 걸친 회칙 제정으로 스페인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그 세 번째 회칙이 그 유명한 '인터 체테라'(Inter Caetera Bull)다.

이후에도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 경쟁과 관련하여 여러 회칙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 회칙(인터 체테라)은 '발견주의 원칙'의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서 신대륙과 관련된 법적 청구권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회칙이 된다.

'발견주의 원칙'과 원주민들의 거센 저항

   
 
  ▲ '발견자 우선주의'는 오늘날 북미 대륙 원주민과 관련된 수많은 불행한 역사의 불씨로 작용했다. (출처 : m2bulls.com)  
 
'발견주의 원칙'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서구의 비서구 지역을 점령 및 약탈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음은 물론, 이후 제국주의적 침탈을 합법화하는 등 전 세계적 비극의 씨앗이 된 것은 불문가지이다.

영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신대륙의 패권을 쟁취하나 이후 영국 또한 신대륙에 대한 토지청구권의 법적 근거를 '인터 체테라'와 여기에 포함된 '발견주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지금의 미국의 영토권에 대한 근거 역시 '발견주의 원칙'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미주 대륙의 원주민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발견주의 원칙'을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이 원칙의 근거인 회칙 '인터 체테라'를 최소화하도록 전 세계적 압력을 행사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성공회의 '발견주의 원칙'과의 관계 단절 선언은 역사적인 사건이고, 500년 이상 당연시 되어왔던 신대륙 정복의 근거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일이다. 뿐만 아니라 성공회 총회가 이러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발견주의 원칙과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그것이 복음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명시하며 기독교 선교가 취해야 할 태도까지 명시했다.

이는 아무리 기쁘고 좋은 소식이라 할지라도 기쁘고, 좋은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선교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시에 선교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서 선교지 중심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할 것을 촉구하는 우회적 메시지인 것이다. 

안맹호 / 북미 원주민 선교사(Dana Ministries)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황성기 목사 2009-11-11 15:39:49
미국 성공회의 용기있는 결단, 안맹호 선교사님과 박지호 기자의 수고에 엄청난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안맹호 선교사님의 지난 14년 여간 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한 수고와 희생과 헌신의 결실이 드디어 여기 저기서 직간접적으로 맺히게 되는 것을 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흐뭇해 합니다. Happy Thanksg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