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감사'의 날인가 '통곡'의 날인가
추수감사절, '감사'의 날인가 '통곡'의 날인가
  • 안맹호
  • 승인 2009.11.21 2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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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클린턴 이어 11월을 '원주민의 달'로 복원

미국 원주민들에게 '2009'년의 의미는 남다르다.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주변부로 밀려있던 원주민 문제가 다양한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 내면서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기독교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미국 원주민 관련 이슈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북미 원주민 선교사(Dana Ministries)이자, 미주장신대에서 '미국 원주민 선교학'을 가르쳐온 안맹호 목사가 최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미국 원주민 이슈를 몇 차례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 주) 

1997년 11월 초 매사츄세츠 주의 플리머스에서는 한 무리의 인디언들이 시위를 벌였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잘못된 명절이라고 주장하면서 격렬히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의해 저지됐고, 이들 중 25명은 구속되는 사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이들의 시위가 타당하다고 인정한 것은 물론, 이들의 시위를 정례화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법정 비용과 기타 비용으로 13만5,000불을 배상하라는 명령까지 시 당국에 내렸다. 이 시위는 다음해인 1998년 11월에도 계속되었으며 지금까지 이 행사는 지속되고 있다.

12년째 계속되는 추수감사절 반대 시위

전통적으로 11월은 감사의 달로 지켜왔고, 특히 네 번째 목요일(금년에는 26일)은 오랜 세월동안 당연히 지켜온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다. 저마다 감사와 축하로 시간을 보내는 추수감사절을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저항하는 미국 원주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1621년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처음으로 접촉했던, 그리고 청교도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여 도와주었던 인디언이 왐파노악 족이다. 반대 시위에 전면에 선 이들이 바로 왐파노악 족 인디언들의 직계 후손들이다. 이들이 추수감사절 반대 시위를 한 것은 그렇게도 헌신적으로 청교도들을 도왔던 그들의 조상이 해가 지나면서 백인들에 의해 몰리기 시작하면서 땅에서 추방당하고, 학살당하는 참혹한 역사 때문이다. 이들은 오늘의 추수감사절이 상당 부분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 1621년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정성을 다하여 도와주었던 인디언이 왐파노악 족이다.  
 
사실 추수감사절 반대 운동은 1970년 동 부족의 일원이었던 프랭크 제임스(Frank James)에 의해 우연히 시작됐다. 그는 당시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플리머스에서 주최한 추수감사절 행사에 원주민 대표로 연설을 요청받았다. 그러나 저녁 만찬 직전에 그의 연설문이 공개되어 주최 측에서 그 내용을 문제 삼았으며, 내용을 수정하도록 요청하였지만 제임스는 그 요청을 거부하고 그 행사장을 떠났다.

그는 곧바로 마사소이트(1621년 청교도들이 도착할 당시의 추장)의 동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서 플리머스 시가지를 내려다보면서 그 연설문을 낭독했다. 이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 반대운동인 '전 국민 통곡의 날'(The National Day Mourning)의 시작이다. 이 운동은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으며 11월 추수감사절에 열리는 행사의 규모는 날로 커져가고 있다.

화해를 도모하는 움직임들

1997년 11월 초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11월에는 미국 원주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에서 11월을 '원주민의 달(National Native American Heritage Month)'로 선포했다. 그러나 올해에 들어와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자로 부시 정권 시절 중단되었던 '원주민의 달'을 재차 확인하는 선언문을 대통령령으로 발표했다.

   
 
  ▲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정권 시절 중단되었던 '원주민의 달'을 재차 확인하는 선언문을 대통령령으로 발표했다.  
 
이 선언문에서 대통령은 오늘날 미국은 원주민(First American)들의 헌신과 고통의 역사와 문화에 빚을 지고 있는데 반해 지금까지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무시되고 적절한 처우를 받지 못했음을 고백했다. 이러한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해서 연방정부는 재정 지원을 확대할 것이며, 앞으로 '대등한 관계'(nation-to-nation relationship)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동시에 올해부터는 넷째 목요일(26일) 다음날인 11월 27일(금)을 '원주민의 날‘(Native American Heritage Day)로 축하할 것을 전 국민에게 요청했다.

이런 정부 움직임이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듯 지난 11월 5일에는 '제1회 백악관-인디언 부족 대회'(The 1st White House Tribal Nations Conference)를 열었다. 연방정부 등록 564부족 정부의 수장에게 초청장을 발부하였으며, 이들 중 400명의 부족 정부 수장이 참여해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 20분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추수감사절에 비켜갈 수 없는 원주민 문제

왜 감사의 달에 이런 새로운 해석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는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추수감사절이 아무리 축하할 일이라 할지라도 그 진정성을 재확인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특히 추수감사절 바로 다음 날을 '원주민의 날'로 지정한 것은 "우리의 감사가 원주민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왜곡된다"는 보다 폭넓은 인식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지내는 일들로 인해서 그 특정한 의미가 희석되는 일들을 많이 경험한다. 소위 '개념의 인플레이션' 같은 것이다. 추수감사절에 왜 감사해야 하고 무엇을 축하해야 하는지 다시 돌아보는 일이 절실하다.

안맹호 / 북미 원주민 선교사(Dana 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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