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종교’ 숭배자들이 만든 [백설공주]
‘미인 종교’ 숭배자들이 만든 [백설공주]
  • 송병주
  • 승인 2009.11.26 21: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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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재해석 2…‘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름답게 숨어 있는’

한국 사회는 철저하게 ‘외모 중심의 사회’이다. 좋은 성적을 받고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소위 말하는 ‘얼짱’과 ‘몸짱’이 아닌 이유로 채용이 안 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젠 뉴스거리도 안 된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실험을 했는데, 미인이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이 나서 도움을 요청하자, 5분이 지나지 않아 차들이 5대가 줄지어 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이 서서 도움을 요청하니 1시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대가 잠시 섰다가 견인회사 전화번호만 주고 떠났다. 

외모 중심의 사회 속에서

   
 
  ▲ 외모 중심의 사회를 만들고, 여성의 가치를 외모에 있게 하는 주범으로 백설공주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길들여졌다고 한 누군가의 말이 맞다. 남성 중심의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한 잣대와 가치는 그저 ‘똑똑한 여자’보다 ‘예쁜 여자’였다. 과거는 용서할 수 있지만, 못생긴 건 용서할 수 없다는 농담 같은 말속에 여성을 향한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고, 남성이나 여성이나 얼마나 ‘길들여져 왔는지’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백설공주> 이야기는 여성의 가치는 외모에 있으며, 아름다운 외모는 ‘보호받을 권리이며 동시에 권력’이라는 도식을 보여준다. 외모 중심의 사회를 만들고, 여성의 가치를 외모에 있게 하는 주범으로 백설공주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백설공주 역시 외모 중심의 여성가치론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고생 끝에 희생자에서 결국 ‘승리자’가 되었다. 하지만 피해자에서 승리자가 된 이후 오히려 ‘가해자’로 발전할 위험성 또한 잠재되어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백설공에 대한 유감이라기보다 동화가 광범위한 사회적 선택을 얻게 된 배경에 대한 유감이 좀더 맞을 것이다.

생각 없고 얼굴만 예쁜 대표적 인물 백설공주

백설공주는 착하고 순진하고 얼굴 예쁘고 예쁜 것 좋아하며 별생각 없는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배가 고플 땐 남의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마음껏 먹고 그냥 잠을 자버린다. 그리고 왕비가 죽이러 올 수 있으니 난장이들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고,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는데, 세 번이나 속아 넘어간다. 그리고 속아 넘어가는 것이 모두 꾸미거나 예쁜 것과 관련된 것이다. 처음에는 독을 바른 빗이고, 두 번째는 예쁜 허리띠, 세 번째는 빨간 사과였다.

한마디로 외모를 꾸미는 것과 예쁜 것만 보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분별력을 잃는 모습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디즈니에서 만드는 동화를 자세히 보면, 세 번 모두 마귀할멈 분장이 똑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디즈니사가 돈 아끼느라 그렇게 한 것도 아닐 테고…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사람에게 세 번이나 당한다.

남성중심의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싶다. 매우 예쁘고 아름답되, 똑똑하거나 분별력이 없는 여성상 말이다. 순수하고 순진하다고 말하기에 너무 분별력이 부족한 모습, 그래서 남성의 보호 아래 움직이는 인형 같은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이지, 아름다운 여성상이라고 말하기에 큰 아쉬움을 느낀다.

‘미인 종교’의 창시자 일곱 난장이와 왕자

이 동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은 일명 미인 종교의 창시자들이다. 말 그대로 미인은 보호받고 숭배 받을 권리를 갖고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백설공주를 보호하고 숭배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난장이들이 만약 자기들의 음식을 다 먹어 치운 백설공주가 못 생겼었다면 과연 용서했을까? 단지 그대가 아름답다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된다. ‘면죄부’를 가진 것처럼, 보혈의 능력처럼 면죄의 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특히 독사과 사건 이후 보이는 모습은 가히 점입가경이라 할만하다. 한마디로 심하게 표현해서 ‘변태적’이다.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죽은 이후 일곱 난장이들은 묻지 않고 유리관에 보관하며 날마다 그녀를 쳐다보고 울었다. 죽었으면 묻어야지… 너무 아름다워서 땅에 묻을 수 없다니….

당시, 유리관은 구하기 불가능할 만큼 비싸고,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유리관에 두고 숭배하고 있으니 과히 종교적이다. 한 마디로 정상이 아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왕자는 변태의 극치다. 죽은 시신을 데리고 가겠다는 왕자, 미인이면 시체라고 가지고 가겠다는 모습에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다.

"과거는 용서할 수 있지만, 못생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남성들의 농담 속에 여성에 대한 이기적인 남성들의 욕망이 있다. 이것은 남성이라기보다, 수컷 본능에 충실한 왜곡된 시각으로 만들어가는 여성상일 뿐이다.

똑똑하고 분별력 가진 존재이기 보다는 예쁘되 분별력 없고, 남성의 보호아래 그저 집안에 있는 인형 같은 존재이길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컷에게 있어서 여성의 가치는 결국 지적 능력보다 외모로 결정되고 있고 여성의 상품화 현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왕자처럼 힘과 권력을 가진 존재가 미인을 소유할 수 있다는 도식이 드러난다. 미인 종교의 창시자인 수컷들은 정말 미인 숭배자들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원하는 유리관 속에 여성을 종속시키는 자들인가?

   
 
  ▲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난장이들이 만약 자기들의 음식을 다 먹어 치운 백설공주가 못 생겼었다면 과연 용서했을까?  
 
거울아, 거울아!

문화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 세계관을 스며들게 한다. 백설공주 같은 아름다운 동화도 남성중심의 사회가 여성의 가치를 외모에 둠으로 얼마나 평가 절하했는지 그리고 상품화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죽어서도 유리관 속에 모셔진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쇼윈도우에 전시된 마네킹이 떠오른다. 죽어서도 예뻐야 하는 그렇게 전시되어야 하는 모습에서 남성중심의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길들여 왔는지를 본다.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했던 왕비의 모습을 새삼 발견한다. 아름다운 외모는 그녀에게 권력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녀를 노예로 만들었다. 아름다워야만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마녀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본다. 과연 거울의 요정이 존재했을까? 그녀가 들은 거울의 요정의 음성은 결국 미와 권력의 도식 속에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왕비의 연약한 자아의 내면에서 들린 음성이 아니었을까?

이제 우리 백설공주도 나이가 들어갈 것이다. 젊은 날의 아름다운 피부와 발그스레한 볼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시체라도 예쁘기만 하면 모시고 갈려는 수컷 본능에 충실한 왕자와 평생 살면서 몸매는 망가져가고, 수많은 젊은 시녀들이 가득한 궁정 안에서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그녀 역시 거울 앞에 서서 ‘거울아, 거울아’를 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공주에서 왕비가 된 후 역시 마녀 복장을 하며 예쁜 아이 사냥을 시작하진 않았을까. 어쩌면 그녀 역시 외모 중심의 가치의 ‘피해자’에서 ‘승리자’가 되었지만, 또 다시 ‘가해자’로 가는 위험한 여정을 거치지 않을까.

가치관의 충돌 일으킨 <슈렉>
 
예쁜 왕자와 공주는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외모 뿐 아니라 성격까지 좋고, 용감하고 지혜롭기까지 했지만, <슈렉>은 이런 공식을 뒤엎었다. 배나오고 뚱뚱한데다 얼굴이 파랗고 못 생겼으며 성격까지 거친 슈렉. 거기다 말 많고 짜증스러운 당나귀까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캐릭터들로 에니메이션을 만들 때, 드림웍스의 제작자들조차 이것이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헐리우드와 디즈니가 만들어온 생각과 사고의 틀을 <슈렉>이 바꾸어버렸을 때 세상은 환호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러한 가치관과 세계관의 충돌을 기대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세계관의 출현은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환호하게 할 수도 있다. ‘인습과 틀’에 사람들을 가둬두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통제하는 생각과 세계관을 향해 돈키호테라는 말을 들어도 좋으니 달려들어 들이받고 싶다. 이런 시도를 위해 지도 밖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을 기대해본다.

그런 점에서 백설공주는 의도적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 그 속에 남성중심의 사회가 여성을 길들이는 ‘아름답지 못한 방법이 아름답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송병주 목사 / LA 선한청지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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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기 2011-03-16 23:03:36
참 유익하고 재미있는 분석입니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면서도 은연 중에 잘못된 인생관과 가치관을 심어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젖어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잘못된 생각들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