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적이고 대결적인 한국 선교
호전적이고 대결적인 한국 선교
  • 정민영
  • 승인 2009.12.0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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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한국 선교의 미래를 위한 제안 (1)

정민영 선교사(국제 위클리프 선임 부총재)는 한국 선교계를 "선교적 사사시대"라 일컬었다. 개인이나 개별 교회나 단체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피차 간섭하지 말자는 식의 백인백색의 주관주의가 판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선교사는 한국 교회의 선교 행태를 전반적으로 평가하고 교정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안 도출을 위한 정리를 시도했다. 2007년 아프간 사태 직후 작성한 글이지만, 여전히 한국 선교계에 유효하기에 앞으로 6가지의 주제별로 연재해나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1. 호전적·대결적 접근의 문제
2. 영적 전쟁의 무교적 해석 문제
3. 과시적·고지론적 접근의 문제
4. 선교적 동인(motivation) 및 문화 침식의 문제
5. 동원–훈련–현장 체제의 불균형 문제
6. 단기선교의 문제

필자가 속한 국제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WBTI: Wycliffe Bible Translators International)는 최근 세계 선교계에서 인정받는 선교학자들을 초청하여 WBTI의 사역전반에 관해 선교·신학적 관점과 전략적 차원에서 평가 받는 자문회의(Missiological Consultation)를 마련했다.

작년에 이어 금년 여름에 속개된 제2차 모임에서는 특히 비서구 선교의 동향과 기회 및 도전을 심도 높게 다루게 되었는데, 비서구교회의 호전적이고 대결적인 선교 행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과거 서구 교회가 저지른 십자군운동으로 지난 1000년간 회교권의 등을 돌리게 만든 뼈아픈 시행착오를 비서구 선교가 답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었다.

십자가의 도는 본질적으로 싸움이나 경쟁이 아닌 희생과 섬김이며, 적을 파멸시키는 패권주의라기보다 원수까지 사랑함으로써 승리하는 역설(paradox)이다. 복음의 현저한 특징은 투쟁이나 힘겨루기가 아니라 '십자가의 도'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십자가는 복음의 본질이지만, 십자군은 파행이다.

회교권 선교가 어려운 것은 그들의 신앙 신조가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해진 교회의 역사적 잔혹 행위에 기인한다. 우리가 회교에게 느끼는 폭력성만큼이나 우리에 대한 그들의 피해의식도 크다. 수년 전 로마 교황청이 과거 십자군운동의 과오를 사죄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십자군이 복음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동안 회교도들을 향한 사랑과 희생으로 십자가의 도를 구현했던 성 프랜시스(Francis of Assisi)와 레이먼드 럴(Raymond Lull)이야말로 지금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복음의 진정한 차별성을 보여줄 올바른 모델이다.

복음 사역, 특히 선교를 주로 '전투 이미지'로 부각하는 시도에 대해 최근 복음주의 선교계가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1일부터 3일까지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열린 '선교 언어 및 은유에 관한 심의회'(The Consultation on Mission Language and Metaphors)는 이렇게 선언한다.

"긍정적 은유는 선교와 전도의 본질적 도구다. … '전투'라는 은유는 우주적·영적 의미에서 성경적이긴 하지만 기독교 선교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오용돼왔다. 그것은 갈수록 선교 사역의 생산성을 저해하고, 종종 현지 신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교회의 반대자들에 의해 사역을 방해하고 고발하는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표현들의 부적절한 사용의 즉각적 중단을 지지한다. … 대안으로 사용할 표현들에는 축복, 치유, 초청, 파종 추수, 어획(fishing), 가족 관계의 회복, 화해, 평화, 대사 등이 포함된다."

같은 해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로잔세계복음화운동(LCWE)과 아프리카 복음주의협의회(AEF)가 공동으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전략회의(‘Deliver Us from Evil’ Consultation)를 개최했다. 이 전략회의에서도 유사한 대안이 제시되었다. 

"우리는 영적 씨름에 관한 언어의 사용에 주의와 민감성을 요청한다. '영적 전투'라는 용어는 성경적이긴 하지만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거슬리는 표현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모순돼 보인다. … 선으로 악을 이기고 사랑으로 사람들을 얻는 '온유한 침투'를 통해 하나님을 위한 긍정적 진지를 구축하는 것은 사탄의 보루를 파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수년 전 한국을 방문한 선교학자 폴 히버트(Paul Hiebert) 박사는 호전적이고 대결적인 양상으로 전도와 선교를 전개하는 것은 성경이 아닌 그리스–로마(Graeco–Roman) 및 할리우드 세계관의 영향이라고 경고했다.

주님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하릴없이 고난을 당하셨고, 오른 뺨을 때리는 자를 되받아 치지 말고 오히려 왼 뺨을 내밀라고 가르치셨으며,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를 도리어 책망하셨고, 자신을 무고하게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에게 천군천사를 파견하지 않고 용서하셨다.

한국 선교는 낮아짐으로 높아지고 섬김으로 권위를 세우며 죽음으로 사는 역설적 십자가의 도를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

정민영 / 국제 위클리프 선임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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