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가는 독서가다
묵상가는 독서가다
  • 김기현
  • 승인 2009.12.03 14:5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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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사람을 만들고, 독서는 사람을 키운다"

성도들이 생각 없이 산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많지만 딱 두 가지만 얘기할까 한다. 하나는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 관련 책을 출판한 것을 계기로 글쓰기 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매주 서평 하나와 자유 주제로 에세이를 하나씩 써서 제출한다. 내가 일방적으로 강의하기보다는 참석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자기 글을 낭독하고 다 같이 합평을 한다. 지난주에 한 분이 '나의 독서 편력'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중 한 대목이 가슴 아팠다. "내 젊은 시절은 온통 회색빛이었고, 도망쳐 들어온 교회는 모든 세상 책을 덮게 했다." 기이하다. 책을 읽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책을 덮게 하는 교회라니!

어려서부터 아버지 서재의 책을 즐겨 읽었던 이분은 청춘의 청년기인 암울한 70년대와 80년대 상황 속에서 카뮈를, 카프카를,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절망하던 자신을 달래고, <창작과 비평>, 이청준, 조세희, 이문구를 읽으며 역사에 대한 눈을 뜨고 희망을 꿈꾸었다. 그러다가 예수 믿고 결혼하고 사모가 되었다. 시대의 어둠과 혼란, 공허로부터 만난 기독교 신앙은 희망의 근거요, 증거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찾아온 교회는 지성을 그리스도의 발아래로 인도하지 못하고, 발치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물리쳤다. 슬프게도 교회는 지성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경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은 채 주일날 교회에 오는 이들이 50%가 넘는다는 통계를 보았다. '성경도 안 읽으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인가' 라는 의문보다도 '그렇다면 성경을 규칙적으로 묵상하는 이들은 전체 신자 중 얼마나 될까' 그게 더 궁금했다. 그리하여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시냇가 심은 나무들처럼 열매 맺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 선교사가 오기 전에 성경부터 번역되어 성경으로 전파되고 세워졌던 교회의 역사는, 그리고 성경을 읽고 외우는 일에 서양 선교사들도 놀랄 정도로 뜨거웠던 열기와 전통은 지금은 어디로 간 건가?

이런 기막힌 현상은 좀체 찾아보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종교보다 책의 종교가 기독교요, 그리스도인은 다름 아닌 책의 사람들인 까닭이다.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 중심지인 비텐베르크와 칼빈의 제네바가 유럽에서 인쇄와 출판의 중심 도시로 발전했다는 역사는 과연 우리가 프로테스탄트인가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한국 개신교는 어떠한가. 기독교 신앙과 더불어 지성의 전당인 학교가 세워지고, 부흥회는 다름 아닌 말씀 사경회였다. 그만큼 지성적이었고 말씀을 사랑하는 이들이 얼마 전까지 우리 신앙의 선배의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주소는 성경도 읽지 않고 독서도 멀리한다. 이 둘은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것과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성경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가 독서할 리 만무하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가 어찌 성경을 읽을까. 성경을 읽는 이가 독서도 하고, 독서하는 이가 성경도 읽는다. 성경만 읽고 독서하지 않는 이가 드물게 있을 수 있으나 종내는 독서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 읽기와 책 읽기, 신앙과 지성, 묵상과 공부가 통합되어야 한다. 묵상가는 독서가이다. 이스라엘 신앙에서 둘은 하나다. 이사야서 말씀이다.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사 50:4) 학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limmud'는 제자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말씀을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이다. 동시에 지성을 다하여 하나님과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학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제자이다. 주 안에서 제자는 학자다.

나를 포함한 모든 주의 제자가 성서와 독서의 사람, 곧 '책의 사람들'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성서는 사람을 만들고, 독서는 사람을 키운다"는 문장을 얻고 즐거웠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라도 독서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그런 성도를 상상하면 기쁘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 바르트처럼 말한다. "한 손에 성경을, 다른 한 손에 신문을!" 존 웨슬리와 함께 기도한다. "한 권의 사람, 만 권의 사람 되게 하소서!" 그리고 삶으로 이 진리를 증언해야겠다. '묵상가는 독서가다라'는 진리를.

김기현 / 수정로침례교회 목사·<글쓰는 그리스도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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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us 2012-04-14 00:02:54
It's like you're on a msisoin to save me time and money!

Mattheus 2012-04-14 0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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