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를 빙자한 약탈 경고, 영화 [아바타]
선교를 빙자한 약탈 경고, 영화 [아바타]
  • 진민용
  • 승인 2010.01.09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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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의 문화 무시하는 서구 용병 선교사들의 제국주의 비판

   
 
  ▲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비타>. 전체적인 내용과 영상미, 그리고 기묘한 전개가 영화계의 거장다운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영화 홈페이지  
 
인류와 자연의 공존, 그 인과관계

영화 <아바타>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터미네이터> <타이타닉>등 대작을 만든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작품이라 관심을 가지고 봤습니다. 간혹 완성도가 떨어지는 그래픽 처리에 눈이 머물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영상미, 그리고 기묘한 전개로 인해 역시 영화계의 거장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흥행과는 별도로 이 영화에 숨어 있는 내용들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물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전작들도 '인류의 문명의 자만심이 가져온 자연의 심판'이라는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만, 이번 <아바타>는 보다 더 노골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존재는 '공존'이라는 대명제를 깔고 있지만, 지금껏 인류의 생존 방식은 '적자생존'의 그것이었습니다. 진화론자가 아니라 창조론자들까지 이런 방식을 유지하는 데 자신들의 전 생애를 바쳤고, 그것은 결국 종족 간 전쟁과 자연 파괴라는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죠.

이 영화는 그래서 인류의 뿌리인 '자연'과 '생명체'의 평등을 외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꿈이나 이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결국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이 최선이라고 인간은 세뇌당하고 있으니까요.

가상의 현실 <아바타>

'아바타'가 혹시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게임을 조금 할 줄 안다면 이해할 겁니다. 즉 온라인상에서 나를 대신하는 또 하나의 '나'가 바로 '아바타'입니다. 아바타는 어쩌면 현대인들이 꿈꾸는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아바타가 이기면 내가 이기는 것이며, 아바타가 죽으면 곧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의 나와 온라인의 아바타는 하나가 됩니다. 이미 일본의 게임 시장에서는 '아바타' 열풍이 불었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거나, 물고기를 키우고, 심지어 애인까지도 현실보다는 가상에서 사랑을 나누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특히 절망적인 현실 세계를 벗어나게 해 주는 '비상구'와 같은 역할을 하며, 자신의 실패를 아바타의 성공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이런 현상이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그야말로 '게임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사이에서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합니다.

   
 
  ▲ 가상의 '나'인 '아바타'는 절망적인 현실 세계를 벗어나게 하는 '비상구' 같은 역할을 하지만, 게임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영화 홈페이지  
 
기독교인들, 현실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아바타'를 만들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돌파하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만의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 부추김은 물론 목사들의 몫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는 설교 내용이 '현실을 부정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성경 내용 때문이겠지요.

즉 실상의 현실보다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좇아서 달려가는 행위를 기독교인들은 마치 '신앙인의 삶'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어 놓은 채 현실의 암울함을 잠시 잊어버리려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니체는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마치 신앙과 현실을 대립 관계로 만들어 이곳(현실)에서 멀어질수록 저곳(신앙)으로 더 가까워진다는 왜곡된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해 왔으며, 그 때문에 주변의 고통과 호소는 외면해 버리고 말았고, 결국 '자기들끼리의 세계'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철저히 이기적인 신앙인이 돼 가고 있습니다.

   
 
  ▲ 영화 <아비타>의 한 장면. 선교의 '깃발'이라는 미명으로 마치 적군을 무찌르고 그 전리품을 나눠 가지는 식의 전투적인 선교 방법을 성찰하게 한다. ⓒ영화 홈페이지  
 
제임스 카메룬 생애 최고의 영화 <아바타>

영화 줄거리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인간들은 지구의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의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차지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원주민 '나비'와 DNA 합성을 통해 새로운 '아바타'인 제이크를 탄생시키고, 그를 행성에 보내 원주민들을 이주하도록 설득하게 합니다.

그러나 제이크는 나비족의 공주인 '네이티리'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종족들의 삶을 체험하게 되면서 행성 '판도라'를 파괴하려는 인간의 음모를 깨닫고 인간을 배신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아바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그 꿈을 이루게 됩니다.

헐리웃 영화의 거장인 제임스 카메룬다운 스펙터클한 영상과 스토리가 압도적인 이 영화는, 이미 1995년부터 제작을 구상했지만 당시 기술적인 문제로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타이타닉>을 먼저 내놓았고, 그 후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골룸'을 보면서 기술력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바타>, 서구 강대국들의 '선교' 빙자한 '약탈'이 떠올라

저는 이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되짚어 봤습니다. 사실 영화 <미션>에도 등장하지만, 서구 세력의 '선교'는 '약탈'과 '노략질'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은인이라고 떠받드는 미국의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들의 공로를 무시하자는 건 아닙니다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를 순수한 '선교'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자료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선교사들이 보여 준 태도는 그들이 한국을 위한 선교가 아닌, 일본과의 정치적인 협력을 맺었다는 의혹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1895년 11월 11일 미국무성 국무장관이 밝힌 암호문에는 "한국의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는 것은 미국 선교사의 일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선교사로서 제3국 간 전쟁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태도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1905년 미국의 필리핀 점령과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상호 밀약이 있었다는 자료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발언에 나타나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지지 세력이 될 것이고, 한국을 차지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미국무성이 공개한 루즈벨트 대통령 발언)

일본은 미국 선교사들을 '양대인'이라고 불렀고, 이들은 한국 내에서 자유로운 선교 활동을 보장받으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선교사들은 한국인에 대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기도 했다.

"휴가 때 고향 가서 부모를 뵈어야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전도를 못하는 학생이 있다는 이유로 기숙생들에게 일주일 동안 밥을 주지 않고 주모자는 무기정학시켰다." (<동아일보> 1920년 4월 10일 자)

"선교사 허시모는 과수원에서 사과 하나를 훔쳤다는 이유로 여덟 살 김명섭 군의 얼굴에 염산으로 '도적'이라고 새겼다. 허시모는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극비에 시다무라 검사 담임으로 엄밀 취조를 하였다더라." (<동아일보> 1920년 4월 10일 자)

또 F. H. 해링턴이 1937년 뉴욕대학 박사 학위 논문 '개화기 한미 관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897년 가을, 선교사 빈튼은 그의 집 담장 공사를 일요일에 했다고 인부들을 마구 때려 몰아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규율을 깨는 것을 참지 못해 인부들을 마구 폭행하고, 연장을 빼앗아 창고에 가두었다."

그리고 알렌과 언더우드 선교사는 금광을 시작으로 철도 부설, 전기, 전철 부설 등 자신들의 이권을 챙겨 부를 축적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약탈 선교, 이젠 중단해야
 
지금도 여전히 서구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천연자원과 에너지들을 탐내고 있습니다.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이미 지구의 에너지원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에, 오지에서 생산되는 천연자원들은 열강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문제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교'라는 이름의, 타 민족의 '문명'에 우월감을 가지고 그들의 문화와 전통, 심지어 역사마저도 '뜯어고쳐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미개한 종족이라고 해도 역사와 전통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을 천사로 만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 스스로가 인간이 되기에 기꺼이 희생하셨습니다. 그것이 '성육신'이었고 최초 선교의 모범이었으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선교의 '깃발'이라는 미명으로 마치 적군을 무찌르고 그 전리품을 나눠 가지는 식의 전투적인 선교 방법, 그리고 한국 교회가 향하고 있는 그 방향만이 유일한 것인 양 절대화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식의 기독교는 그저 한국식 문화일 뿐 그 어떤 나라에도 본질과 무관한 이런 형태의 기독교를 '진리'라고 선언한다면, 그건 마치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돈 때문에 영혼을 파괴하는 용병들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 한국 <뉴스앤조이>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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