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주의 원칙' 꺽은 '제4세계 운동'은 어떻게?
'발견주의 원칙' 꺽은 '제4세계 운동'은 어떻게?
  • 안맹호
  • 승인 2010.01.17 19: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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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이 ‘교황회칙취소’ 외치기까지…운동의 물꼬 튼 뉴컴

미국 원주민들에게 '2009'년의 의미는 남다르다.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주변부로 밀려있던 원주민 문제가 다양한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 내면서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기독교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미국 원주민 관련 이슈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북미 원주민 선교사(Dana Ministries)이자, 미주장신대에서 '미국 원주민 선교학'을 가르쳐온 안맹호 목사가 최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미국 원주민 이슈를 몇 차례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 주)

최근 미국에서는 과거 원주민들이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009년 7월에는 미국 성공회가 서구 국가들의 신대륙 점령에 법적 근거를 제공했던 ‘발견주의 원칙(the doctrine of discovery)’을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나섰고, 8월에는  연방정부가 나서서 "인디언에 대한 연방정부의 공식적인 약탈과 악의적인 정책의 오랜 역사를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 원주민 출신 법학자인 스티브 뉴컴(오른쪽)은 버질 킬 스트레이트(왼쪽)과 함께 원주민법연구소(the Indigenous Law Institute)를 설립해 '교황회칙취소운동'을 이끌었다. (출처 : Indigenous Law Institute)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말 없는 저항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원주민들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일이다. 역사의 물줄기가 이렇게 흐르게 된 것은 헌신적인 공로자들 덕분이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스티븐 뉴컴(Steven Newcomb)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 당연시 되어왔던 ‘발견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엄청난 일을 만들어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교황회칙취소운동’이 힘을 더해가고 있는 데는, 그의 공로가 크게 작용했다. 

원주민 출신 법학자이자 탁월한 운동가인 뉴컴은 1992년, 버질 킬 스트레이트(Birgil Kill Straight)와 함께 원주민법연구소(the Indigenous Law Institute)를 설립하고, 당시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인터체테라’ 취소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인터 체테라'(Inter Caetera Bull)는 1492년 당시 교황이던 알렉산더 6세가 선포한 회칙으로 이교도 정복을 정당화하고 기독교 제국을 건설할 것을 명령한 것이 골자다.

뉴컴을 비롯한 이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교황청을 함께 압박해줄 것을 호소했다. 비록 소수의 운동가들의 움직임이었지만 논리적이며 법리적 정당성에 기초한 운동이었기에 날이 갈수록 힘을 얻어갔다. 하지만 교회(가톨릭 및 개신교)는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뉴컴은 1992년 초 오리건 포트랜드에서 열린 ‘미국 인디언 종교 자유법’(American Indian Religious Freedom Act)과 관련된 회의에 작은 기대를 걸었다. ‘발견주의 원칙’과 관련된 내용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뉴컴은 좌절했다. 동료 법학자인 메리 우드(Mary Wood)는 “차라기 내년 1993년이 인터체테라 500주년이 되는 해이니까 그 때를 겨냥하는 것이 어떨까”라며 뉴컴을 위로했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천주교 신학자 매튜 폭스(Matthew Fox) 박사가 강연을 하고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뉴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

“폭스 박사님, 1493년에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이교도들을 정복하고 기독교 제국을 건설할 것을 명령한 회칙이 있습니다. 내년이 그 500주년이 되는 해인데, 당신은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이 회칙을 공식적으로 취소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강연장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폭스 박사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물론 나는 교황이 그 일을 하려고 할런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성베드로성당에서 모든 금덩어리들을 가져다가 처음 그것을 빼앗아 왔던 원주민들에게 되돌려 주어야만 한다고 확신합니다.”

폭스 박사의 발언 이후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지만, 이 일 이후 폭스 박사는 가톨릭교회에서 파문되고 말았다.

'제4세계'라는 국제적 연대 움직임 만들어

원주민 사회 및 NGO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교황회칙취소운동’(burning papal bulls movement)을 통해 원주민 세계가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뚜렷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직적이고 학술적인 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밟아가는 양상이다.

미국과 서구 사회에서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1960년대, 미국 원주민들 또한 권익 회복을 위한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수백 년간의 억압과 수탈의 역사 속에서 생존의 소망까지도 위협 당했던 이들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전 세계의 원주민들을 연결하는 ‘제4세계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1~3세계 속에 묻혀서 주목 받지 못했던 이들은 1973년 UN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상호 연대를 도모하고 있으며, UN에서는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을 개발하고 있다.

이 운동은 단지 원주민들의 권리 향상 차원을 넘어서 정체성 회복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차원으로 발전한다. 원주민 운동은 점차 조직적이고 학술적인 진보를 도모하기 위해 학계와도 긴밀한 연대를 하게 된다.

   
 
  ▲ 인터체테라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원주민 학자인 바인 델로리아(Vine Deloria).  
 
1972년, 원주민 학자인 바인 델로리아(Vine Deloria Jr.)가 <God Is Red>라는 저술에서 인터체테라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였으며, 1984년 미국 원주민 기독교연합단체인 ‘아나사지연합(ANASAZI Alliance)’에서는 교황청에 인터체테라 취소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이 운동은 1992년에 들어서 본격화됐다. 콜럼버스가 히스파이올라 섬에 도착한 지 500년이 되던 해였기에 백인 정부는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원주민들은 기념행사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고, 이후 전 세계의 원주민들 사이에 ‘교황회칙취소운동’(burning papal bulls movement)이 본격화되었다.

교회, 비로소 응답하기 시작하다

원주민 운동가들이 백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끈질긴 노력은 점차 반응을 얻게 되었다. 1999년 2월에 ‘그리스도연합교회’(UCC, United Church of Christ)는 교단의 이름으로 “가톨릭의 양심 있는 사람들과 여타 종교 기관에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설득하여 2000년까지 인터체테라를 취소하도록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후 원주민법학회 회원들은 활동에 박차를 가하며 운동의 격을 높이고 있다. 1999년 UCLA 캠퍼스에서 열린 가톨릭전국대회에 이들은 대거 참여하였으며, 가톨릭 평신도협의회의 이름으로 ‘인터체테라 취소를 위한 호소문’을 안건에 상정하였다.

이 대회의 주제는 ‘희년의 정의’(Jubilee Justice)였다. 원주민들이 ‘법과 정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운동에 임하고 있다. 이들은 “제발 교회는 법과 정의에 입각해서 행동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교회 안팎의 일이 뒤바뀐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혹시 오늘날 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호감도의 변화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이 문제는 서구의 미주 대륙 지배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물론, 기독교 선교의 정당성 문제와 관련하여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질곡(桎梏)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했고 생각한다.

원주민들의 운동을 바라보는 기독교의 입장은 궁색하기만 하다. 이들이 정의와 법을 들고 나왔고, 반면 대다수의 교단에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원주민 세계가 주장하는 내용과 기독교가 대응하는 모습의 질적인 관계이다. 원주민들은 법과 질서를 요구하고 있음에 반해 신대륙 정복과 약탈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정복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던 기독교의 논리는 점점 타당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안맹호 / 북미 원주민 선교사(Dana 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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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sdfasdf 2010-01-18 17:49:50
aset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