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선교사가 전하는 아이티의 참상
현장 선교사가 전하는 아이티의 참상
  • 박지호
  • 승인 2010.01.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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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그레이스미션'의 김현철·백세현 선교사

'죽음의 땅', '공동묘지', '전쟁터'…. 서인도 제도에 있는 작은 나라, 아이티공화국(이하 아이티)앞에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아이티를 강타한 초대형 지진은 최대 20만 명의 사망자와 300만 명의 이재민을 만들어냈다. 지진이 아이티를 흔든 지 열흘, 그 상처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백세현·김현철 선교사(월드그래이스미션 소속)가 아이티 지진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소식을 전해왔다. 백 선교사와 김 선교사는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교회연합봉사단, 한국 취재진, 도미니카 주재 아이티 영사 등 20여 명과 함께 생필품과 의약품 등 구호물자를 가지고 아이티로 방문했다. 다음은 백 선교사와의 전화 인터뷰와 김 선교사의 글을 종합해 재구성한 현지 소식이다.  

   
 
  ▲ 다친 딸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아이티 주민. (사진 제공 : 백세현)  
 
15일 오전 도미니카의 수도 산토도밍고를 출발해, 국경도시인 말파스를 거쳐 아이티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다. 한국교회연합봉사단에서 구입한 2만 불 상당의 의료용품, 식수, 음식 등을 트럭 4대에 나눠 실었다. 지진으로 도로가 파괴된데다 트럭이 느리고 고장까지 나는 바람에 시간이 더욱 많이 걸렸다.

아이티로 들어가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도미니카 주재 아이티 영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도미니카에서 아이티로 향하는 차량은 거의 없었지만, 국경을 넘어 도미니카로 향하는 아이티 주민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가 입국할 당시, 도미니카는 특별한 검문 없이 아이티 주민들을 받아들였다. 

'대통령도 도미티카로 피신했다', '다리가 끊겨서 교통이 두절됐다', '치안이 불안하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난무했다. 국경을 넘어오는 아이티 주민들을 붙들고 치안이 불안하냐고 물으니 큰 문제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져버렸고, 그 속에 사람들이 있지만, 구조할 수 있는 인력이 없기에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사진 제공 : 백세현 선교사)  
 
아이티 방문 둘째 날(16일), 대통령궁으로 이동하는 동안 피해 현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도시는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져버렸고, 그 속에 사람들이 있지만, 구조할 수 있는 인력이 없기에 손도 못 대고 있었다. 20만 명이 죽었을 거라는 정부의 추측이 빈말이 아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가난한 이들이 주로 사는 산비탈에 있던 동네는 그야말로 전멸이었다. 생존자가 있을 법한 대형 건물이나, 백인들이 모여 사는 부자 동네 등 몇 곳에서만 구조 작업이 진행됐다.

시체가 쓰레기처럼 길바닥 곳곳에 쌓여 있었다. 대통령궁 근처에 무너진 성당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가 어찌나 심했던지 아이티 사람들은 먹을 것보다 우리가 끼고 있는 마스크를 달라고 할 정도였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현지 선교사는 시체가 너무 많아 포크레인으로 집단 매장했다고 전했다.

   
 
  ▲ 길거리에는 시체가 나뒹굴었다. 냄새가 어찌나 심했던지 아이티 사람들은 먹을 것보다도 우리가 끼고 있는 마스크를 달라고 할 정도였다.(사진 제공 : 백세현 선교사)  
 
물건을 가져오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나눠주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물건을 나눠주다 자칫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대통령궁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고, 대통령궁 앞에 있는 커다란 공터에는 수천 명의 이재민이 이미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져온 구호물자를 어떻게 나눠줄 것인가 상의하다 대통령궁 앞으로 갔다. 유엔 측에 대통령궁 앞에서 물건을 나누어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으나 위험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신 다음날 근처에 있는 스타디움에 있는 이재민들에게 물자를 나눠주자고 유엔 측은 제안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군수 담당 장교인 이선희 소령이 나서서 유엔군과 경찰이 우리를 호위해주도록 조치했다. 다음날인 17일 아침 유엔군의 보호 아래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스타디움으로 갔다. 유엔군 차가 앞뒤로 호위하고 버스와 트럭 2대가 뒤따랐다. 스타디움에 도착해, 트럭과 버스가 들어갔지만 유엔군 차량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살벌한 분위기 탓이었다. 스타디움 안에는 수많은 난민들이 있었고, 이미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그 곳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스타디움에서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것도 실패했다.

   
 
  ▲ 병원마다 환자가 차고 넘쳤다. 병실이 부족해서 환자들은 천막을 치고 드러누워 있었다. (사진 제공 : 백세현 선교사)  
 
이후 트럭에다 약품을 실고 시티 솔레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들어가 보니 환자가 차고 넘쳤다. 병실이 부족해서 환자들은 천막을 치고 드러누워 있었다. 골절상을 입은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머리나 발을 다친 사람이 많았다. 붕대와 석고와 마취제가 턱없이 부족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절대 부족한 상태였다. 마취제와 마취의사가 없어 수술을 못하고 길바닥에 신음하고 있는 환자가 부지기수다. 환자들은 밤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병원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갑자기 두 명의 아이티 젊은이가 총을 꺼내들곤 가진 걸 다 내놓으라며 소리쳤다. 그들은 순식간에 가방 2개와 현금을 털어갔다. 치안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치안이 악화되고 있지만, 당분간 안정을 찾기는 힘들어 보였다.

구호물자 배급이 더뎌지면서 굶주린 이재민들이 식량 창고를 약탈하는 등의 폭력 사태가 잇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전 세계에서 구호물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이를 실은 트럭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정작 물자가 사람들의 손에 전달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며칠씩 굶은 군중들은 유엔군 초소 앞이나 구호물품 배급 장소로 몰려들었다. 이때문에 18일 아침에는 비행장 앞에서 소요가 일어나 이를 진압하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소요로 일대 교통이 마비되고, 시내 곳곳에선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 머리나 발을 다친 사람이 많았다. 붕대와 석고와 마취제가 턱없이 부족했다.(사진 제공 : 백세현 선교사)  
 
많은 단체들이 아이티로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고, 한국에서 의료팀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위험이 많이 따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전에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 상황에서 아이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마취제, 마스크, 상처에 바르는 약, 붕대 등과 같은 의료용품이다. 

계속 되는 여진도 문제다. 머무르는 동안 수차례의 여진을 경험했다. 16일, 새벽에는 침대와 옷장이 흔들릴 정도였다. 여진이 있을 때마다 위태로웠던 건물들이 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문에 아이티 주민들의 거의 모두가 길거리나 공터에서 잠을 자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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