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 수 200명 넘기려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교인 수 200명 넘기려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 박지호
  • 승인 2010.01.2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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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일 목사, [성장을 확장보다 변화로 측정하라] 통해 물량적 목표 경계

   
 
  ▲ 어느 한인 교회 벽에 걸린 비전 선언문.  
 
가히 '숫자가 교회를 이끈다' 할 만하다. 언제부턴가 해마다 정초가 되면 교회 벽면에 '성구' 대신 '숫자'가 나붙기 시작했다. 한국의 아무개 교회는 '1113110'이란 숫자를 비전이라며 내걸었다.

"2011년까지 1만 명의 출석 성도와 3,000명의 훈련된 리더, 1,000개의 셀, 100개의 네트워크교회, 10개의 훈련학교가 세워질 것을 믿고 선포합니다."

목회자는 "비전이 없는 백성은 목표가 없기 때문에 방자히 행하게 된다"며 숫자에 욕심을 빚어 만든 세련된 문구를 비전으로 포장했다. 이 거창한 선언문 앞에 "우리의 비전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는 글귀도 덧붙였다.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실 일'을 믿고 선포해야 할 교회가 '내가 이루고 싶은 일'과 '되기 원하는 것'을 '우리의 비전'이라며 믿고 선포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숫자 엮어서 교회 비전 선언문 만들어도 되나요?

박성일 목사(기쁨의교회 담임,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변증학 교수)는 <성장을 확장보다 변화로 측정하라>는 책을 통해 교회가 '물량적 목표'에 집착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그는 어느 유명 목회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숫자를 목회적 비전으로 삼는 것은 "자신의 야망일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비전은 아니다"고 말했다.

"개척 교회를 섬기다가 대형 교회에 청빙된 분이, '성령이 없이도 200명까지는 목회할 수 있다. 하지만 200명을 넘기려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심하고 두려운 노릇이었다. … 그는 미주 한인 교회로서는 최초로 장년 출석교인 만 명을 돌파하는 것이 자신의 목회적 비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야망일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비전은 아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한 개 교회의 회집 숫자가 만 명이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돌보심으로 이해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시종 양적인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복음 중심적인 교회를 세우라고 강조하는 박 목사는 구체적인 비전을 세운다는 명분으로 물량적인 목표를 잡았을 때 드러나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물량적 목표의 문제점은 너무 섣부른 성취감을 조성하던지, 아니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목표 달성에 대한 집착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권위로 말씀하시는 성경의 원리에 따라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목적, 본질적인 목표를 반드시 따라야 하며, 이런 본질적인 목표를 상실하면서까지 물량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것은 죄악시하고 거부해야만 한다."

<온전한 제자도>를 쓴 빌 헐 목사도 숫자로 사역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숫자라는 우상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교회가 숫자에 집착하는 이유

   
 
  ▲ 교회가 숫자에 집착하는 이유는 "물량적 성공, 즉 확장이 가장 중요한 성공의 측정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박 목사는 지적했다.  
 
교회가 숫자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목사는 "물량적 성공, 즉 확장이 가장 중요한 성공의 측정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개신교의 모습엔 이미 언급한 대로 자유경쟁 시장 원리, 다시 말하면 일반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성공하려고 하는 비즈니스의 세속적인 원리가 노골적으로 표방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향하여 힘찬 발동을 걸고 너나 할 것 없이 달려가고 있다."

박 목사는 교회들이 규모의 확장과 수적 증가가 '교회의 세력'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세속적 힘의 논리에 오염되어 '파워 기독교'를 양산하고, 힘의 논리가 교회 내에도 버젓이 자리 잡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이런 한국 교회의 현실을 들어 "수적 확장을 위해 순결을 포기해버린" 꼴이라고 설명했다. 

"교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이며,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인간을 중심으로부터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도리어 겨자씨 하나 또는 누룩 같이 적어 보인다 할지라도 참된 복음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박 목사는 후반부에서 "한국 교회에는 하나님의 독특한 은혜를 독차지한 듯한 슈퍼 지도자가 너무 많다"며 과시 지향적인 사역 행태도 지적했다. 

"큰 교회 목사들은 대부분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 속에 특별히 받은 부탁이나, 남이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래서 엽기에 가까운 위험하고 스케일이 큰 프로젝트가 성행한다. 건축, 전도, 선교 등도 남보다 더 크게, 더 많이, 더 멀리 해야 한다는 과시 행각처럼 보인다. 그런 일을 이루려는 슈퍼 지도자가 여기저기에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다."

박 목사는 "이 시대의 상황을 보면서 주눅 들기 쉬운, 스스로 작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을 위해  쓰여진 글"이라며 저술 동기 중 일부를 소개했다. 박 목사는 책 곳곳에서 수적 증가는 건강함을, 감소는 병든 상태라고 도식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목회를 평가할 때는 지역적·환경적·신학적·은사적 요인들을 모두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 목사는 '스스로 작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에게 "세상의 크고 작음이 아닌 하나님나라의 원대함에 나의 적은 힘이라도 보태고 있다는 자부심에 참여하라"고 권면했다. "작아도 건강하기를 꿈꾸는 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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