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안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빚 안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종희
  • 승인 2009.02.18 18: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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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3만원 잔고의 '가벼운' 통장…성경 사랑하고 성경대로 살라는 '무거운' 당부

아버지는 끝까지 자식들을 고생시키셨습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조문객들의 발길 때문에 저를 비롯해 상주들은 10초라도 앉아서 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저희들끼리는 농담처럼 "자정이 넘으면 장례식장도 문을 닫아야 한다"고 푸념을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오신 한 분 한 분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남겨주신 감화를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지난 주일 "종희야, 다음에 네가 목욕시켜줘라" 하시는 말씀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그 말씀이 결국 제게 남겨주신 마지막 음성이었습니다). 월요일 밤에 잠을 뒤척이더니 새벽 2시 30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주에 마무리해야 할 뉴스앤조이 단행본 출판 스케줄을 다시 짜보고, 8일 있을 뉴스앤조이 주주총회와 후원자 초청의 밤 행사를 미리 머리 속으로 그려보면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화요일 오후까지 일정을 마치고 저녁 5시 30분쯤 신림동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오늘은 더 힘이 없으시다" 하는 어머니 말씀도 마음에 걸렸고,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목욕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집에 갔더니 누나들과 매형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아주 어렵게 숨을 쉬고 계셨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모셔서 인공 호흡기라도 달아야 하지 않겠냐"고 재촉하고는, 병원 응급실과 119에 전화를 했습니다. 119가 출동한다고 했으나 마침 퇴근이 가까워오는 시각이고 신림동이 워낙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이었던지, 너무나도 더뎠습니다.

가족들은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린 아버지의 몸을 주무르면서 '아버지, 눈 좀 뜨세요" 자꾸만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호흡은 점점 가늘어졌습니다. 그러더니 긴 숨을 두 번 내쉬더니 숨이 멎었습니다. 가슴에 손을 대보고 손목을 만져보고 코와 입에 얼굴을 갖다 대보았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영원한 작별을 한 순간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6시 5분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아버지 옆에 모여서 작별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기도, 우리의 찬송을 아버지도 들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삼성의료원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 카투사에서 근무하던 큰손자가 와서 자리를 지켰다. 영정 앞에 평소 읽던 성경이 놓여 있다.
아버지는 2002년 1월 췌장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꼬박 2년간 투병을 하신 셈입니다. 췌장암은 약도 잘 듣지 않고 환자가 연로해서 항암 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의사의 판단을 믿고, 수술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약만 드셨습니다. 그러나 그해 9월, 간으로 암이 전이됐다는 소식과 앞으로 6개월 정도 사시겠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의사에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해 가을에 미국과 캐나다에 가서 당초 약속했던 대로 부흥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밖에 국내 집회 역시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삶에 대한 집착은 손톱만큼도 없으면서 사명에 대한 집념은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올해 3월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3월 7일 생신 때 "원래 오늘 추모 예배 드려야 하는데" 웃으면서 농담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암 세포가 힘을 발휘할수록 아버지는 식욕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점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설교를 하러 다니셨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1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바쁘셨습니다. 그리고 6년 커리큘럼으로 된 총회 장년 공과 집필 마무리에 집중하셨습니다.

10월부터는 몸 상태가 빠르게 나빠졌습니다. 얼굴은 앙상해지고 엉덩이에 살이 없어서 교회 의자는 물론 소파에도 앉기 어려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를 나가지 못하셨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 교회가 3주간 특별 새벽 기도회 인도를 아버지께 부탁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 아버지 뜻을 따랐지만 이번에는 그 교회를 원망했습니다. 간신히 부축을 받아서 움직이는 지경인데, 새벽기도라니…, 그것도 3주 동안. 하지만 아버지는 "강단에 올라가면 하나님이 힘을 주시니까 괜찮아" 하시면서 끝까지 강행군을 하셨습니다.

올해 10월 종교 개혁 주간에는 양지에 있는 총신대 신대원 채플 때 '사는 날 동안'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였습니다. 수술하고 194번째 했던 설교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설교를 하시고 침대에 누우셔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보내온 아버지의 설교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대소변 볼 때만 부축을 받아 일어나실 지경의 아버지, 입에 귀를 갖다 대어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때였는데, 총신대 신대원에서 설교하실 때 목소리는 짱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외람되지만 '신들렸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눈앞에 다가온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젊은 예비 목회자들에게 전하는 유언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향한 절규였습니다.

그렇게 11월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 하나 정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지혜로운 여인"이라고 칭찬하시면서 "내가 없어도 울지 마시오, 자식들이 잘해줄 것이오" 말씀하셨습니다. 그간의 고생을 위로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 남겨줄 말씀을 해달라고 했더니, 평소 지겹게 듣던 대로 "성경 읽고 말씀대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 "집과 재물은 조상으로부터 말미암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의 선물이라." (남편 김진택,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은 우리 가정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영원히 자손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선물입니다. 당신의 헌신을 감사하며, 사랑해요." (2003년 11월 18일 결혼 46주년)
총회 장년 공과 6년차 원고 교정을 끝냈습니다. 교회 신문에 4년 정도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루에 한 장씩 쉽게 풀어서 연재한 원고를 내년 1월 중순 것까지 마무리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생명을 연장시켜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63년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 올해 11월 마지막 날까지 하루에 50장씩 성경을 읽어서 40년간 500번이 넘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셨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실 때 태평양 한가운데 날짜 변경선에 걸리면 그 날은 꼬박 성경을 100장을 읽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췌장암 수술을 하고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서 지내느라 밀린 성경을 며칠 동안 한꺼번에 읽기도 하셨습니다.

목욕탕에서 성경을 읽다가 깜빡 조는 바람에 욕조에 빠져서 퉁퉁 불어터진 성경책,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어서 낡을 대로 낡은 성경책, 곳곳에 메모가 남겨진 지저분한 성경책. 그렇게 아버지에게는 성경밖에는 아무것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책이 무거워졌습니다. 어머니가 책별로 잘게 잘라서 묶은 일명 '쪽성경'을 간신히 들고 읽으셨습니다. 백짓장처럼 가벼운 쪽성경도 무거워지자 막내누나가 갖다준 성경 테이프를 들으셨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렇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다 채웠습니다.

은퇴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장만한 아파트 한 채가 유일한 재산이었을 뿐, 아버지에게는 그 흔한 자가용 한 대도 없었습니다. 저희에게는 3개의 통장을 남겨주셨습니다. 한 개는 10년간 청소년전도협회를 이끌면서 청소년 사역을 일으키기 위해 틈틈이 모금한 통장으로, 7,000만 원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한 개는 총회 학생 운동을 위해 SCE 동문회 기금 7,000만 원 정도가 들어 있는 통장입니다.

그것 말고 자식들에게 진짜로 남겨준 통장에는 3만 원 정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빚 안 남겨 주셔서 감사하다"고 농담처럼 얘기했습니다.

벌써 자정이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제 그만 써야겠습니다. 쓰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나서 안 되겠습니다.

* 이 글은 2003년 12월 5일 장례식을 마치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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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ayla 2011-07-18 21:26:16
At last! Soemone who understands! Thanks for pos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