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와의 만남, 그 30일간의 여정
홈리스와의 만남, 그 30일간의 여정
  • 방지은
  • 승인 2010.01.28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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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나눔공동체 최상진 목사가 거리에서 나누는 행복

"워싱턴디씨 맥퍼슨 공원의 한 편, 한 홈리스가 담요를 두르고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말똥거리는 두 눈만 남긴 채 대부분을 담요로 감싸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도 없었다. 가까이 가보니 얼굴과 손이 붉게 부어 동상에 걸린 흑인이었다. 자신을 다이애나라고 밝힌 50대 후반의 홈리스는 워싱턴디씨 흑인가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왜 영하의 날씨에 정부에서 제공하는 쉘터에서 지내지 않는지 묻자, 사람들도 모두 싫고 현재로는 혼자 지내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수차례의 성폭행과 짐까지 도둑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끔찍하다며, 이렇게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가로등 밑에서 지내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겐 신앙도 희망도 없었다. 새해 소망을 한 번 얘기해보라 하자, 꿈을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의 거친 손을 꼭 맞잡고 희망을 얘기했다. 매일 아침 살아 눈을 뜨는 것, 추운 겨울 누군가 준 담요로 몸을 녹이고 있는 것, 누군가 옆에 앉아 친구가 되어 주는 것.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없이 채워 주는 것들이라며, 올 한 해는 그것들을 하나씩 발견해 보자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녀의 큰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였다."   (최상진 목사의 '30일간의 노숙자 체험기' 중에서)

   
 
  ▲ 워싱턴디씨에서 홈리스 생활을 하는 다이애나는 자신의 집을 갖고 딸과 함께 사는 것이 단 하나의 소망이라고 했다. (사진 제공 : 최상진 목사)  
 
최상진 목사는 지난 1월 21일 워싱턴디씨를 기점으로 한 달 여정의 홈리스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메릴랜드, 필라델피아, 뉴저지를 거쳐 뉴욕에 도착한 그는 이후 코네티컷과 조지아로 갔다가 21일 워싱턴디씨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런 프로젝트를 세우게 된 연유를 묻자 그는 "홈리스와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굶주려 있는지, 외로운지, 목마른지를 직접 교감하고 싶었다"며 그들과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 목사는 워싱턴디씨에서 '홈리스에 의한, 홈리스만을 위한' 교회를 이끌고 있다. 본래 교회의 시초는 ’카페하우스‘로 한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1989년 오픈한 홈리스 쉼터였다. TV, 피아노, 냉장고, 의류, 그리고 화장실만 갖춰진 작은 공간이었지만 이곳에서 그들과의 교류의 물꼬를 텄다고 최 목사는 전한다. ‘House of peace & Companion home'이라고도 불리던 이 쉼터의 이름도 홈리스들이 직접 붙여준 것이다. 10년 후, 이 카페는 ’4번가 공동체 교회(4th street community fellowship)'로 변모했고, 오직 홈리스만 예배에 참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홈리스 중심의 다인종 교회라는 점입니다. 예배부터 찬양까지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준비합니다. 매주 30-40명의 홈리스가 교회에 나오고 있으며, 그들 중에 안수집사 9명과 선교사 1명이 배출될 만큼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 최상진 목사는 아리란 이름의 홈리스 형제와 워싱턴디씨의 한 도서관 입구에 슬리핑백을 깔고 누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 제공 : 최상진 목사)  
 
홈리스 근절과 인종 화합이 포커스

최 목사가 한 달간의 홈리스 만남에 나선 가장 큰 목적은 한인 사회와 홈리스 간 갈등의 해결책을 더욱 현실적으로 마련하기 위함이다. 워싱턴디씨는 약 60퍼센트가 흑인인 지역으로 흑인 대부분이 극 빈곤층에 해당한다. 최 목사가 워싱턴디씨의 할렘에서 사역을 시작한 1980년대 후반은 마약과 흑인 갱단으로 많은 위험이 도사리던 시기였다. 거기에 1992년 LA 흑인 폭동 이후, 한국인에 대한 흑인의 반감이 커지면서 워싱턴디씨의 흑인들에게도 '돈만 벌어 가는 동양인'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인 목사인 그가 대부분이 흑인 빈곤층인 홈리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한인과 흑인이라는 인종을 뛰어넘는 화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한인 지역사회와 흑인 홈리스의 화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김치를 통한 화합'이다.

"김치를 가지고 인종 화합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 워싱턴 잡지에 소개되기도 한 그는 홈리스에게 김치를 나눠주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자 했다. "한국의 전통 음식인 김치를 좋아하게 된다면 한국인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한국인 목사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 것"이라는 게 최 목사의 생각이자 바람이었다. 이것이 바로 한인 지역 사회와 흑인 홈리스 사이의 높은 담을 허무는 '김치 화해, 김치 복음화 실천 운동'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 맨해튼 펜스테이션에서 만난 홈리스 셜린.  
 
무료 법률, 메디컬 서비스 제공

최 목사는 또 홈리스를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매 월 둘째 주 토요일 미국인 변호사 3명으로 구성된 법률 봉사단이 홈리스의 사회복지, 범죄, 이민 문제 등을 상담해주는 것은 물론 직접 해결까지 해주고 있다. 7년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어렵게 시작한 이 서비스를 통해 3년 동안 140여 명의 홈리스가 도움을 받았다.

이 밖에도 한인 의료 봉사자들로 구성된 메디컬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으며, 흑인 아이들을 위한 애프터스쿨 프로그램, 꽃을 통한 화해를 추구하는 부활절 꽃 심기 운동, 인종 화합 관련 세미나 개최, 흑인 10대 농구팀 조직, 거리 음식 나누기 행사, 담요 나누기 캠페인 등 홈리스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최 목사는 이러한 기능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그들에게 다가갈 때 내 자신도 홈리스가 되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도 걸지 않고, 지저분하다고 거리를 두지만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손을 잡아주며 용기를 북돋아 줄 친구이다”며 다시 한 번 홈리스 사역의 기본 마음가짐을 되짚어 주었다.

홈리스 선교에 10년 이상을 바쳐온 최 목사는 해외 선교만 중시하며 지역 선교는 경시하는 한인 교회의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인기가 줄어드는 이유는 대형화, 자기 교인 중심으로 변해가는 교회의 잘못에 있다”며, “그리스도가 전하는 이웃 사랑에 다시 눈을 돌려 홈리스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봐야만 떠나간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사랑은 자기 교회 안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으로 퍼져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최 목사는 교회 문 밖부터가 바로 세계 선교의 장이라고 역설했다.    

홈리스는 매일 아침 감사한다

펜스테이션 내부를 걷다가 밖으로 나왔다. 일찌감치 최 목사와 이야기를 나눴던 한 홈리스가 다가와 인사를 나눈다. 내일 약속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간다. 최 목사는 내일 저녁 또 다시 그들과 만나 그들이 필요로 하던 치약, 칫솔, 화장지, 타월 등을 나눠주기로 했다.

최 목사는 "홈리스는 매일 아침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는 얘기를 전해주며, 주위를 돌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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