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사사, 에훗
왼손잡이 사사, 에훗
  • 김범수
  • 승인 2010.02.02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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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00인 100색(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사사기 3장 15절)

저는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그 있잖습니까, 열두 아들 중 막내아들 베냐민. 작은 지파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게라입니다. 누군지 모르시죠?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인 그나스의 아들이라고 불렸지만 제겐 그런 든든한 배경이 전혀 없습니다. 별로 내세울 게 없지요.

대신 사람들은 저를 왼손잡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베냐민 지파에는 원래 왼손잡이가 많이 태어나서 왼손잡이 특공대도 생겼을 정도지만, 아예 별명이 왼손잡이로 고정된 사람은 저 혼자일 겁니다. 그거 아십니까? 우리 히브리말로는 왼손잡이가 '오른손을 쓰는데 장애가 있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제가 날 때부터 왼손잡이였을까요, 아니면 오른손에 문제가 있어서 왼손을 쓰게 되었을까요? 그건 비밀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셔도 이젠 전 상관없어요.

그땐 아주 비참한 시절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도 그렇고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혹독한 시절이었지요. 말이 18년 동안이지 그 긴 세월동안 모압·암몬·아말렉의 3국 연합군에게 점령당한 뒤에 그 뚱땡이 왕(모압 왕 에글론을 이렇게 부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던 저항의 전부였습니다)에게 꼬박꼬박 허리가 휘도록 세금 걷어다 바친 걸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합니다.

그 뚱땡이가 하필 저를 시켜서 세금을 걷게 했는지 지금도 분합니다. 왼손잡이라고 독립운동도 하지 못할 것처럼 만만해 보였는지, 아니면 다른 뼈대 있는 가문의 양반들이 다 한사코 거절해서 저한테 그 불똥이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억지로 세금 걷는 친일파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친구들도 떨어져 나가고, 재수 없는 모압 병사들에게도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참으로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빠져나갈 방도가 없더군요. 하나님께 약속하신 구원자를 보내달라는 기도를 드릴 힘도 없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것은 묘하지요. 그렇게 세금 걷어다 바치면서 이편에서는 '민족의 배신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저편에게는 '줏대도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버러지' 취급을 받으며 저도 별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을 때 어느 순간 하나님이 저를 부르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뭐 떨기나무가 불에 타는 것을 본 것도 아니고 불기둥도 없었고요, 그냥 저 혼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떠올랐다고나 해야 할까요?

"바로 내가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해야겠다."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이스라엘 사람 중에는 에글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저 말고는 없더라고요. 삼엄하게 몸수색 하는 모압 군사들도 저에게만은 별로 까다롭게 하지 않습니다. 제가 왼손잡이여서 방심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토록 제가 비천하게 보였을까요? 여하튼 그렇게 생각하니 어쩌면 저를 이 자리에 두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근거도 없이 '할 수 있겠다'는 확신까지 들지 않겠어요. 강한 확신이요.

그래서 했지요. 이 단검 보이시죠. 이 길쭉한 칼이 그때 그 칼이에요. 사실 공물 바칠 때 거사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되게 두렵더라고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되돌아와서 될 대로 되겠지 하고 왕을 보자고 했더니 몸수색도 안하고 독대할 기회를 주잖아요. 그래서 찔렀죠. 빠져나오는데 떨려서 혼났어요. 에브라임 산지 민병대에 겨우 연락을 놓아서 군대를 모았는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사람들이 제 말을 믿어주더라고요. 그것도 기적이고 우왕좌왕하던 모압군대를 요단강에서 전멸시킨 것도 기적이지요.

난 지금도 내가 사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그래도 한 가지 제게는 결단력이 있어요. 하나님이 주셨다는 확신이 들면 저는 눈 질끈 감고 해치우거든요. 이런 단순한 믿음을 주님이 높이 보셨나 봐요. 앞으로 계획이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무도 다시는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다시는 불순종하지 않고 하나님나라를 세우도록 힘써주세요.

김범수 목사 / 시애틀 드림교회, 커피브레이크 소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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