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땅 아이티, '예수의 시선'을 더듬다
절망의 땅 아이티, '예수의 시선'을 더듬다
  • 박지호
  • 승인 2010.02.21 07: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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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아이티 (1)

아이티 참사 소식이 잦아들 무렵, 아이티를 찾았습니다. 2월 18일부터 24일까지 6일간 머무를 예정입니다. 한국의 지구촌공생회가 파견하고, 미주종교평화협의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봉사단에 합류했습니다. 급파됐던 기자들이 떠나고 긴급구호도 마무리된 단계에서 아이티를 찾은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줄어든다고 아이티 사람들의 필요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물 잔해를 치우는 데만 3년이 걸린다고 하니, 재건 사업은 아직 시작도 못한 셈입니다. 장기적인 아이티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제 사회(정부 민간 포함)의 모금액이 40억 불을 훌쩍 넘어섰고, 200여 개의 구호단체들도 아이티 재건 사업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도 한 달 만에 150억 원을 모금했고, 북미주 교회나 단체의 방문도 끊이지 않습니다. 자극적 '이슈'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고통'에 장기적으로 동참하려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티에 머물면서 아이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합니다.

LA를 떠난 지 꼬박 35시간 만인 2월 19일 아침 8시에 아이티 국경에 다다랐다. LA를 출발해 뉴욕을 거쳐 도미니카공화국 수도인 산토도밍고에 도착해 반나절을 보내고 새벽 3시에 아이티 국경을 향했다. 차로 6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자 '죽음의 선'이라 불리는 아이티 국경이 나왔다.

   
 
  ▲ 아이티 국경 앞에 늘어선 콘테이너 차량.  
 
늘어나는 콘테이너 차량과 구걸하는 아이티 사람들의 풍경이 국경이 가까워진 것을 알려주었다. 사고 초기, 24시간 동안 국경을 열어놓았던 아이티는 최근 들어 오전 9시부터 5시까지만 국경을 개방했다. 아이티로 향하는 구호 물품과 구호 차량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아이티에서 도미니카공화국 국경을 넘는 이들도 끊이지 않았다. 국경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서류 구비자는 자유롭게 왕래하는 반면, 여권이 없는 이들은 철문 뒤에서 도미니카 국경 경비대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 국경 경비대는 10분~20분 간격으로 문을 열어주면서 출입을 통제할 뿐 아이티 난민의 입국을 엄격히 제재하지 않았다.

   
 
  ▲ 입국을 기다리는 아이티 난민들.  
 

   
 
  ▲ 국경 입구에서 구걸하는 아이티 어린이.  
 
국경에서 한 시간 남짓 달리자, 무너진 집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의 피해가 크긴 했지만, 예상과 달리 아이티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한 건 아니었다.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라빌과 카푸 등 포르토프랭스 일부 지역에 피해가 집중됐다. 그 외 지역은 간헐적으로 무너진 집들이 있긴 했지만, 성한 집들도 많았다.

   
 
  ▲ 피해가 컸던 라빌 지역.  
 

   
 
  ▲ 라빌 지역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 건물 잔해 속에서 철근이나 쓸만한 물건을 찾는 아이티 주민들.  
 
오래된 고층 건물(3~4층)들이 많았던 라빌 지역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제대로 복구 작업을 하는 곳은 한두 곳에 불과했고, 건물 잔해 속에서 철근이나 쓸만한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잔해를 뒤지고 있는 게 전부였다. 유엔은 아이티인들을 고용해 건물 잔해를 치우도록 하고, 일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고용 창출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본격적인 재건 사업으로 보긴 무리였다.    

오전에는 아이티 현지인 목사(르네 조셉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LOVING HAND MINISTRY를 방문했다. 그 단체는 800명의 이재민들에게 음식과 임시 주거지를 제공했다. 그 곳에 있는 사미(26)라는 여성은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가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피신했다. 비닐로 얼기설기 엮은 천막에서 아홉 식구와 함께 지내고 있는 사미는 직업을 구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라고 말했다.

   
 
  ▲ 지진으로 학교 건물 2층이 무너져버린 LOVING HAND MINISTRY.  
 

   
 
  ▲ LOVING HAND MINISTRY 마당에 만들어진 임시 거주지.  
 

   
 
  ▲ 임시 거주지에 살고 있는 사미. 가장 귀하고 유일한 재산인 카세트를 늘 들고 다녔다.  
 

지역 곳곳에서 미군이나 유엔, 구호기관에서 받은 구호품을 주민들끼리 자체적으로 보급하는 모습도 보였다. 배급이 진행될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른들이 손을 뻗어 구호품을 가져가는가 싶었지만, 아이들이 배급품을 가장 먼저 받았다. 어른들이 받아 아이들에게 양보했고, 그 아이들의 물건을 빼앗는 이들도 없었다. 배고픈 주민들은 있었지만, 언론이 떠들어댄 것처럼 '약탈자'나 '폭도'는 없었다.

   
 
  ▲ 구호품을 받으려고 손을 뻗는 주민들.  
 

   
 
  ▲ 처음에는 무질서한 듯 싶었지만 주민들은 이내 자발적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아이티의 전체 인구는 900만여 명이다. 그중 200만 명이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 거주하고 있다. 이중 40만 명에 이르는 극빈층들은 이들은 2.5평방마일 안에 모여살면서 거대한 슬럼가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한 집에서 여러 식구가 번갈아 잠을 잘 정도로 가난하지만, 대부분 판잣집이기에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상자는 오히려 적었다. 아이티의 대표적인 빈민 지역인 시티솔레이 장터를 지날 때는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소리쳤다.

   
 
  ▲ 시내 곳곳에 설치된 난민촌.  
 

   
 
  포르토프랭스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난한 곳으로 꼽히는 시티솔레이. 사람들 뒤로 보이는 판잣집이 줄지어 서 있다.  
 

포르토프랭스 곳곳에 난민촌이 형성되어 있다. 먹고 마실 것도 매우 부족하지만, 지난주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이재민들의 고충이 더 커졌다. 남은 천 조각이나 비닐로 햇볕만 가려온 임시 천막으로 본격적인 우기를 버티긴 힘들다. 때마침 유엔이 나서서 방수 천막을 보급하긴 했지만 역부족이다. 이재민들은 코앞에 닥친 우기를 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1%에 해당하는 부유층이 45%의 부를 누리고 있는 곳이 아이티다. 아이티 시내에서 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한 곳에는 이들의 호화 주택이 늘어서 있다. 산 아래 살던 가난한 이들의 희생이 컸던 반면 이곳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부자 동네.  
 

   
 
  ▲ 포르토프랭스 시내, 무너진 성당 건물 앞에 서 있는 예수의 십자가 상. 예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이 1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92%가 "이번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티에 있는 한 한인 봉제 공장의 경우 현지 직원이 1,200명이었지만, 지진 이후에 850명대로 급감했다. 가족이 죽거나 다쳐서 장기간 출근하지 못하거나 본인이 사고를 당한 경우다. 하지만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본인이 나타나기 전까진 사망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 아이티 현장 소식이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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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ybear 2010-02-25 03:55:49
아이티 구호에 별다른 지원을 하지 못한 제가 왠지 쑥스러워 지는군요. 말씀하신데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지원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