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난민촌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티 난민촌에서 만난 사람들
  • 박지호
  • 승인 2010.02.25 06: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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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아이티 (2)

아이티 참사 소식이 잦아들 무렵, 아이티를 찾았습니다. 2월 18일부터 24일까지 6일간 머무를 예정입니다. 한국의 지구촌공생회가 파견하고, 미주종교평화협의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봉사단에 합류했습니다. 급파됐던 기자들이 떠나고 긴급구호도 마무리된 단계에서 아이티를 찾은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줄어든다고 아이티 사람들의 필요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물 잔해를 치우는 데만 3년이 걸린다고 하니, 재건 사업은 아직 시작도 못한 셈입니다. 장기적인 아이티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제 사회(정부 민간 포함)의 모금액이 40억 불을 훌쩍 넘어섰고, 200여 개의 구호단체들도 아이티 재건 사업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도 한 달 만에 150억 원을 모금했고, 북미주 교회나 단체의 방문도 끊이지 않습니다. 자극적 '이슈'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고통'에 장기적으로 동참하려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티에 머물면서 아이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합니다.

   
 
    포르토프랭스 지역 곳곳에 크고 작은 난민촌이 흩어져 있다.  
 

   
 
  ▲ 물이 귀한 난민촌에선 빨래하는 물과 목욕물이 따로 없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이번 강진으로 주택 22만 5,000여 채를 잃었다. 120만 명이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았고, 이재민 임시 거주지만 280여 곳에 이른다. (아이티 정부 추산) 1월 강진 이후 50여 차례에 걸쳐 여진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임시 거주지에 있는 것이 차라리 속이 편하다는 주민들도 있다. 난민촌에 있어야 구호품을 얻을 수 있기에 제 발로 난민촌을 찾는 주민도 적지 않다.

   
 
  ▲ 대통령 궁 주변에 생긴 임시 거주지. 가운데 하얀색 건물이 지진으로 무너지 대통령 궁.  
 

   
 
  ▲ 마을 구석구석에 난민촌이 있기에 그냥 지나치기가 쉽상이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표시를 나름대로 해놓았다.  
 

   
 
  ▲ 난민촌에서는 빨래하는 일도, 빨래를 말리는 일도 쉽지 않다.  
 
대통령 궁 주변에 가장 큰 임시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고, 포르토프랭스 지역 곳곳에 크고 작은 난민촌이 흩어져 있다. 

올해로 68세인 엘리 씨는 지진으로 집을 잃고, 델마 지역에 있는 난민촌에 기거하고 있다. 좁은 천막 안에서 절구를 놓고 열심히 커피를 빻고 있던 엘리 씨는 커피를 만들어 파는 것이 다섯 식구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라고 말했다. 엘리 씨에겐 아들이 넷이지만 모두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 커피를 내다 파는 것이 엘리 씨 집안의 유일한 수단이다.  
 
   
 
  ▲ 이 좁은 공간에서 다섯 식구.  
 
엘리 씨는 함석판과 나무판자를 엮어 벽을 만들었다. 하늘을 지붕 삼아 지내다 며칠 전 호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비닐을 구해서 덮었지만 그마저도 성치 않다.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는 말에 천막이라고 말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 하나를 놓고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적십자에서 물을 공급해주고 있지만, 매일 끼니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 지붕이 찢어졌다며 텐트를 달라고 말하고 수줍게  웃었다.  
 
   
 
  ▲ 숯을 이용해 불을 피워놓고 있어 텐트 안에 열기가 대단했다.  
 
건너 편 천막에 사는 소냐(가명)는 집 안에서 화덕을 만들어 요리를 하고 있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화덕까지 달궈진 텐트 안은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숯불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에 눈은 따갑고, 몸에선 땀이 줄줄 흘렀다. 3분을 채 견디기가 힘들었다.

우기가 코앞이다. 기자가 머무르는 동안에만 두 차례 비가 왔다. 폭우가 쏟아질 경우 배수 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바닥에 물이 고이는 건 불문가지다. 소냐는 탁형구 선교사가 운영하는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탁 선교사가 집 마당에 있는 대나무를 잘라다 기둥을 세우고 방수용 천막을 덮었다. 벽돌과 합판을 이용해 침대도 만들어주어, 소냐는 우기를 앞두고 한시름 덜 수 있었다. 

   
 
  ▲ 난민촌 안에도 어느새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난민촌에서 치료하고 있는 의료 봉사자들.  
 
   
 
  ▲ 아들과 두 딸을 잃은 만코 씨.  
 
지진으로 인한 응급환자에 대한 치료는 어느 정도 끝난 상태지만, 규모가 큰 난민촌의 경우 의료팀이 주둔하거나 수시로 방문한다. 위급한 환자는 이미 병원으로 이송됐기 때문에 난민촌에는 요양하는 환자들만 간간히 눈에 띄었다. 의료진이 없는 난민촌이 태반이기에 이동 진료소가 필요하다.

케스코프 지역에 있는 Baptist Haiti Mission에 입원해 있는 만코 씨는 눈물도 말라버렸다.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집에 있던 아내와 아들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차에 타고 있던 만코 씨는 목숨은 건졌지만 다리를 크게 다쳤다. 가족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보름이 지나서야 알았다는 그는 가족들을 생각할 때마다 온몸이 아프다며 가슴을 두드렸다. 식사 시간이 되어 음식이 도착하자 꾸역꾸역 음식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고등학생인 조니는 이번 지진으로 친구들이 죽는 것을 그 자리에서 목격했다. 마침 학교 건물 구석에 있었던 조니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기자를 보고 중국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신기해하는 조니는 동네 골목길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다.  

   
 
  ▲ 지진으로 학교와 친구를 잃은 조니.  
 

* 아이티 현장 소식이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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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man 2010-03-02 04:46:01
절망과 실의에 빠지고,죽지 않았기에 본능적으로 살아서 삶을 지속하려는 그들에게 박기자님의 말처럼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채워줄지에 대해 많은 국가와 사람들이 고민했으면 합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닌 가까운 내 이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