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도 빈부를 가렸다?
천재지변도 빈부를 가렸다?
  • 박지호
  • 승인 2010.02.2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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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를 가다 (3) 날림 건물과 산림 파괴가 피해 키워

아이티 참사 소식이 잦아들 무렵, 아이티를 찾았습니다. 2월 18일부터 24일까지 6일간 머물렀습니다. 한국의 지구촌공생회가 파견하고, 미주종교평화협의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봉사단에 합류했습니다. 급파됐던 기자들이 떠나고 긴급구호도 마무리된 단계에서 아이티를 찾은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줄어든다고 아이티 사람들의 필요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물 잔해를 치우는 데만 3년이 걸린다고 하니, 재건 사업은 아직 시작도 못한 셈입니다. 장기적인 아이티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제 사회(정부 민간 포함)의 모금액이 40억 불을 훌쩍 넘어섰고, 200여 개의 구호단체들도 아이티 재건 사업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도 한 달 만에 150억 원을 모금했고, 북미주 교회나 단체의 방문도 끊이지 않습니다. 자극적 '이슈'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고통'에 장기적으로 동참하려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합니다.

아이티를 휩쓴 강진도 빈부를 가려서 때린 걸까. 가난한 동네일수록 지진의 피해가 컸다. 부자는 안전하고 숲이 우거진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가난한 이들은 비좁고 지저분해도 이동이 편한 시내 주변으로 모여드는 '고부저빈' 현상은 아이티도 마찬가지다.

   
 
  ▲ 산 중턱을 지나 위로 올라갈수록 고급 주택이 늘어났다.  
 
프랭토프랭스 외곽에 위치한 부띠리에 지역을 찾았다. 부촌답게 산 중턱을 지나 위로 올라갈수록 고급 주택이 늘어났다. 차고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여러 대 있었고, 풀장에 널찍한 잔디밭까지 산 아래 빈민가와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몇몇 주택을 제외하곤 7.0의 강진에도 건재했다. 

   
 
  ▲ 오른 쪽에 우뚝 선 건물이 아이티에서 가장 큰 통신 서비스 업체인 디지셀 사옥이다. 지진 피해가 컸던 지역 한 복판에 아무런 피해 없이 우뚝 서 있다.  
 
부띠리에로 향하는 길. 산비탈에 있는 재래식 콘크리트 건물들은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져 내려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전문가들은 지진 피해가 컸던 이유로 부실한 건물을 꼽는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Architecture for Humanity도 포르토프랭스의 주택 중 상당수가 모래를 섞은 콘크리트로 지어진데다, 태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지붕을 콘크리트로 만드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고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 산비탈에 있는 재래식 콘크리트 건물들이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 수목이 적은 비탈면일 경우 산사태 등 추가 피해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많았다.  
 
부자 동네에 있는 건물 역시 콘크리트 건물이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양질의 시멘트에 적당량의 철근을 넣어서 만드니 날림으로 지은 빈민촌 건물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아이티의 참극을 천재지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황폐화된 산림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아이티 주민들이 생활에 주로 사용하는 원료는 숯(wood charcoal)이다. 전기나 석유가 숯보다 서너 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서민들은 숯으로 물을 끓이고 음식도 요리한다. 때문에 숯을 만들어 파는 것도 빈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 아이티 서민들에게 숯은 주연료이자 주수입원이다.  
 
숯을 얻기 위해선 벌목을 해야 하고, 이는 아이티 산림 훼손을 가속화시켰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국토의 산림 점유율이 25%였다. 하지만 1990년대는 10%로 줄었고,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선 고작 2%에 불과하다.

산림이 줄어들면서 서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없어져 경제 사정이 악화된 것도 있지만,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이티 국경과 맞닿은 도미니카공화국의 국경 지역만 해도 야자나무로 만든 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아이티에선 지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목제 건물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 도미니카공화국의  아이티 국경 인근 지역은 야자나무로 만든 나무집이 주를 이뤘다.  
 
수목의 양과 피해가 반비례했다는 데는 현지 선교사들과 주민들도 이견이 없었다. 수목이 적은 곳일수록 지진 피해가 컸는데, 특히 수목이 적은 비탈면일 경우 지진으로 산사태 등 추가 피해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많았다는 것이다.

* 아이티 소식이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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