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어딜 가도 □□ 파는 곳은 있었다'
'아이티 어딜 가도 □□ 파는 곳은 있었다'
  • 박지호
  • 승인 2010.02.28 17: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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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 달린 왕자' 모시느라 등골 휜 아이티 농민들

 아이티 참사 소식이 잦아들 무렵, 아이티를 찾았습니다. 2월 18일부터 24일까지 6일간 머물렀습니다. 한국의 지구촌공생회가 파견하고, 미주종교평화협의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봉사단에 합류했습니다. 급파됐던 기자들이 떠나고 긴급구호도 마무리된 단계에서 아이티를 찾은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줄어든다고 아이티 사람들의 필요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아이티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때입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도 한 달 만에 150억 원을 모금했고, 북미주 교회나 단체의 방문도 끊이지 않습니다. 자극적 '이슈'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고통'에 장기적으로 동참하려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합니다.

   
 
  ▲ 포르토프랭스 어디를 가도 로또 파는 곳이 있었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한 시간만 돌아다녀 본 사람은 안다. 시내 어디를 가든 빠지지 않고 눈에 띄는 가게가 무엇인지. 바로 '로또'(복권)를 파는 곳이다. 허물어져가는 콘크리트 건물 벽에 'loto'라고 그려놓은 곳이 쉬지 않고 나왔다. 미용실이나 구멍가게에서도 부업삼아 로또를 팔았다. 

아이티는 1%에 해당하는 부유층이 국가 재산의 45%를 누리고 있다. 55%의 서민들은 하루 1~2불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다. 빈곤은 대물림되고, 벗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행성 산업에 물들었다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지나가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로또 당첨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생 역전'을 꿈꿀 길이 로또밖에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이발소나 미용실에서도 로또를 부업삼아 팔았다.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온 구호금인가?

아이티가 극빈국으로 전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티는 80년대까지 쌀을 자급자족했다. 하지만 1986년에 들어 쌀을 7,000톤이나 수입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값싼 미국 쌀이 아이티 쌀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들어갔다.

미국 쌀이 아이티 시장을 장악하자, 쌀 가격은 오르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총 19만 톤이 수입되었고, 2007년에는 아이티에서 소비되는 쌀 중 75%가 미국에서 수입됐다. 당시 70%에 달했던 아이티 농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갔고, 점차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고 말하고 말았다.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Berrtrand Aristede) 전 대통령이 "아이티로 수백만 달러의 구호 자금이 들어오지만, 과연 누구로부터 벌어들인 돈이냐"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식수를 파는 가게에서도 로또를 팔았다.  
 
'네발 달린 왕자' 먹이느라 굶어야 했던 아이티 국민들

쌀뿐 아니다. 아이티 토종 돼지(크레올 돼지)는 아이티 농가에 중요한 재산이었다. 아이티 가정의 85%가 크레올 돼지를 길렀다.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중한 재산이었고, 아이티 농부들의 주된 수입원이자, 비상금이었다.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가족 중 누군가 갑자기 아프면 돼지를 팔아 급전(急錢)을 마련했다.

   
 
  ▲ 아이티의 토종 돼지인 크레올 돼지. (출처 : international grassroot)  
 
입이 길고 까만 크레올 돼지는 별도의 사료가 필요 없었다. 가족이 남긴 잔반을 먹고 자랐고, 3일 동안 굶어도 살아남았다. 현지 풍토에 적응되어 있어 잔병도 적었다. 

하지만 1982년, 국제기관이 나서 아이티의 크레올 돼지를 도살하기 시작했다. 클레올 돼지가 질병에 걸렸다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기 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도살은 13개월 동안 진행됐다.

한 아이티 주민은 당시를 떠올리며 "사람들이 돼지를 돌려달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병에 걸렸다고 가져가버리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돼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몰래 숨겨두기도 해, 아직 시골에는 크레올 돼지가 남아 있다.

src="http://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show_ads.js">돼지 도살을 주도한 국제기관은 크레올 돼지보다 더 좋은 돼지를 들여올 것이라고 약속했고, 2년 뒤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미국산 돼지가 들어왔다.  

   
 
  ▲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쓴 < Eyes of the Heart >  
 
하지만 미국산 돼지는 정수된 물을 마셔야 했고, (80%의 아이티 국민들이 정수된 물을 마시지 못한다.) 미국에서 수입된 사료 값으로 1년에 90불이 들었고, (당시 1인당 국민 소득이 130불이었다.) 지붕 있는 축사가 필요했다. 때문에 미국산 돼지는 '네발 달린 왕자'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미국산 돼지 수입은 아아티에 총 6억 불의 손실을 가져왔다. 수입이 줄어든 농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어, 학교 진학률이 30% 이상 급감했다. 미국산 돼지의 수입은 아이티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여파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쌀 수입 문제와 크레올 돼지에 대한 부분은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쓴 <가난한 휴머니즘-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Eyes of Heart: Seeking a Path for the Poor in the Age of Globalization)>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 및 참고했습니다. 

* 아이티 소식이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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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man 2010-03-02 04:08:40
수고하셨습니다. 왜 강대국들이 못 사는 나라에 저토록 그것도 미국이 선발로 아이티에 대대적인 지원..... 나름 궁금했는데.. 결국은 그들의 약소국에 대한 시장지배 및 자립도를 짤라버리고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함이었군요. 어느정도도 자립되지 않은 국가마저 이권타툼의 장으로 만들다니. 참 너무하네요 강대국의 정권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