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점검할 건축 전문가가 절실하다"
"건물 점검할 건축 전문가가 절실하다"
  • 박지호
  • 승인 2010.03.1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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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를 가다(6) 아이티에서 쉰 넘긴 노장 선교단체, MCC에 길을 묻다

아이티 참사 소식이 잦아들 무렵, 아이티를 찾았습니다. 2월 18일부터 24일까지 6일간 머물렀습니다. 한국의 지구촌공생회가 파견하고, 미주종교평화협의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봉사단에 합류했습니다. 급파됐던 기자들이 떠나고 긴급구호도 마무리된 단계에서 아이티를 찾은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줄어든다고 아이티 사람들의 필요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아이티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때입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도 한 달 만에 150억 원을 모금했고, 북미주 교회나 단체의 방문도 끊이지 않습니다. 자극적 '이슈'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고통'에 장기적으로 동참하려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합니다.

   
 
  ▲ 랜드 카펜터 씨는 "아이티 주민들의 '존엄성(dignity)'을 지켜주는 것이 구호 사업의 근간이 되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Mennonite Central Committee(MCC)는 1958년부터 아이티에서 활동했다. 올해로 52년째다. 쉰을 넘긴 노장 선교단체가 이번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MCC 아이티 본부에 들어서자 마당에는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개인용 샤워룸이 줄지어 있었다. 먹을 양식과 마실 물과 잠잘 곳도 넉넉지 않은 판에 개인용 샤워룸이라니.

담당자인 랜드 카펜터 씨는 "아이티 주민들의 '존엄성(dignity)'을 지켜주는 것이 구호 사업의 근간이 되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난민촌에서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씻을 공간이 마땅찮다는 점인데, 안심하고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도 존엄성을 지켜준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MCC는 샤워 구조물뿐 아니라, 물을 걸러서 먹을 수 있는 필터와 통조림과 음식, 물, 방수포, 의학 용품 등을 나눠주고 있다.

   
 
  ▲ 난민들을 위해 만든 개인용 샤워룸.  
 
주기 전에 물어보라

아이티를 향해 엄청난 자원과 인력이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있다. 받을 사람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엄청난 돈을 들고 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알아서 가져온 물건을 주고 간다. MCC가 사역할 때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물어보는 것'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을 도와주기 원하는지.

"먼저 묻는다. 내가 주고 싶은 것 내게 있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는지 먼저 묻는 것이 원칙이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다."

MCC에게 대신 물었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Carpenter 씨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건물을 검사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진이나 약품도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공급된 상태라며, 건물 상태를 확인하고 철거해야 하는지, 수리해야 하는지, 문제가 없는지 검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난민촌에 기거하지만 우기가 되면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진단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이 일을 해줄 사람이 부족하다. 특히 많은 사람이 모이는 학교와 교회 고아원 등의 점검이 시급하다."

   
 
  ▲ 벌목으로 황폐화된 아이티의 야산. (출처 : mcc 홈페이지)  
 
아이티를 장기적으로 도우려면 나무를 심어라

MCC가 그간 해온 일을 살펴보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사역에 집중해왔다. 단기적인 처방보다 아이티 주민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자립을 돕기 위한 일이었다. 교육 사업, 직업 훈련, 갈등 해결, 소액 금융, 나무 심기 사업 등이 그 예이다.

그중 나무 심기 운동이 MCC의 주력 사업이었다. 지진이 나기 전부터 나무 심기와 자연보호 교육에 앞장섰다. MCC는 1983년부터 나무 심기 사업을 시작해, 6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 지역사회의 교회와 학교를 대상으로 교육 활동도 펼쳐왔다.

   
 
  ▲ MCC는 지역사회의 교회와 학교를 대상으로 자연 보호와 나무 심기 교육 활동도 펼쳐왔다. (출처 : MCC 홈페이지)  
 
아이티 주민들에게 나무는 중요한 의미다. 아이티 주민들의 주 연료이자, 주 수입원이자, 유용한 비상식량이자,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보호막이기도 하다. 전기나 석유가 숯보다 서너 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서민들은 숯으로 물을 끓이고 요리를 한다. 때문에 숯을 만들어 파는 것도 빈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과실나무일 경우에는 어린이들에게 과일을 제공하기도 한다. 산사태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나무는 가정의 중요한 학자금이기도 하다. MCC는 “한 그루의 나무로부터 벌어들이는 한 가정의 수입으로 어린이 한 명의 1년 학비를 마련한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티에서 나무는 ‘돈’인 셈이다. 한때 울창한 산림으로 유명했던 아이티 산림이 걷잡을 수 없이 황폐화된 이유다. 1950년대까지 25%였던 산림 점유율이 1990년대 들면서 10%로 줄었고, 2000년대에는 2%미만으로 떨어졌다. 벌목하는 사람은 많은데 심는 사람은 없으니 생긴 문제다.

MCC는 교육을 통해 나무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현지 단체와 연계해 나무 심기 운동을 해왔다. 45불이면 300그루, 105불이면 700그루 정도를 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MCC 도움으로 나무 기르기 시작한 수피아나 엘리스틴 씨

   
 
  ▲ 수피아 엘리스틴 씨. (출처 : MCC 홈페이지)  
 
"나무는 중요한 삶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수피아 엘리스틴(Soufiana Elistin) 씨는 MCC가 제공한 나무 묘목을 키워서 5명의 자녀를 공부시켰다. 엘리스틴 씨의 가족은 아이티의 Desarmes에 거주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어수선하던 1990년대, 이웃의 모함으로 집을 잃고 산 속에서 숨어 지내기도 했지만, MCC 덕분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나무는 제게 더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1980년부터 나무를 길러왔습니다. 나무를 가지고 5아이의 공부를 시켰다. 손바닥 만한 땅이 있지만, 비에 퇴비가 다 쓸려가버린답니다. 그 땅에 MCC가 제공한 나무 묘목을 길렀습니다."

수피아 엘리스틴 가족은 원래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갈수록 토질이 나빠져 수확량도 떨어졌다. 아이티 땅은 수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기 힘들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는 전혀 달랐답니다. 그땐 비가 자주 왔고, 땅도 비옥해서 어디에 농사를 지어도 많이 수확할 수 있었지요. 어디나 바나나가 있었고, 옥수수, 고구마 등을 지금보다 많이 수확할 수 있었죠."

농사는 힘들어지고, 나무는 중요한 삶의 원천이기에, 나무를 자르는 사람은 많은데 심는 사람은 적다. 숲이 있는 산은 사라지고 말았다.

수피아 엘리스틴 씨는 MCC 통해 처음으로 나무 기르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묘목을 이식하고, 농약을 뿌리는지 배웠다. 수피아 씨는 두 번이나 나무를 수확해 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했다. 첫 번째는 1,500굴드를 벌었고(약 38불), 두 번째는 2,500굴드(약 63불)를 벌었다. 100불이면 아이티 노동자의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렇게 5명의 자녀를 공부시키고 있고, 첫째 아들을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 이 글은 MCC에서 발행하는 <A Common place magazine>(2007년)에 나온 글 중 일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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