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고를 위한 변명
유두고를 위한 변명
  • 김범수
  • 승인 2010.04.0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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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사도행전 20장 8-9절)

유두고는 드로아, 그러니까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터키 서쪽 끝 항구 도시에 사는 청년이었다. 그가 막 중학교에 갈 무렵, 2차 선교여행 중에 원래 계획대로 가지 못하고 예정에 없던 드로아까지 오게 된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들었다.

여기서 바울이 꿈에 성령의 인도로 확신을 얻고 그리스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여 빌립보·데살로니가·고린도 등 그리스의 굵직한 교회들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교회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일 뿐더러 드로아 교회의 자랑이기도 했다. 여하튼 당시 바울 일행은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이 드로아 교회와 유두고의 믿음의 시작이었다.

이 교회에 선교팀이 다시 방문했다. 디모데 일행이 먼저 와서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로아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는 환호했다. 며칠 뒤에 바울이 도착하자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주간은 교회의 창립 기념주일 같았고, 예정에 없던 부흥집회였고, 저절로 선교 강조 주간이 되었다. 온 교회가 생업을 멈추고 모여서 이들 선교사 일행을 환영하고 말씀에 귀 기울였다.

바울은 교회의 장로들을 격려했고,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장로들은 교회를 목회하며 생기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듣고 싶었고, 바울은 다른 교회들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복음의 원리를 각 지역교회에 적용하는 사례를 가르쳐 주었다.

교인들은 그동안 바울 일행이 선교하며 고생한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지만 바울의 입을 통해 직접 그 기막힌 선교지의 사연을 들으니 그것만으로도 선교의 열정이 불타올랐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복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졌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말씀은 꿀송이처럼 달기만 한데, 다시는 드로아 교회와 만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바울도 모든 것을 다 전해주고 가려는 듯 마지막 날 새벽까지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 청중 가운데 유두고가 있었다.

사실 이 부흥회의 뒤치다꺼리는 청년부가 도맡아서 했다. 그 중에서도 드로아 교회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유두고 청년의 헌신은 대단했다. 식사 준비는 물론 미리 와서 다락방을 정리하고, 등불을 켜고, 단상을 마련하는 일들은 유두고가 다 했다.

마지막 날에 색깔별로 향기 나는 등불을 더 많이 켜둔 것은 바울 일행에 대한 환송과 격려의 의미를 담은 유두고의 아이디어였다. 유두고는 이렇게 복음의 아버지인 바울 일행을 섬기는 것만으로도 기뻤고 드로아 교회가 뜨거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유두고의 헌신은 어느새 교인들의 모범이 되고 있었다. 모임 준비를 다 챙기면서도 말씀에 귀 기울이는 열정, 편한 자리를 어르신과 초신자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당연하다는 듯 창문에 걸터앉은 어른스런 모습을 장로들은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일주일 내내 몸을 사리지 않던 유두고는 불편한 창틀에 기대어 말씀을 듣다 깜빡 잠에 빠졌던 것이다. 휘청하는 순간, 유두고는 삼층 아래로 떨어졌다. 만약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면, 그토록 수고한 사람이 말씀을 듣다가 피로에 못 이겨 허무하게 죽은 것은 시험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부활하신 주님의 영은 그와 함께 하셨고, 유두고는 다시 살아났다.

이것이 교회의 큰 위로가 되었다. 온갖 핍박 가운데서도 바울의 사역을 도우신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드로아 교회는 이제 먼 이야기처럼 듣지 않았다. 청년 유두고의 헌신을 통해, 그리고 이 밤의 사고와 기적적인 소생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과 부활의 능력을 똑똑히 목격하게 된 것이다. 새벽 동틀 때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망의 말씀을 전하고 떠나는 바울도 이 믿음직한 드로아의 청년으로 인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김범수 목사 / 시애틀 드림교회, 커피브레이크 소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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