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의 자식들아'?, '야, 이 뱀 새끼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야, 이 뱀 새끼들아'!
  • 윤희윤
  • 승인 2010.04.28 2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총이 쓴 불경스런 책 [욕쟁이 예수]

예수가 욕쟁이였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난 것도 없는데, 성서에서 예수가 바리새인들에게 욕지거리하며 싸우는 장면을 정말 재미없게 읽곤 했다. 고상한 성서 번역 덕에 예수는 '뱀 새끼'라는 질펀한 욕을 해 대는 시골 목수의 자식이 아니라, '독사의 자식'이라고 교양 있게 욕하는 고매한 집안의 기품 있는 자제에 더 가까웠다.

십자가를 눈앞에 둔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는 장면을 읽고도, 겁에 질려 있는 예수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수많은 여인과 함께 사역한 예수가 성적 유혹을 받았을 거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워들은 게 있어 예수에 반골 이미지, 술꾼 이미지를 덧입혀 성서를 읽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수는 신이다. 육신을 입기는 했지만 언제나 유유자적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이었다. 
 

   
 
  ▲  <욕쟁이 예수 - 교양과 상식 너머 길들여지지 않은 예수의 맨얼굴> / 박총 지음 / 살림 펴냄 / 309쪽 / 1만 1,000원.  
 
저자 박총은 전작 <밀월일기>는 '세상에서 제일 곱디고운 책'이라면서, <욕쟁이 예수>는 '쌈닭처럼 거친 책'이라고 표현했다. 얼마나 거친 책이기에. 책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내가 아끼는 작가 켄 가이어(Ken Gire)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분의 아들도 앞에서 잡아끄는 힘과 뒷덜미를 놓지 않으려는 힘을 동시에 느끼던 시기들, 그분의 아들도 떨리고 자신 없이 심지어 두렵기까지 하던 시기들"이 있었다. 분노한 군중들이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밀치려고 했을 때(눅 4:28-30) 사람이신 그분에게 왜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유대인들이 돌을 던지려 하자 도망가셨을 때(요 8:59)나 나사로를 살리신 이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암살 공모를 알고 숨어 지내셨을 때(요 11:53-54)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대본을 펴 보고는 "음, 아직은 십자가의 때가 아니군" 하며 유유자적하게 무대 뒤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처럼 무섭고 겁이 났기 때문에' 숨었고 달아났다." (69쪽)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나 <다빈치 코드>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하고 섹스해서 자식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거야 '창작의 자유' 내지 '착각의 자유'겠지만,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여성들에게 성적 유혹을 받았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당대 민중의 '인기 스타'로 떴던 예수님이 여러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동안 노골적으로 구애를 해 온 여성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그 전도 여행에 동행하며 물질로 섬겼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러 여성들(눅 8:1-3)에게서 유혹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121쪽)

예수도 성적 유혹을 받는 남자였다니. Oh, My God! (오, 마이 갓) 제목부터 불경스럽더니, 책 내용은 더 불경스럽다.

물론 책은 두려움을 이기고 십자가를 진 예수에, 성적 유혹에도 불구하고 순결함을 지켰던 예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뒤떨어질까 봐 공포에 떠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이기는 법을, 범람하는 포르노 속에 허우적대는 형제들에게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다스리는 법을 예수로부터 배우라고 이야기한다. 결론은 그동안 교회에서 이야기하던 것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인간 예수를 묵상했기 때문에 나오는 생생함이 담겨 있다. 당위가 아니다.

박총은 네 아이를 낳아 기르며, 전지전능한 이가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먹지도, 똥 싼 것을 치우지도 못하는 무지무능한 이가 된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 일(285쪽)인지 경험했다. 사생아로 태어나 이집트에서 난민으로 지내고, 갈릴리로 돌아와 빈민가의 노동자로, 공생애 사역 중에는 머리 누일 곳조차 없는 홈리스이자 기존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정부 인사로 간주되어 살아간 예수를 보며 변두리 인생, 소외된 자들의 삶(293쪽)을 이해했다.

책을 읽으니 삶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진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지 고민할 땐 성적 매력 물씬 풍기는 예수를,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며 이민 가고 싶을 땐 예루살렘을 보며 운 울보 예수를 만나고 싶다. 성적 매력 어쩌고저쩌고하는 걸 보니 <욕쟁이 예수>를 읽고 불경스러움에 전도됐나 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