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희생과 은총의 경계선에서
십자가, 희생과 은총의 경계선에서
  • 최태선
  • 승인 2010.06.09 10: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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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람들', 십자가는 지는 것이 아니라 품는 것

"철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가 있었느냐?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나는 결심하였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나에게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어두워 가는 조국의 하늘 아래
내 젊은 모가지를 길게 늘이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겠습니다고"

윤동주 시인의 시 <십자가>입니다.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의 첫 부분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정도는 되뇔 줄 압니다.

누구라도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순수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늘을 향하는 시인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구도혼(求道魂)이 독자들의 마음까지 끌어들여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게 합니다. 시에 문외한인 사람까지도 단번에 추체험(追體驗)을 불러일으키는 명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인의 마음이 마침내 꽃으로 피어난 것이 바로 위의 시 <십자가>라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영문학을 전공하던 시인은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해방을 불과 6개월도 못 남겨 놓은 2월 16일 우리 나이로 불과 29살의 꽃다운 나이에 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위의 시는 죽음을 눈앞에 둔 그가 쓴 시입니다.

시인은 조국의 운명을 자기의 십자가로 안고 주님을 따랐던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그의 열정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특별히 십자가를 대하는 시인의 자세가 인상적입니다.

"나에게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이라는 시인의 표현에는 십자가를 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기꺼이 십자가로 향하는 그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의 결단이나 희생이라는 오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라 여기는 시인의 겸손이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희생이 아니라 은총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한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일뿐입니다. 욕망의 불을 향하는 하루살이의 날갯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짧은 몇 마디 말을 통해 그러한 자신의 신앙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암울한 조국의 상황과 극도로 어렵고 힘들었던 그의 삶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범인(凡人)들이 좀처럼 도달하지 못하는 깊은 신앙의 세계를 체험하고 깨닫게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내 젊은 모가지를 길게 늘이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겠습니다"라는 그의 결론에서는 그러한 시인의 마음이 더더욱 잘 드러납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십자가가 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꽃 피우는 것이라는 시인의 확고한 믿음이 공감과 함께 신앙인으로서의 깊은 존경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호승심으로 쏟아내는 인생의 합리화나 자기 변(辯)이 아니라 들고 어렵지만 그것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완성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참된 지복(至福)임을 믿는 시인의 신앙고백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작은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알량한 자기희생의 자리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십자가는 영광이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가 영광임을 아는 자가 작은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십자가를 들먹일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영광임을 아는 자가 십자가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우쭐댈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영광임을 아는 자는 시인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그런 십자가가 자기에게 주어졌음을 감사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목숨을 바쳐 소중하게 그 십자가를 품에 안고 걸어야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눅9:23)라고 번역된 말씀에서 '지고'라는 단어는 '바스타제인'이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바스타제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귀중한 것을 품에 안고 가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갈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바스타제인'입니다.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등에 지고 힘겹게 질질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품에 안고 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며 기뻐하는 마음으로 안고 가는 것입니다.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꽃으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인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을 소중히 간직한 채 자기 인생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같은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도 자기 인생 하나 버거워 비틀거리는 제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알량한 자기희생 앞에서 십자가를 난발하던 지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결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달려가려는 시인의 깊은 신앙심이 고맙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품에 안고 걸으라는 시인의 가르침이 고맙습니다.

인생의 꽃을 피우는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자신의 삶으로 말해주는 시인의 본보기가 고맙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거울 앞으로 다가가 이제는 젊지 않은 제 모가지를 길게 늘여봅니다. 그리고 과연 나도 시인처럼 피를 철철 흘리며 꽃처럼 죽을 수 있겠느냐고 자문해 봅니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다 가시지는 않지만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겠습니다"라는 시인의 말을 제 입으로 되뇌어봅니다.

아! 정말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품에 안고 가는 것입니다.

최태선 / 어지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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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oss56 2010-08-26 06:50:56
십자가는 품에 안고 가는 거라는 말씀 고맙게 받습니다.
감동의 글을 대할 때마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