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목사의 영성'이다
이것이 '목사의 영성'이다
  • 정용섭
  • 승인 2010.07.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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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의 신학 단상(8) '목사는 누구인가' 두번째 이야기

기독교 신앙의 연륜과 더불어 영성이 깊어져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법이 없다. 목회자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은 이 영성이 평신도만을 대상으로 운용될 뿐이지 자기 자신에게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아마 목사는 이미 영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확신이, 엄밀하게 말하면 그런 오해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확신과 오해로 인해서 목사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평신도 중간에서 그 영적인 활동을 중재하는 사람으로 자처하게 된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런 위치에 자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목사가 하나님의 현실성인 영적인 활동을 평신도들에게 선물로 줄 수도 없다. 물론 성서를 가르치거나 설교를 함으로써 평신도들을 어떤 영적인 깨우침으로 이끌어갈 수는 있지만 그것마저 자기의 주체적인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선 분명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인 목사는 결코 그 성령을 온전하게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 통로도 모르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목사는 청중들을 향해서 자주 설교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 본다면 이것은 옳다. 그러나 궁극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것은 틀렸다. 형식적으로는 목사가 청중들을 향해서 무언가를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목사가 그 이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는 게 중요하다. 설교 자체가 설교자와 하나님과의 소통 관계라는 말이다. 목사는 청중을 향해서 설교하고 성서를 가르치고 심방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목사의 영성이다.

목사의 영성 문제를 훨씬 구체적인 문제를 통해서 설명해보자. 만약 현재의 샘터교회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500명 이상의 교회가 되었다면, 혹은 내가 그렇게 큰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무엇이 변하며, 무엇이 변하지 않을까?

이것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 큰 덩어리만 본다면 내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500명 구성원이 참여하고 있는 교회라고 한다면 아무리 부교역자와 협동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개인적인 시간을 포기할 일은 대단히 많을 것이다. 대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한다면 약간의 자기만족감은 주어질 것이며, 목회철학을 소신껏 펼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물적 토대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 조건들이 목사로서의 내 영성을 심화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교회를 10배, 20배 부흥시켰다는 사실이 나를 영적인 만족감으로 끌어다줄 일은 결코 없다. 좋은 사람들을 모아서 어떤 조직체를 만들고 교회 활동을 활성화했다고 해서 내가 영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일도 없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영성에 도움이 되는 일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사이에는 그 어떤 사람도 개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목회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자기 합리화에 빠져서 이렇게 흰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담임목사는 아니었어도 전도사와 부목사로서 매우 큰 교회에서 실제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거기서 얻은 경험은 그 내부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매우 공허하다는 사실이었다. 일은 많아서 바쁘게 돌아가고, 사람을 많이 상대하기는 하지만 영적으로는 아무런 만족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곧 영성의 결핍이다.

물론 교회가 크고 일을 많이 하면서도 끊임없이 영적인 에너지가 공급되는 교회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교회를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가타부타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은 사람들의 군중심리나 자기연민이나 성취감에서 얻어지는 어떤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세상이 좁다는 듯이 선교사업, 봉사활동을 확장시키는 것과 영성과는 직결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간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어불성설이다.

지금 나는 교회가 크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목사가 교회 성장을 도모하면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크기와 성장 문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하니까 그것 자체를 여기서 문제 삼고 싶지 않다. 다만 목사의 영성은 그런 것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영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교회 성장에 매달리는 것만큼 목사에게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이런 일들이 한국의 목회 현장에서는 당연하게 일어난다. 아니 목사의 영성이 고유하게 확보되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니 ‘영성’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실 어디 영성만이겠는가? 성령이 무엇인지,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종말이 무엇인지 실제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 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목사가 목사의 고유한 영성 없이도 얼마든지 목회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대답이다. 일반 평신도들도 역시 기독교인의 영성 없이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흡사 세상살이에서 사람들이 생명의 신비를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요령껏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과 만난다. 첫째, 우리는 어떻게 영성의 심화에 이를 수 있는가? 둘째, 이런 영성의 심화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한 기독교인들인가? 이 두 질문에 대해서 나는 아직 대답을 얻지 못했다. 물론 어떤 윤곽을 잡을 수는 있지만 남에게 드러내놓고 말할 정도는 못 된다. 그래도 한두 마디만이라도 보태보자.

기독교인의 영성이 어떻게 확보되겠는가? 기독교의 전통을 꾸준하게 공부하고, 현재의 삶을 통찰해 나가는 길밖에는 어떤 다른 길이 없다. 흡사 시를 잘 쓰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좋은 시를 많이 읽고 받아쓰고 공부하면서 동시에 삶의 심층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 공부와 깨우침에 따라서 영적인 경험의 깊이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예만 더 들자. 우리가 문화유산을 어떻게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런 공부가 깊은 사람은 문화 유적에서 많은 삶을 읽어낼 수 있지만 그런 공부가 없는 사람에게는 문화 유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이 공부라는 게 반드시 신학적이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전통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런 영성의 심화에 이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일자 무식쟁이, 거의 무당을 찾아가듯이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도 역시 전체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건 분명한 게 아닌가. 그건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인식론적 훈련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그가 기독교 영성에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울 줄 알며, 평화 지향적인 삶으로 나가게 될 것이며, 따라서 성령에게 자기를 맡기게 될 것이다.

이런 건 공부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영성의 ‘심화’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성령의 경험은 깊고 얕음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진정이냐, 가식이냐의 차원일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진정성이 있기만 하다면 그는 이미 성령의 사람이며, 성령이 고유한 방식으로 그에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호수의 깊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똑같은 물 아닌가. 문제는 낮은 곳의 물에 발도 대지 않았으면서 호수를 경험했다고 하는 것처럼 성령을 전혀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행세한다는 데에 있는 것 아닐는지.

끝으로, 목사는 결코 목회의 성공 여부로 자신의 영성이 확보되는 게 아니다. 사실 교회 공동체 안에 성공이라는 말이 나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신자들의 영성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영성에 더욱 천착해야 하는 게 아닐는지. 더 늦기 전에!

정용섭 목사 / 샘터교회 담임·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 대구성서아카데미에 실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고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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