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집에 살고 있는 그대, 사모
유리 집에 살고 있는 그대, 사모
  • 김세진
  • 승인 2010.09.10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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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사역·내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목사의 아내' 이야기

'한국 교회 내 사모'들의 생활을 취재하기 위해 여러 명의 사모를 만났다. 지난 8월 30일 하이패밀리가 진행한 사모 세미나에 참석한 사모들과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 수련회에 참석했던 사모들을 만났고,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사모들에게도 연락했다. 사모들 대부분은 긴장해서 신앙생활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사모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더 많이 기도하고 말씀을 읽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사모라서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뉴스앤조이>가 '한국 교회 내 여성'에 대해 다루면서 이번 기사에서는 사모라서 어려운 점을 집중적으로 조망했다. (한국 <뉴스앤조이> 편집자 주)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가는데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아무도 당나귀를 타지 않고 끌고 갔더니 미련하다고 하고, 아들을 태웠더니 '불효자'라고 아들을 욕한다. 거꾸로 아버지가 탔더니 이번에는 자식을 걷게 하는 '나쁜 아버지'라고 매도한다. 결국 부자(父子)는 당나귀를 메고 갔다."

이재순 사모(안산동산교회)가 돌연 '부자와 당나귀' 우화를 꺼냈다. 사모의 스트레스에 대해 말하는 중이었는데, 뭘 해도 고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모의 모습이 우화 속 부자와 같다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VS. 암탉이 울어야 새벽이 온다

이지선 사모(가명)는 목사와 결혼하기 전에 사람들이 '이제 교회에서 시어머니를 사방에 모시고 살겠네'라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니 사소한 것도 눈치를 보게 되었다. 마치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 집에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과연 목사의 아내는 '시어머니들을 사방에 모신 채 유리 집에 사는' 존재인가.

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 목사)가 2010년 실시한 조사에서 사모 105명이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하고 우울하며 짜증이 난다'(52%)고 대답했다. 힘든 이유를 물으니, 2008년 조사에서 357명의 사모들이 '부족한 자질로 인한 한계'(34.6%)와 '평신도도 사역자도 아닌 애매모호한 위치'(29.9%)라고 대답했다.

이런 고민들은 사모가 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 이재순 사모는 직분은 없으면서 할 일이 많은 위치가 사모라고 했다. 이 사모는 교회 일을 할 때마다 '해도 되나, 해야 하나'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모 역할에 대한 교인들의 기대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며 사모가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암탉이 울어야 새벽이 온다'며 사모가 적극적으로 교회 일을 하기 바라는 사람도 있다. 김희원 사모(가명)는 활달한 성격이었는데, 사모가 된 이후 성격이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사모가 나선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작은 일 하나에도 자꾸 눈치를 본다.

신경 쓰는 게 많다 보면 건강을 해친다. 김희원 사모는 우울증에 걸렸다. 남편이 교인들에게 신경 쓰느라 가족들에게 시간을 잘 내지 못하는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 남편이 교인들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면서 집에서는 쉬려고만 했다. 교인들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여자로서 남편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도 병을 키운다. 이영애 사모(가족관계연구소 소장)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았을 때, 의사는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교인들에게 불평할 수도 없고 남편에게 투정 부릴 수도 없어서 참았던 게 화근이었다.

강옥선 사모(반석교회)는 허리 디스크가 있는데도 육체노동을 해서 몸이 많이 상했다. 개척 교회라 사람이 없어서 화장실과 교회 청소를 도맡아야 했고 주일 점심 식사도 준비해야 했다. 새벽 기도도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밤늦게 깨어 있는 게 편한 올빼미 체질은 밤에 기도하고 새벽에 자는 게 몸에 좋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모가 새벽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을 교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사모 자신도 죄책감에 눌린다. 김정희 사모도 죄책감 때문에 무리하게 새벽 기도를 가느라 몸이 많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다.

교회 일과 가정생활 둘 다 잘하는 슈퍼우먼

2008년 하이패밀리의 조사에 따르면, '교회와 가정생활의 양립'(24.4%)과 '사모 역할에 대한 교인들의 높은 기대'(11.1%)도 사모들을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교회 일을 아무리 잘 해도 아내 역할에 소홀하면 목사 남편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생긴다. 황민아 사모(가명)는 목사는 가족에게 소홀해도 목회에만 집중하면 사역을 잘한다고 칭찬받지만, 사모는 아무리 사역을 잘해도 집안일을 소홀히 하면 안 좋은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혹여나 남편보다 사역을 더 잘하는 경우에도 칭찬을 받기는 어렵다. 김연수 사모(가명)는 아이들이 조금만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아이들을 돌볼 시간에 교회를 돌보는 게 잘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회에 일이 많아 방치할 수는 없는데,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된다. 목회자 자녀를 모범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부담에, 아이들을 많이 규제하게 되는 것도 사모의 고민이다.

김희원 사모(가명)는 교인들이 사모가 슈퍼우먼이 되길 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2살, 1살 된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교인들은 김 사모가 주일에 다른 일도 해 주기를 바란다. 다른 아이들도 돌보아 주기를 원하고, 자질구레한 부엌일도 하기를 바란다. 박진희 사모(가명)는 제자 훈련을 하느라 주일에 시간이 없다. 다른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사모가 부엌에 한번도 안 들어온다고 교인들이 불평한다. 이재순 사모는 교회 상담실에서 일했는데, 가끔 교인들에게 "목사님 저녁 차려 드려야지,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처음에는 '교인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다.

'사모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 때문에도 힘들다. 사모는 없는 사람처럼 튀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전경숙 사모(무학교회)는 이전 교회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새 옷을 입고 갔는데, 한 교인이 아무 말도 없이 다가와서 전 사모의 옷 목덜미를 뒤집더니 상표를 확인하고 갔다. 전 사모는 그날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사모가 일하는 것도 빌미가 될 수 있다. 박유진 사모(가명)는 아이들 우유 값을 벌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박 사모는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듣고 속상했다. "우리 사모님이 믿음이 없어서 기도하지 않고 돈 벌러 갔어."

사모들은 아직 '시어머니들을 사방에 모신 채 유리 집에 살고' 있다.

방정하면 건방 떤다 하고/ 정숙하면 내숭 떤다 하고/ 청빈하면 궁상떤다 하고/ 많이 배우면 목사 앞서 간다 하고/ 적게 배우면 무식하다 하고/ 눈물 흘리면 질질 짠다 하고/ 웃고 있으면 무게 없다 하고/ 절약하면 인색하다 하고/ 넉넉하면 헤프다 하고/ 심방 동행하면 설친다 하고/ 동행 안 하면 주의 일 무관심하다 하고/ 자녀를 잘 키우면 자기 자식밖에 모른다 하고/ 잘못 키우면 모범되지 못한다 하고/ 교회 성장하면 교만한 사모라 하고/ 교회 성장 안 하면 내조 잘못한 자라 하고/ 병들면 목사 가시라고 하고/ 건강하면 제 몸만 챙기는 사모라 한다

- 고훈 목사 '사모의 길 살모의 길' 중에서

김세진 /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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