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걸린 노숙자'가 교회에 남긴 유산
'에이즈 걸린 노숙자'가 교회에 남긴 유산
  • 박지호
  • 승인 2010.09.14 19:1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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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Old First Church 천장화에 담긴 사연

   
 
  ▲ 래리 보이스와 Old First Church 교인이 함께 완성한 천장화.  
 
"안녕하세요. 전 에이즈 환자인데, 잠잘 곳을 구하고 있습니다. 잠자리를 제공해주시면 대신 예배당에 그림을 그려드리겠습니다."

1991년 8월 어느날, 덥수룩한 수염의 한 노숙자가 남루한 행색으로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교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초라한 노숙자의 어이없는 제안에 교회들은 시큰둥할 수밖에. 낡은 자전거 한 대와 지친 육신을 이끌고 교회를 찾아다니던 그는 Old First Presbyterian Church(이하 Old First Church)에 이르렀다.

   
 
  ▲ 래리 보이스는 특정한 거처 없이 평생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떠돌던 삶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됐다. 그가 평생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250만 마일이 넘는다.   
 
Old First Church는 그 노숙자가 12번째로 찾아간 교회였고, 그를 교회 안으로 맞아들여 뜬금없는 제안을 끝까지 들어준 유일한 교회였다. 당시 담임이었던 하트 앤더슨 목사 역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채 그 노숙자가 건넨 포트폴리오를 건성으로 훑었다.

"이름은 래리 보이스. 미시건 로체스터에 있는 오클랜드대학에서 건축역사를 전공하고, 졸업 후 유럽에서 르네상스 시대 건축양식을 익혔다. 1970년 초부터 '개념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해, 73년부터 빅토리아풍 실내 장식 전문가로 활약했다. Larry boyce & Association이란 회사를 만들고 미국 각종 유명 교회와 호텔, 영화배우의 저택 등의 실내장식 작업을 주도, 1986년에는 부통령 집무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실의 실내장식과 스텐실 작업에 참여해 <스미스소니언매거진>(1981년 8월호)과 <뉴욕타임즈>로부터도 조명을 받기도 했다."

잠자리를 구걸하던 노숙자는 래리 보이스라는 실력 있는 예술가였다. 앤더슨 목사는 당회와 교회 건물 관리 위원회에 이 사실을 알렸다. 공교롭게도 건물 관리 위원장이었던 스티브 테이블 장로와 보이스는 구면이었다. 보이스가 몇 해 전 그의 집의 실내장식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보이스가 내민 포트폴리오가 사실이었다. 스티브 장로는 에이즈 환자인 보이스를 위해 자신의 집을 선뜻 내놓았다.

보이스 씨가 스티브 장로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예배당 천장화 프로젝트도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교회는 교인 7명과 교역자로 구성된 테스크포스를 만들어 보이스를 지원했다. 100년 가까이 된 예배당 입구는 우중충하고 지저분했지만, 보이스는 마름모꼴 무늬의 아치형 천장에 주목하며 비잔틴 양식의 천장화를 제안했다.

래리는 한때 가톨릭 교인이었지만 신앙을 버리고 선불교에 심취했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보이스는 기독교 신앙을 탐독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Old First Church 교인들은 보이스가 이 프로젝트에 "스스로를 던졌다"고 회고했다.

   
 
  ▲ 보이스가 즐겨 찾던 교회 예배당 발코니.  
 
죽음을 목전에 둔 그는 기독교 신앙전통이 새겨진 스테인글래스가 있는 이층 발코니 앞에서 수시로 묵상에 잠기곤 했다.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회한에 젖기도 했지만 마지막이 될 그의 작품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고, 뒤늦게 찾아온 신앙적 질문과 씨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 Old First Church 교회 입구  
 
보통 디자인이란 것이 고객의 의사가 중요하기에 작가가 재빨리 디자인해 고객의 승인을 얻고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보이스는 이 작품이 공동체적 프로젝트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구성 단계부터 회중을 참여시켰다. 교인들은 기독교적 전통이 풍성하게 담긴 그림이길 원했다. 특히 성찬과 세례와 관련된 신앙전통이 부각되길 기대했다. 2,000년 동안 이어지던 기독교 전통적 상징을 성도들이 보고 누리도록 했다.

보이스가 완성한 천장화의 디자인은 다양한 상징을 담고 있다. 깊고 푸른 배경에 있는 8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별은 초대 교회를 감싸고 있던 하늘을 뜻한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에 담긴 문양을 본떠서 그린 비둘기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내려왔던 성령을 의미한다. 포도와 밀은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을 기념하는 성찬식에 기초가 되는 포도주와 빵을 나타낸다. 경계선 가장자리의 꽈배기는 창조자와 피조물 간의 상호 연결되어 있는 연합의 상태를 뜻한다. 시편 100편 2장을 인용해 하나님에 대한 예배자들의 감사하는 마음과 교회의 풍성한 음악적 전통을 보여주고자 했다.

천천히 진행될 줄 알았던 보이스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애초에 보이스가 혼자서 작업을 마칠 수 있을 걸로 예상했지만, 최종 디자인이 교회로부터 승인받은 92년 3월부터 그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막 그림을 그리려던 그때 그의 기력은 쇠약해져서 작업대조차 오를 수 없을 정도였다.

   
 
  ▲ 천장화 프로젝트는 보이스가 원하던 대로 진정한 차원의 공동 작업으로 승화됐다.  
 
거동조차 불편해진 그는 에이즈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원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그가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 교인들이 그의 곁을 돌아가면서 지켰다. 92년 5월 25일, 샌프란시스코 한 병원에서 당회원들과 앤더슨 목사가 보이스에게 세례를 집례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보이스는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이봐, 내 삶의 마지막이 마치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아?" 그가 마지막 순간에 친구에게 던졌던 말이다. 그로부터 꼭 12일 만인 6월 6일, 친구들과 교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작품을 남겨둔 채로.

   
 
  ▲ 보이스의 마지막 처소를 제공했던 사라 테이블 씨. 사라 씨는 보이스를 가족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천장화 마무리를 위해 보이스가 별도로 남겨놓은 지침은 없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됐고, 보이스가 원하던 대로 진정한 차원의 공동 작업으로 승화됐다. 교인이자 예술가였던 낸시 웨스트스미스 씨가 붓을 이어받았고, 보이스가 틈틈이 훈련시켰던 자원봉사자들과 동료 예술가들이 작업대에 함께 올랐다. 보이스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일부분씩 나눠 맡아 3년 동안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95년 2월, 예배당 입구의 천장은 비로소 완성됐다.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던 노숙자가 그림으로 남긴 신앙고백을, 그에게 쉴 곳을 주고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준 교회 공동체가 함께 마무리한 것이다. Old First Church는 보이스와 교인들이 함께 그려낸 천장화를 "기독교인에 의해, 기독교적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지만, 제작되는 과정 자체에 기독교적 가치가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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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i99.com 2011-05-07 18: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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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車 2010-09-20 17:25:31
뉴스앤조이가 이러한 이야기들로 가득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WOW 2010-09-18 08:51:32
And it's sacramental!!!!

수원지 2010-09-15 17:45:01
아주 훌륭한 미담이 숨겨지지 않고 보도되어 감사드립니다. 특히 올드 교회측에 주님의
크신 은총을 빕니다. 제가 알기로는 둥근 스테인 크라스안에 십자가는 켈틱 십자가입니다.
켈틱 십자가는 영국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켍틱족이 남긴 신앙의 유산입니다.
이것이 영국 성공회와 스코트렌드 장노교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고 봅니다. 그 후
미국의 고전풍 교회들에게 전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