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드려도 되나요?
제사 드려도 되나요?
  • 김기현
  • 승인 2010.09.2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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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살리고 형신은 타파해야

으레 명절이나 제사가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밖으로는 ‘너희 예수쟁이들은 조상도 없냐? 부모도 없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이고, 안으로는 우상숭배에 동의하면서도 ‘과연 제사가 우상숭배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참 난감합니다. 언제나 대안은 본질의 회복입니다. 본래의 근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최상의 방도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 핵심은 ‘기념’(memory)입니다. 기념이 제사의 본질이라는 점에서는 유교의 제사나 기독교의 예배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유교는 조상의 은덕을 기억하고 군사부에 대한 충성과 효를 교육하려 한다면, 기독교는 출애굽의 하나님의 은총을 상기합니다. 신명기는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을 ‘기억 vs 망각’의 구도로 풀이합니다. 신약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되풀이합니다. 대상의 차이는 있지만 ‘기념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제사는 지나치게 형식을 강조합니다. 음식을 차려놓았는가와 절을 했는가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조상 공경이 제사라면서도 조상에 대한 일절 언급이 없으니, 이 경우가 본말전도에 해당하겠지요. 이스라엘의 예배를 두고 이사야 선지자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나 있다고 혹평했는데, 현재의 제사가 그런 형국입니다. 말로는 조상을 찾지만 제사 의무를 다했다는 자기만족, 조상에 대한 예의가 있다는 도덕적 관념, 타인의 따가운 시선 의식, 조상 잘 섬겨 복 받겠다는 기복 신앙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조상은 안중에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에 대한 판단 기준을 주십니다.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온전케 하려는 것이다.”(마 5:17)

이 말씀은 구약의 율법뿐만 아니라 제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동물을 잡아서 드리는 희생 제사는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단번에 드려진 유월절 어린 양이었다는 점에서 그 내용은 여전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협소한 형식으로만 보면, 예수님은 구약에서 벗어난 ‘이단자’입니다. 하지만 정신을 철저히 간직한다는 점에서 그분은 구약의 ‘완성자’입니다. 이렇듯, 그분은 구약의 제도와 제사를 깡그리 무시하는 비역사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본래의 취지를 회복하십니다. 우리는 율법을 문자적으로 실천할 것이 아니라 정신을 지켜야 합니다.

제사의 본래 정신은 살리고, 그 형식은 타파해야 합니다. 우선, 버려야 할 것은 절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인에게 예의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우상숭배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수용해야 할 것은 음식입니다. 음식은 우리를 더럽게도, 거룩하게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므로 자유해야 합니다. 차례 상을 준비하는 것이나 먹고 마시는 것은 즐겁게 해도 좋습니다. 되찾아야 할 것은 기념입니다. 순서에 따라서 제사를 해치우는 대신에 자녀들에게 선조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함이 없는 예배는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듯이, 선대를 회상하지 않는 제사는 죽은 제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이분법적이고도 단선적 질문과 논쟁보다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Ad fontes!”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를 개혁하면서 외쳤던 슬로건입니다.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본질을 되찾자는 뜻입니다. 진정한 혁신과 갱신은 기원으로 돌아가서, 그 기원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사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원리입니다. 제사의 근원이자 정신인 ‘기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김기현/ 부산수정로침례교회 목사 · <글쓰는 그리스도인> 저자 (www.logosscho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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