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행복 전도사의 죽음과 기독교
어느 행복 전도사의 죽음과 기독교
  • 김기대
  • 승인 2010.10.08 17: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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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행복론 이미 사라진 오늘날 교회

2007년 9월 22일 프랑스의 사상가 앙드레 고르는 거의 60년을 살아온 아내 도린과 동반자살했다. 사르트르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가받았던 고르는 1975년 “생태론과 정치”라는 글에서 생태주의 시각으로 기존의 자본주의를 비판한 신좌파 계열의 사상가였다. 생태주의라는 단어조차 낯선 시대에 그는 기존 좌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비판 영역을 개척해 나간 선구자였다.

   
 
  ▲ 불치병에 걸린 아내와 죽음을 선택했던 앙드레 고르.  
 
하지만 아내가 불치병에 걸린 후 20년 이상 아내의 간호에 전념했다. 2006년, <D(도린)에게 보낸 편지>라는 책을 통해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해 둘은 동반 자살했다. 그는 유작이 되어 버린 이 책에서 “우리는 둘 다 ,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라고 썼다.

그는 수술하다 되레 치명적 병을 얻는 기술의 과잉 속에서 인간적 결핍이 나오듯이 이론의 과잉 속에서 인간적 결핍이 나오지 않도록 늘 유의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그의 인간적 결핍을 메워 주는 것이었고 프랑스 발음이 비슷하듯이 사랑(ㅣ’amour)의 완성으로 죽음(la mort)을 선택했다.

행복 전도사가 우리에게 준 것은?

한국에선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최윤희 씨가 남편과 함께 동반 자살했다. 그녀도 불치병으로 고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파해 왔던 그녀의 죽음은 논쟁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세상에는 더 큰 고통으로 아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그녀 역시 인간이었으므로 많이 외로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갈수록 노인 문제가 심각해지는 현실 속에서 더 이상 추해지기를 두려워한 부부의 선택을 아름답게 존중하는 의견들도 있다. 그녀의 육신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그녀의 극단적 선택에는 가벼운 행복을 추구해왔던 모든 사람들이 덧입힌 부담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80년대 한국에서 칼라 TV 시대와 더불어 시작한 아침 방송의 확대는 남편과 자녀들을 준비시키느라 한 차례 전쟁을 치른 주부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 갑자기 늘어난 방송시간을 채워야 하는 방송사측에 의해 80년대 이후 많은 대중 강연가들이 나타났다. 피곤에 지친 전업 주부들의 눈높이를 고려하다 보니 내용보다는 흥미, 이론보다는 감성적 접근, 장황한 설명보다는 몇 가지로 요약된 삶의 지혜들이 시청자들을 유혹했다.

때마침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람들은 몇 가지 요점만 이해하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자기 계발서에 심취했다. TV는 이러한 풍조를 유행시켰다.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며 베란다에 빨래를 널며 오며 가며 들어도 부담 없는 내용들 전할 수 있는 강연가들이 TV를 메웠다.

자녀교육과 자기 개발에서부터 주식 투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들을 다루는 대중 강연가들이 명멸해 갔다. 최윤희 씨도 그 어느 부분에 자리 잡은 분이었다.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다른 주제의 강연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이 전한 행복론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내용들이 우리에게 즐거움은 되었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스낵과 같은 이야기들이었고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대중(정확하게 말해서 방송사)은 그것에 열광했고 본인은 아픔을 잠시나마 해결해주는 진통제 같은 이야기를 만병통치약처럼 들어 주는 대중들 앞에서 많이 어려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진통제에 익숙해져 있던 그녀는 큰 아픔 앞에서 더 이상 약효를 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무거운 행복론이 이미 사라진 오늘날 교회

행복이 삶의 조건들과 관계가 있다고 전제한다면 기독교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종교다. 행복이 가벼운 스낵과 같이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쓰디쓴 한약과 같은 기독교는 행복한 종교가 아니다. 키에르케고르에서 몰트만에 이르기까지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들이 기독교에서 발견한 것은 절망이었다. 정황상으로는 전혀 행복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희망,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르쳐 준 행복이다.

하지만 설교 내에서도 무거운 행복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TV 대중 강연가들의 양산은 기독교내에서도 대중 설교가들을 배출했다. 그들의 행복론에는 간혹 하나님이라는 단어만 들어갈 뿐 다른 스낵과 같은 대중강연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의 행복을 왜곡하기에 일반 강연가나 목사들이나 다를 바는 없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가벼운 행복에 도취되어 왔다. 자녀의 성적에서 남편의 진급에서 아파트의 평수에서 행복을 발견하던 우리는 절망 속에서 발견하는 행복의 참 의미에 대해서 너무 둔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가볍고 쉬운 행복에 빠져든 우리

무거운 행복론을 애써 외면하며 가볍고 쉬운 행복론에 빠져들던 우리가 행복 전도사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앙드레 고르는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행복을 자신만 누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사회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었다. 고르가 노동자 실업자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노동해방, 문화 사회 등의 비전을 제시한 것도 아내와의 행복한 가정을 넘어 모두에게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그의 꿈에서부터 출발했다. 행복은 이처럼 나와 너의 관계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하는 고민 속에서 완성되어 간다.

그러나 현대인의 가벼운 행복론은 사회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둔감하게 만든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살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최윤희 씨 부부가 앙드레 고르 부부처럼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라도 남겨 주고 갔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녀의 행복론의 지지자들에게 회한의 말이라도 남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 한 장짜리 유서로만 자신의 행복론을 종강해 버린 그분의 죽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작은 배신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성철 스님의 임종게(臨終偈)처럼 "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인 것"(生平欺狂男女群)을 고백하는 것은 종교적 대가들만 할 수 있는 일인가? 최윤희 씨의 죽음은 새삼 삶을 마감할 때 우리가 어떤 모습을 취하게 될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김기대 목사 / LA 평화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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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Kim 2013-11-20 10:13:50
목사님의 의견에 동감을 합니다. 참 행복은 오직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질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를 이해 할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요. 하늘의 메세지를 들으면 땅을 중심으로 풀어 버리니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야기 해 주어야지요. 모든 강단의 메세지가 더욱 더 이를 분별 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주어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