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북한 지원 단체들은 답답하다. ‘북한에 지원해도 주민들에게 전달되긴 하는 걸까’ 하는 불신이 커져가는 마당에, ‘지난 10년간 퍼주었더니 돌아온 건 포탄밖에 없다’며 대북 지원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LA에서 열린 ‘북한 사회 현황과 바람직한 대북 선교’ 공개강좌에서 양정지건 통일사업팀장(한빛누리)은 대북 지원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대신,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이후 어떻게 하면 북한을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는지, 소규모 지역 교회나 단체가 손실 없이 도울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설명했다. 평화의교회에서 열린 이번 강좌는 LA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미주뉴스앤조이>, 파사데나장로교회, 평화의교회가 공동 주최했다.
다음은 양정지건 팀장의 강의 북한 사회 현황과 대북 선교 방향에 관한 내용 중 일부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남한 지원 끊긴 이후 곡물 가격 폭등…돈이 없어 굶는 상황
북한에서는 90년대 중·후반 국제적 고립과 자연 재해로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아사자가 발생했고 이를 ‘고난의 행군’이라 명명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북한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아사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고난의 행군’ 이후로 사라졌던 아사자들이 또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90년대와는 기아 양상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배급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던 90년대는 절대적인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배급이 끊기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배급이 거의 끊어진 것은 지금도 동일하고 배급으로 연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2000년 들어 없어졌던 아사자들이 왜 2008년 들어 다시 생긴 걸까?
2000년대 들어 북한에 각종 지하 시장들이 생기면서 주민들이 지하 시장을 통해 부족한 식량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부터 한국의 모든 식량 지원이 끊어지면서 시장의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쉽게 말해 쌀은 시장에 충분히 있는데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북한도 식량 수입 통로를 다각화해서 90년대처럼 피해가 심각한 건 아니지만 만성적인 식량 부족 현상이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는 중앙정부에서 시장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정책이 강화되면서 경제가 많이 경색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지난 10년 동안 북한이 상당 부분 자율화 되고 활기차진 건 사실이다. 시장도 활성화되고 남쪽의 문화도 굉장히 많이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시장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정책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조선족 교회와 새터민을 통해 북한 지원하는 방법도
우선 정부 간의 식량 지원이다. 만 톤 이상의 대규모 식량 지원 방안이다. 하지만 2008년부터는 끊어진 상황이다. 두 번째는 도움을 찾아 중국 접경 지역으로 나오는 북한 주민을 돕는 방법이다. 어려운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 있는 조선족 친척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는데 조선족들 중 친척을 도울 수 없는 어려운 경우도 많다. 조선족 교회를 통해 이런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다.
세 번째는 북한에 있는 지하 교회 성도들을 돕는 방식도 있다. 물건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러 가서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면서 교제하고 있다. 칠골교회, 봉수교회처럼 공식적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있지만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북한에도 꽤 있다. 이들을 지원하고 이들이 주변 지역 주민들을 돕도록 하는 방식이다.
네 번째는 새터민들의 가족을 돕는 방식으로 북한을 도울 수도 있다. 한국에 나와 있는 새터민이 2만 명이다. 미국에도 200명 이상의 새터민이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새터민은 가족들이 북한에 남아 있다. 일부 새터민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이 가능하고 송금도 가능하다. 새터민을 통해서 그 가족들을 지원하는 것도 손실 없이 북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다.
가급적 소규모로 자주, 현금보단 현물로
가급적 대규모 지원보다 소규모 지원이 효과적이다. 대규모로 가게 되면 떼어먹는 사람들이 많다. 소규모로 적게 여러 번 가게 되면 그만큼 접촉횟수도 많아지고 접촉하다보면 상대방도 변하게 되어 있다.
중국에 있는 조선족과 파트너십을 맺는 게 좋다. 한국 교회나 한인 교회에서 북한 지원을 많이 하는데 돕는 사람들이 북한에 직접 가려고 한다. 방문하는 건 나쁘진 않다. 하지만 가게 되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항공료는 기본이고 미국 시민권자나 한국 국적자가 입국하게 되면 다양한 지출이 발생한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수행원이 따라붙게 되어 있어서 제약도 많다. 하지만 조선족은 거의 수행원 없이 북한 주민들을 접촉할 수 있다. 같은 체제에서 살았기 때문에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에 선교 사역도 효율적이다. 조선족이 직접 사역의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도록 지원하는 게 좋겠다.
가능하면 현금보다는 현물로 지원하라. 현물로 보내도 군인들과 간부들이 다 떼어먹는다며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 군인들이 로봇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다. 10년 동안 군대에 복무해야 하는 북한 청년들은 10대 중·후반에 입대해서 20대 중·후반이 되어야 제대한다. 한창 혈기왕성한 청년들이고 이들도 먹어야 한다는 게 기독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다. 그렇다고 모든 식량이 군대로 가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군대에 보내면 부모들이 시름을 놨다. 최소한 먹고 재워주니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북한에서 군대에 안 보내려고 한다. 군대에서 영양실조에 걸려서 나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식량 보내면 간부들이 떼어먹는다는 주장도 많다.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소규모로 자주 보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간부들이 식량을 떼먹으면 그 식량을 어떻게 하겠나. 북한은 식량 수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식량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진 못한다. 결국 시장에 내다팔 수밖에 없는데 그럼 곡물 가격이 안정되고 주민들이 싼 값에 쌀을 먹을 수 있는 거다. 그래서 현물로 줘야 한다.
고립시켜서 붕괴시킬 때 그 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현 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는 고립시켜서 무너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허점이 많다. 무너지는 과정에서 과연 누가 고통을 당하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남쪽에서 쌀을 안 보내면 간부가 굶겠나 김정일의 식단이 달라지겠나. 내부의 주민들만 목숨을 잃는 거다. 고립시켜서 붕괴시킬 때 그 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역사를 바꿀 때 외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변화를 시도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전쟁을 두 번이나 일으켰지만 그 땅에 정의와 평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김정일 정권이 잘못된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그 정권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그 나라에 해당하는 인민들의 그 땅을 스스로 바꾸도록 해야지 외부의 힘으로 바꾸려고 하면 더 나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사회를 바꿀 원동력이 누군가. 바로 굶고 있는 그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삶을 이어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 사회도 변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거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
이명박 정부가 남북 대치 국면에 있으면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중국이다. 대북지원단체가 어려워졌다. 정부가 지원을 안 해서 어려운 게 아니라 단체가 스스로 모금해서 지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도 정부가 허가를 안 해준다. 그러니 중국에서 물건을 사서 북한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중국이 2008년 이후부터 국경의 관세를 엄청나게 올렸다. 달라는 대로 줘야 할 상황이다. 중국이 북한의 중요한 광산과 자원, 항구 기반 시설들을 중국이 최근 2~3년 사이에 모두 다 가져갔다. 아주 헐값에 사용권을 다 사가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봐도 한국에 좋지 않은 것이다.
돈으로 만약 무언가를 살수 있다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일까. 살 수만 있다면 가장 값진 것은 생명이다. 만약 우리가 돈으로 평화를 사고 돈으로 전쟁을 안 할 수 있다면 돈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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