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교회, 지역을 품어라
도시 교회, 지역을 품어라
  • 성석환
  • 승인 2011.02.09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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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현안을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인식해야

도시공동체연구소(성석환 소장)가 미국 지부를 설립하며 지난 1월 LA에서 '도시 목회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세미나에서 성석환 소장이 발표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합니다. 이 내용은 성석환 소장이 출간할 책의 서문이기도 합니다. (한국 <뉴스앤조이> 편집자 주)

2011년 1월 23일~24일, LA 파사데나장로교회(Pasadena presbyterian church)에서 미국 도시공동체연구소(소장 성현경 목사) 설립을 기념하는 '도시 목회 세미나(Urban Ministry Seminar)'가 열렸다. 한국교회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미국 사회의 한인 교회 역시 답답한 실정에 놓여 있었다. 한때 미국 교회의 상징처럼 칭송받던 수정교회의 파산 소식, 한인 교회의 여전한 이합집산, 목사와 장로의 이기적 알력, 신학적 근거 없는 목회 구조, 복음과 상관없는 교회 확장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난맥상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반면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하는 교회들도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도 이런 한인 교회는 대부분 신생 교회이거나 작은 교회들이다. 신학적 소신과 목회 철학을 가지고 열심히 대안을 제시하려는 목회자들이 없는 것이 아닌데, 대형 교회에서 터져 나오는 각종 부정적인 소식들로 인해 목회자들은 목회자들대로, 성도들은 성도들대로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 이 와중에 도시공동체연구소를 미국에 설립하고 도시 목회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 이번 세미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 행사를 주관하고 지원한 파사데나장로교회는 100년이 넘은 PCUSA 소속 교회로서 전통적인 백인 중심의 교회였다. 10여 년 전에 점점 줄어드는 백인 커뮤니티는 다문화 목회를 지향하면서 한인 목회자를 청빙했다. 지금까지 한인 예배를 이끌고 있는 성현경 목사는 도시 교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전통 교회가 어떻게 재생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지금은 건강한 도시 목회의 긍정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는 이 교회는 한인, 일본인, 중국인, 히스패닉 등 다문화 교회로 성장하고 있고 청년들과 초신자들이 많은 교회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넓히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지역을 섬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대적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게 대처하려고 노력한다. 

사역 10년을 맞이하여 도시공동체연구소의 미국 지부의 소장을 맡은 성현경 목사는 앞으로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도시 목회의 창조적 모델을 제시하고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 목회적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 복음적 신앙과 사회적 책임을 공히 강조하면서도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들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인 교회에 새로운 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을 포함하여 신학자, 전문가들을 네트워킹하여 미국 사회의 한인 공동체가 생존과 고립의 삶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하기를 원한다. 

   
 
 

▲ 도시공동체연구소가 미국 지부를 설립하고 지난 1월 '도시 목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 제공 미주뉴스앤조이)

 

 

특히 미국 연구소가 한국 연구소를 통해 한국교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다문화 목회에 대한 실천적 매뉴얼이다. 다문화·다인종 국가에서 한인 교회가 지역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모델을 잘 연구한다면 그것은 앞으로 다문화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한국교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세미나에서 함께 소개된 착한 소비 운동을 통한 지역공동체 섬기기 프로젝트도 미국 연구소를 통해 전개될 것이다. 카페를 중심으로 지역과 소통하고 문화 예술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착한 소비 운동을 전개하려고 한다. 이날 현지 발제자들도 다수 참여하였는데 이들과 연대를 더욱 넓혀 갈 계획이다. 

2010년 3월, 도시공동체연구소(The Center for City & Community)는 이런 일을 위해 설립되었다. 연구소의 설립 목적은 '교회가 지역의 일원으로서 지역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도록 지원하고 돕는 것'이다. 본 연구소는 21세기 환경에 맞게 네트워크 체제로 운영되며 프로젝트와 콘텐츠를 중심으로 사역이 이뤄지도록 했다. 도시공동체연구소는 '착한 소비 네트워크', '지역 교회 네트워크', '창의적 목회자 네트워크', '기독교 문화 행동 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되어 해당 콘텐츠를 매뉴얼로 만들어 지역 교회에 공급함으로써 지역 교회가 각 지역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목회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아래에 이번 세미나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였다. 

지역을 위한 교회, 세상을 향한 교회 

지역사회의 발전과 복지에 기여하는 교회, 하나님나라의 공의로운 삶의 방식을 지역공동체 속에서 실천하는 교회, 지역의 제반 현안을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는 교회에 대한 관심이 한국교회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 속에서 고조되고 있다. 이는 개신교의 대사회적 신뢰도가 계속 하락하고 교세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모면하려는 교회 성장론의 아류들과는 다른 관심이다. 교회의 본질적인 존재의 목적을 수적 성장이나 교세의 확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상과 타자, 그리고 지역과의 관계를 통해 규명하려는 신학적 태도인 것이다. 

지역과 지역 교회 

본질적으로 교회는 모두 지역 교회(Local Church)이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 '하나의(one) 거룩하고(holy) 보편적인(catholic) 사도적(apostolic) 교회'의 신학적 정의가 정통 교회론의 근간을 이뤄 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전개된 새로운 영성과 공동체에 대한 열망은 정통 교회론을 새롭게 재해석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이 서구 교회의 그것과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기반을 둔 신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었다. 지역적 문제들에 응답하는 신학들은 근대 신학의 '주-객관 도식'과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세계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를 상황(context) 속에서 해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역에 대한 관심은 지구화 국면의 가속화에 대한 반작용적 측면에서도 고조되었다. 이른바 지구지역화(glocalization)라 불리는 이 상황은 지구화가 진전될수록 지역화도 함께 강화된다는 것인데, 그동안 소외되고 무시되었던 소수자들의 의견과 생각을 다원화된 세계 시민사회에 소개하는 역할도 하였다. IT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은 21세기의 지구 사회가 더욱 다양하고 다원적인 모습으로 변화되도록 이끌고 있다. 물론 소비주의와 물신주의에 물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계속되고 있어서 지역을 소외시키고 타자를 배제하는 지구화의 부정적 양상도 지속되고 있다. 동시에 이에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통해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은 스스로 자립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고,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의 역량이 함께 강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기를 지난 후 지역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민주적 성숙을 위한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었다. '마을 만들기'나 지역공동체, 도시 공동체 등의 의제는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지방정부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과제가 되었다. 초기에 전시적이고 소모적으로 전개되던 행사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앙정부의 시각이 아니라 지역 자체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역 문제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 자치 운동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지역 교회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도시 빈민 선교나 인권 운동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과거의 지역 교회 운동은 이제 변화된 사회·문화적 다원화의 환경 속에서 도시적 삶의 주민자치를 실현하려는 노력과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만큼, 지구지역화의 새로운 양상과 도시적 삶의 특수성을 분석하여 그에 대응하는 실천적 교회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한국의 대다수 주류 교회들은 단기적 교회 성장 프로그램을 수입, 적용하여 외부와의 소통보다는 내부 결속을 더욱 강화했다. 그 결과 지역사회와는 무관한 공동체로 고립되거나 시민사회로부터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배타적 집단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공적 책임과 지역 교회 

이러한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시도들은 기성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소통과 공공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대중문화나 시민 단체와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동시대 언어로 번역하는 일과 공공 영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행동 양식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설득력은 단지 신학적 논의나 담론으로 확보할 수 없고, 각 상황과 지역의 특수한 현실과 현장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실천적 각론이 필요했다. 이 점에서 한국교회는 이에 대응할 신학적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고, 여전히 대형 교회 중심의 중앙집권적 목회 구조를 가지고 있던 교회는 지역에서 공적 역할을 감당할 실천적 현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지역의 일원으로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교회의 물적, 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지역의 주체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주로 중·소형 교회들이 모색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또 서구적 시각에서 제기된 신학이었지만 기독교의 정체성을 세계와 타자와의 관계성을 통해 규명하고 공적 역할을 강조하는 '공공 신학(public theology)'은 한국교회에도 신선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다. 예컨대 트레이시(David Tracy)는 '모든 신학은 공적 담론'이라고 보았던 것처럼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 공공성을 부각시키고 홀렌바흐(Hollenbach)나 스택하우스(Stackhouse)의 논의를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응답하려는 노력들이 그러했다. 

'공공 신학'은 여러 갈래에서 그 신학적 정의와 실천을 연구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윤리적 관점에서 이 신학을 지역 교회의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한 근거로 제시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 신학'은 '공공의 삶(public life)'을 해석하고, 사회제도, 단체들과 대화하면서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에 본질적으로 윤리적이다." 이러한 입장을 근거로 삼는 것은 지역공동체를 위한 지역 교회의 과제가 단지 구제나 자선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의 정치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의제들을 포함해야 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지구지역화 국면이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지역에서 발생하는 삶의 모순들과 고통스러운 현실들은 근본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의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공적 방식의 참여, 즉 주민자치적 접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지역에서 공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지역사회를 선교 대상으로만 인식한 탓에 대부분의 지역사회에서 한국교회는 지역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지역과 관련을 맺는다 해도 대부분 전도와 개종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인식되곤 한다. 시민사회에서는 환경 문제나 경제 정의 문제, 또 지역개발 문제에 지역 주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운동을 이미 꽤 오래 전에 시작했지만, 한국의 지역 교회들은 이런 문제들을 자신들의 신앙과 무관한 것으로 인식하고 지역의 변화나 지역 주민들의 삶에 대한 일상적 관찰에 소홀했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이 가장 효율적이다. 현대사회의 의사소통 구조를 볼 때, 일방적이거나 강제적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반면 문화적 방식의 유연한 전달이 효과적이다. 지역 주민이 자연스럽게 미학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문화·예술을 통해 자신들의 잠재된 역량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지역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공적 역할 중 하나이다. 문화 교실, 카페, 독서 토론, 환경 교실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만나고 미학적 접촉면을 늘려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지역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도시와 도시 공동체 

오늘날 지역공동체는 도시 공동체이다. 도시적 삶은 현대인의 보편적인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근대화 초기에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이 형성한 도시는 모든 자원이 풍부한 곳이지만 이전의 혈연이나 지연으로 엮인 공동체는 사라졌다. 공동체를 상실한 현대인은 어디엔가 소속하기를 원하지만 주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참여하는 소속감을 원한다. 도시는 복잡하고 풍요로운 공간이지만 동시에 관계의 빈곤과 분열을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시인의 삶은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빈곤을 동시에 경험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동일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누리면서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일시적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곧 지치고 식상하고 외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도시에 필요한 것은 관계와 소속감이며, 그것은 곧 스스로 참여하고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도시 공동체는 단지 지역적 경계로 한정되는 정주 공동체이거나 지리적 공동체가 아니다. 도시 공동체는 관계를 통해 형성된 일종의 문화 공동체이다. 가치, 생각, 관심사, 행동 양식 등을 공유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공동체이다. 나아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넘어 외부의 세계와 타자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공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북돋우는 공동체이다.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도시 교회는 도시적 삶의 모순과 고통을 발생시키는 지역의 현실과 모순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지역을 섬기려는 공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런데 교회의 공적 태도는 단지 보편적인 행동 양식이나 합리적인 대안 제시와 같은 공적인 행동 양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교회의 행동 양식은 기독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지역사회에 영적인 지도력을 갖는 것을 포함한다. 지역을 위한 사회적 봉사는 신앙적 가치를 지역인의 삶 속에 넘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나라의 원칙과 가치를 지역공동체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도시인의 삶에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문화적 방식으로 개입시키는 것,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모순의 원인을 스스로 파악하고 보다 정의롭고 공의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지역의 환경을 개선해 나가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지역 교회의 도시 공동체 선교인 것이다.

성석환 / 도시공동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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