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웰빙'
샬롬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웰빙'
  • 이태후
  • 승인 2011.02.10 15:5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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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살롬의 의미, 네 가지로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21세기의 지적 기상도를 압축하는 용어라면, 탈 기독교 사회는 미국과 서유럽의 영적 상태를 적절하게 함축한 표현이다. 종교 개혁과 영적 대각성 운동의 산실인 서구 사회가 이렇게 된 이유는, 대다수의 지성인들이 기독교의 가치와 교리가 더 이상 그들의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필요한 지적인 토양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이렇게까지 전락(!)한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대다수의 교회가 구원을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개인을 위한 배타적인 특권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선포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런 편협한 복음 해석을 "당신들의 복음"으로 단정하고, 기독교는 더 이상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종교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복음은 죄로 인해 파괴된 피조 세계 전체를 향한 회복의 기쁜 소식이다. 무엇을 회복한다는 말인가?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을 회복한다는 의미라고 대답하겠지만, 여기에서 세상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의 넓이와 깊이를 결정한다.

교회 안에서 세상을 논의할 때에는 흔히 지극히 소시민적인 개인의 영역에 제한되거나, 비기독교인들은 제외되는 '우리들만의 세상'인 경우가 많다. 회복의 메시지가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이라고 당돌하게(!) 주장하려면, 우리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인 창세기로 돌아가야 한다.

   
 
  ▲ 히브리어로 샬롬. (출처 : 위키피이다)  
 
창세기 1 장에 기록된 창조 서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 선한 것임을 선포한다. 창조의 매일을 마감하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후렴구는 단순히 미적 찬사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는 창조주의 손길을 간직한, 그의 영광과 지혜를 드러내는 선한 것임을 선포하는 윤리적 명제이기도 하다.

창세기 2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에게 허락하신 에덴동산을 만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 2:8-14)

잠시 이 구절을 바탕으로 에덴동산을 상상해 보자. 에덴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먹음직스런 과일을 맺는 나무들이 종류별로 자라고 있다. 동산에서 강이 시작해서 네 곳으로 흘러가는데, 물줄기가 이르는 땅에는 금, 호마노등의 귀금속이 풍부하다. 여기에서, 이 말씀이 의도한 처음 청중은 고대 근동지방에 살던 사람이라는 걸 상기하자. 그들이 살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물은 생명을 상징한다. 아무리 황무한 벌판이라도 물만 있으면 오아시스가 생기는 곳이기에, 네 강의 근원인 에덴동산은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이다.

이런 에덴동산은 다음의 단어들로 묘사할 수 있다. 풍요, 아름다움, 조화, 생명… 누구나 누리고 싶어 하는 이런 삶을 성경학자들은 '샬롬'이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에덴동산에 있는 인류의 조상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샬롬의 삶이다. 흔히 평화라고 번역하지만, 갈등의 부재라는 수동적 의미로 쓰이는 '평화'는 히브리어 샬롬의 뜻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우리는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왔다고 말하고, 관계를 파괴했던 폭력이 사라지면 평화를 얘기한다.

그러나 갈등의 부재는 아직도 국가 간에 남아있는 적대감이나 인간관계에 남아있는 앙금을 해결할 수 없다. 샬롬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누렸던 충만하고 풍성한 삶을 함축한 말 - 사물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바(the way things should be)다. 단지 갈등의 부재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용서와 사랑, 풍성함이 있는 상태가 샬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는 네 가지 샬롬을 누렸다.

첫째, 영적 샬롬(spiritual shalom)이다.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과 온전한 인격적 관계를 누렸다.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같은 친밀한 사이였다. 하나님은 그 분의 생각을 아담에게 알리셨고, 아담은 그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하나님은 아담의 존재 의미를 부여해주셨고, 아담은 하나님을 통해 온전한 인격체가 되었다. 아이들이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는데 부모의 존재와 역할이 필수적인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는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데 절대적이다. 질병, 죽음,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 격동하는 역사의 흐름 - 이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것을 알 때에, 그리고 그 절대자가 나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내 '아버지'라는 걸 이해할 때, 우리는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둘째, 심리적 샬롬 (psychological shalom)이다. 아담과 이브는 건강한 자아관을 지녔다.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창조주의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비교에 의한 열등감이나 자만심이 아닌, 자신들을 걸작품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상적인 인류의 조상으로 그려냈다. 그런데 설령 그들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더라도, 혹은 피부 색깔이 달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한, 그들은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셋째, 사회적 샬롬(sociological shalom)이다. 아담과 이브는 자신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체성을 타인을 차별하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 2:23) 해부학 시간에나 들을 법한(?) 표현이지만, "당신은 내게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표현이다. 아담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창조된 이브. 그녀를 통해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브와 아담은 서로 독립된 존재이지만, 동시에 이브가 아담 자신의 일부 아니, 가장 훌륭한 부분이라는 시적인 표현 속에 억압이나 조작을 위해 나와 타자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인위적인 구별은 사라진다.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서로의 동일성을 확인하고, 나와 상대의 차이를 통해서는 창조주의 다양성을 찬양하는 건강한 관계를 통해 아담과 이브는 사회적 샬롬을 누릴 수 있었다.

넷째, 생태적 샬롬(ecological shalom)이다. 아담의 역할은 동산 지기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아담이 처음 한 일은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는 것이었다.(창 2:19)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를 통해 아담과 피조 세계는 인격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 곳곳에 스민 하나님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 동산을 돌보는 일을 특권으로 여길 수 있었다.

동산 지기인 아담은 동산의 생태계를 돌보았고, 나무와 동물들은 아담과 이브가 사는 조화로운 생태계를 구성했다. 상호의존이라는 건강한 관계가 사람과 생태계가 상생하는 지혜였다. 이처럼 인간이 온전한 인격체로 존재하는데 필요한 모든 관계에 깃든 화평을 통한 풍요로운 삶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위해 마련하신 샬롬이었다. 누가 이런 삶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런 샬롬의 삶이야말로 '웰빙'의 삶이지 않은가?

이태후 목사 / ROCK Project 대표

* 이태후 목사는 필라델피아 빈민가 주민들의 이웃이 되어  8년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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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day^^ 2015-04-30 15:24:46
나와 상대의 차이를 통해서는 창조주의 다양성을 찬양하는 건강한 관계를 통해 아담과 이브는 사회적 샬롬을 누릴 수 있었다.. 사회적 샬롬~^^

샬롬~^^ 2015-04-30 15:21:07
샬롬~^^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항상 샬롬안에서 행복합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