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 김성회
  • 승인 2011.05.17 15:20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음주의 원로들의 민주화 운동 참회에 부쳐

오랜 기간 동안 양심적인 목회를 해온 이동원 목사와 교회 개혁의 앞자리에서 헌신해온 이만열 교수 두 분 다 공히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민주화'의 시기에 자기 역할을 못한데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글로 남겼다. '다 이루었다'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국 현대 교회사에서 이름 석 자를 올릴만한 인물들 중에 이들처럼 솔직한 자기 고백을 남기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해체 등 교회 개혁의 열풍이 거세게 불어오는 가운데 두 분의 고백은 매우 절절하게 다가온다. '기독교'라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종교인지를 일간지 일면 기사에서 봐야 하는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신앙인인 나에게 가혹한 시련의 기간이다. 그런 와중 들려오는 두 분의 참회와 고백은 후배들에게 "이 종교에 남아 있는 희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신발 끈을 고쳐 멜 용기를 준다.

이런 분들의 "자기 평가"에 이러쿵저러쿵 할 자격이 나한테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소위 이 분들의 "신들메도 메지 못할" 주제임을 잘 파악하고 쓰는 글이라는 점 또한 밝혀두고 싶다.

1970년대 한국의 기독교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스러지던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1970년대의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는지 경험으로는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의 민주화 운동이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고문을 당하고, 제 자신으로 모자라 가족을 다 희생시킨 수많은 "목사"들과 "교인"들의 희생에 기초했음을 역사책을 통해 읽어볼 기회는 있었다.

1970년대의 운동권들이 시위에서 했던 요구가 무엇이었나? "유신 철폐, 독재 타도." 지금 들어보면 어찌나 당연한 이야기인지. 지구의 반대편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무바라크의 30년 장기 집권 철폐와 독재 정권 타도"에 한국 사람들 모두가 박수를 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선 70년대 운동권들의 요구는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로 보인다.

하지만 70년대에 그런 요구를 하던 사람들에게 박정희 정권은 어떤 대응을 했던가? "빨갱이들의 국가 전복 기도"에 맞서 수많은 사람을 옥살이시키고 군대로 보냈으며 그것도 모자라 재판으로 사법 살인을 해버렸다. 그나마 사형의 기록이라도 남아있는 유족들은 이제 명예 회복이라도 됐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 됐다 변사체로 발견된 민주 인사들은 지금도 억울함을 달랠 길이 없다. 시체를 찾지 못한 채 40년째 행방불명인 이들의 유족의 마음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잃어버린 40년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되기까지 수많은 민주 인사들과 희생자의 유족들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기고 천대 받고 멸시 받고 정권에게 탄압을 당해왔다. 그들은 감옥에서 거리에서 가난한 달동네에서 "생존"을 위해 고단하고 지난한 싸움을 해야 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 정점을 달리던 시절의 구호는 어떠했던가?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여덟 글자가 모든 것을 말해줬다.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발표된 4.13 호헌(護憲) 조치(체육관에서 계속 간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발표)의 폐지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당시에는 다 빨갱이의 주장이었다.

전두환이 누구인가? 80년 광주에서 수많은 자국민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했던 자다. 한경직·문만필·조향록·김지길·장성칠 목사 등 교계 지도자들은 1980년 8월6일 이른 아침 학살자 전두환을 위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어줬다. 정진경 목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광주 금남로의 핏자국이 가시지도 않은 여름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간 통치는 과거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명예를 회복해줬고, 역사는 이제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기하고 있고, 수많은 투옥 인사들은 명예 회복과 함께 보상금을 받는 시대가 왔다.

시대가 이렇다 보니 이제 예전에 운동 좀 했다는 것은 창피한 빨갱이 짓이 아니라 자랑이 되었다. 70-80년대 운동권들은 이제 학부모가 되어 자기 자식에서 "이 아빠도 87항쟁의 한 복판에서 최루탄에 콜록 거리며 독재자를 몰아내는 데 한몫했단다"라는 자랑을 하는 세상이 됐다.

소위 데모가 '쿨'한 것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정권의 고위직에도 수많은 정치인들도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투옥의 훈장을 달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범죄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재평가 받은 것이다.

이동원 목사와 이만열 교수가 자신이 참여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운동이 바로 이 "민주화 운동"이었다. 이미 역사적으로 더 이상 "나쁜" 짓이나 "빨갱이"들이 하는 짓이 아닌 것으로 판정 받은 일들이다.

21세기의 빨갱이들은 누구인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는 "빨갱이"들의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21세기의 빨갱이들은 누구인가. 많은 목회자들도 진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다.

정재규 목사(기독교지도자협의회 상임총무)는 2008년 한 방송국의 토론회에 나가 영등포산업선교회를 거론하며,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치고, 데모를 주도하고 있다'며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가르치는 것을 문제 삼았다. 노동자니 좌익이라는 논리였다.

이런 관점에선 쌍용자동차 노조는 빨갱이 소굴이다. 공장을 점거하고 진압 경찰들에게 무력으로 저항하는 노조, 각종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로 사회 안정을 해치는 노조. 이것이 우리가 신문을 통해 읽고 있는 "보도된 사실"이다.

'진실'은 무엇인가. 정리해고 당하고 해직 당하고 소송 당한 노동자 중 벌써 14명이 자살을 했다. 이들의 희생은 자살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타살"이라는 단어가 더 타당해 보인다. 절박하니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는 것이고, 저항해도 안 되니 죽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빨갱이로 살고 싶어서 저항하는 것이 아니고, 직장에 다니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저항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기독교사회책임은 김삼환·김준곤 목사 등을 고문으로, 서경석·김요한 목사 등을 공동대표로 해서 출범한 기독교 NGO 단체다. 용산 참사 이후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를 보면 "(전국철거민연합은) 사제(私製) 총과 화염방사기를 사용하여 철거민 농성을 '비타협적 빈민해방투쟁'의 수단으로 삼아온 단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철거민들을 선동해서 반정부 투쟁을 획책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해 온 전철연을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이들 눈에는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이 '사제 총과 화염방사기를 동원하는' 빨갱이들이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설득도 없이 경찰은 진압을 시도했다. 철거 명령 전까지 빌딩 한편에서 가게를 하던 44명의 아저씨들 중 4명이 죽었고, 나머지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남편은 불에 타 죽고 자식은 5년 징역을 살게 된 부인도 있었다.

'진실'은 무엇인가. 토지정의시민연대와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이 개최한 '용산참사와 토지문제의 제도적 대안 제시를 위한 토론회'에서 김윤상 교수(경북대)는 토지 불로소득의 심각한 폐해를 지적한 바 있다. 빌딩 재개발로 한 몫 잡으려 건물주와 건설 업체는 권리금도 주지 않은 채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했고, 세입자들은 저항했다. 이들은 용역 복장을 입은 깡패들을 동원하고 경찰은 그들과 무전까지 주고받으며 건물주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진압의 기본 수칙조차 무시한 채 강경 진압을 하다 한명의 소중한 경찰관의 희생까지 불러온 것이다. 그들은 권리금이라도 보상받아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싶어 하던 막장에 몰린 상인들이었을 뿐이다.

중산층 취향의 도를 넘으면 "빨갱이"

돈(資)이 중심(本)에 있는 것이 자본주의다. 성경에서 그렇게 꾸짖는 맘몬이 주인인 세상을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국경을 뛰어넘는 초국적 기업의 무한 경제 활동을 보장하라는 자본의 요구를 이론화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간 한국은 정부 통계로 33.8%, 민주노총의 통계로 50%가 넘는 비정규직의 나라가 돼버렸다.

돈이 주인이 되니 인간은 부품이 된다. 고정된 일자리도 없이 항상 해직의 두려움에 시달려야 하는 비정규직의 사회에서 인간은 부품일 뿐이다. 이야말로 비성서적이지 않은가? 예수님의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 6:24)를 알고도 모른 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돈이 주인임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사회는 빨갱이라 부른다.

아이들의 기본 권리인 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무상 급식은 또 하나의 좌익 책동이 되어가고 있다. 김장환·김삼환·최성규·이광선·길자연 목사 등 개신교계 원로가 대거 참여한 ‘복지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는 서울시로부터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시행을 위한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를 교부받았다. 주민투표 발의가 가능하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는 조용기 목사의 합류로 한 번에 정리됐다. 이 국민운동본부는 "반민주적 기만과 선동에 불과한 각종 복지 포퓰리즘을 우리 사회에서 원천적으로 추방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이참에 빨갱이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봤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빨갱이는 "중산층의 취향에 맞지 않는 과격한 주장을 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총칭"이었다. 한때는 민주주의만 주장해도 빨갱이였고, 남북정상회담만 주장해도 빨갱이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경우도 "흑인"의 인권 문제에서 시작해 노벨상을 받은 이후 반전과 "경제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흑인은 "자본" 때문에 결코 평등해질 수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의 암살 당하기 전 마지막 설교가 멤피스 지방 노동자들의 파업지지 설교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권 운동을 하는 흑인 목사는 견딜 수 있었지만, 노동자를 선동하는 빨갱이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의 암살 시점이 주목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예수를 잡아 죽이자고 공모한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었고, 율법에 어긋나지 않은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올곧은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들이 예수를 빨갱이로 몰아 십자가에 세웠다. 로마 시대의 십자가형이란 반국가사범과 강력범만을 위한 처형 제도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마을 어귀로 내몰린 이들을 감쌌던 예수

21세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빨갱이다. 비정규직 주제에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주장하고, 임금이 정규직의 60% 밖에 되지 않는다며 동일 노동에 대해선 동일 임금을 달라고 주장하는 자들. 건물주의 퇴거 통보에 맞서, 개발 수익이 충분하니 권리금은 돌려달라고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공권력에 저항하는 자들.

교회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있다.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찍은 채 고단하고 괴로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교회의 품으로 감싸는 일이다. 애당초 하나님이 예수를 갈릴리에 목수로 보낸 이유가 그것 아니었나.

이 "빨갱이"들에 대한 연대와 보호라는 실천이 없는 20세기에 대한 두 분의 사과는 청년들에게 "내 목사보다 쿨 한" 교계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21세기에 소외된 계층을 감싸 안기는 부족해 보인다. 두 분이 교회 개혁을 부르짖고 과거를 참회하는 이 순간에도 소외 받은 이들은 함께 싸워 줄 사람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비정규직과의 연대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하지 못했다"며 참회하는 어떤 목사를 만나려면 다시 30년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한번 클릭 손해 없습니다 대박나 2011-05-23 19:16:13
한번 클릭 손해 없습니다 대박나서 벤츠타세 주소창에 g o n i 8 8 . c o m << 고니88
.
국제 자격증 취득(합법)채팅.전화상담 홈피참조
.
1억까지 스피드 출금 - 1:1 안전전용계좌 운영
.
첫 입금시 5%로 추가충전 이벤중!
.
연예인,운동선수,정치계쪽에 종사하시는분들이 인정하는곳
.
클릭순간 당신의 꿈이 현실로 >> 도전하세요!

하늘땅바람 2011-05-19 21:49:52
글쎄... 그 시절에는, 독재와 반독재의 선이 분명했고, 지배계층과 소외계층의 선이 분명했지요. 하지만, 그 시절의 참회(사실은 겸손의 돌아봄입니다)를 놓고 현 시점에 유추하여 대립과 투쟁의 선동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입니다. 지금은, 과도민주화로 인한 이해관계와 정략적 투쟁만 있지요. 독재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유치한 애들이 현재를 과거의 프레임으로 재단하면서 자기 정략 구현하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입니

아톰 2011-05-19 12:40:46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요즘 들어 옛날에 이러저러한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지 못하고 무관심했던거 참회한다... 이런 고백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뭐 버스 지나간다음 그런말 자꾸 한들 뭐하겠습니까... 그런 '말'보다는 김성회 기자님 지적대로 '아직도 봄을 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뚜벅 뚜벅 '행동'으로 나서는게 훨 진정성을 보여주는 길이 아닐까.... 뭐 이런 생각.

wordservant 2011-05-19 02:51:55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목사님들과 교회는 남한의 "복지국가"를 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지국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복지는 자선이 아니고, 권리입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남한이 복지국가가 될 때, 남북통일도 더 쉽고, 더 빨리 이루어지며, 북한의 복음화도 앞당겨 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