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의 목사였구나'
'그는 나의 목사였구나'
  • 양혜원
  • 승인 2011.07.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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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

유진 피터슨 회고록의 초점은 온전히 '목회'다. 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목사라는 정체성이 이렇게까지 그의 핵심을 이루는 줄 몰랐다. 처음 피터슨을 소개받았을 때(1998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의 프로필이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 칼리지의 영성신학 교수였고, 그의 책이 아주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피터슨에게 목사라는 정체성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한국에서는 교수가 목사보다 위에 있지 않은가. 한국의 신학교 교수들은 목사라는 직함도 놓고 싶지 않아 어느 교회에 살짝 적을 두지만, 주된 활동은 교수로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터슨은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사로 여겼다. 그의 저술 활동은 목회와 분리된 활동이 아니라 목회의 일환이었다. 29년 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한 그의 이력은 그냥 어느 교회에 적을 둔 생활이 아니라, 그의 생활의 중심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목사가 된 배경과 목사로서 살아온 삶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회고록은 현장의 교회론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영성신학 시리즈 마지막 권인 <부활을 살라>에 나오는 내용이 회고록의 한두 페이지에 고스란히 반복되기도 한다. 그의 저서들이 그의 목회 현장을 그대로 담은 것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피터슨은 때가 되었음을 감지하고 29년간의 목회에 마침표를 찍고 강의와 번역으로 자신의 사역을 옮겨가면서 이러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 유진 피터슨 지음 / 양혜원 옮김 / IVP 펴냄 / 504면 / 1만 9,000원  
 
"목사로서의 삶은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 상실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죽음처럼, 마치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의 목회를 떠나서(목초를 떠나서라고 해야 할까?) 사막으로 간 것처럼, 그 느낌이 생생했다. 잰과 나는 이 일을 마지못해 하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새로운 임무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점점 힘을 얻어 가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더 이상은 회중의 목사로 살기가 벅차다는 것을 잰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전환이 얻는 것만큼이나 잃는 것도 있는 전환이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략)…

피츠버그신학교 학장인 샘과 그의 아내 도리스가 우리가 밴쿠버로 떠나기 전날 저녁에 자기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다. 그때 그가 물었다.

'목사가 아니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일 것 같은가?'

'친밀감이지. 모든 사람의 이야기에 우리가 한 부분이 되고 그들이 우리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되는 친밀감 말일세. 평범한 삶과 구원의 삶이 뒤섞여 있는 그 일상이 그리울 거고, 기도로 발전되는 대화가 그리울 걸세. 이 문화의 세속성과 개인주의를 은연중에 뒤집는 예배와 환대도 그리울 거고.'"

현장의 교회론 같은 이 책은 또한 목회학 교과서 같기도 하다. 목사를 남편으로 둔 나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목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남편이 하는 일을 보면서 목회가 때로 사람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일 같아 보이기도 했고 사생활이 없는 일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남들 쉬는 날 일하고 일하는 날 쉬느라 친구도 가족도 잘 만나지 못하는 고립된 생활이 갑갑하기도 했다. 그 생활 자체가 주는 여러 가지 불편함에 대한 토로는 많아도, 결국 목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에 대해서는 딱히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남편도 그것을 무엇이라고 딱히 설명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 신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목회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구나 싶었다. 사실은 피터슨 자신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목회를 스스로 찾아 갔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그 길에 대한 안내다. 그는 목사로 살면서 목회를 배웠고, 자신이 깨달은 목회를 여기에 고스란히 담았다. 신학교에서 목회를 가르쳐 주지 않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목사가 하는, 딱히 보이지도 않고 정의하기도 힘든 그 일을 피터슨은 이렇게 책으로 기록함으로써, 비로소 목사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었다.

영성신학 시리즈의 첫 권부터 시작해서 약 6년을 해마다 피터슨의 책을 한 권씩 번역하며 지냈다. 즐거운 학생처럼 번역했다고 했는데, 이 마지막 책을 번역하면서는 '그가 나의 목사이기도 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2000년에 <빛과 소금>과 한 특별 인터뷰에서 그는 목회자들이 영성 없이도 설교, 교육, 행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위대한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가르침도,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성신학을 가르쳤다. 영성신학이라는 또 하나의 과목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신학, 역사학, 성경해석학 과목에서 배운 바대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일로서 영성신학을 가르쳤다.

<현실, 하나님의 세계>에서 피터슨은 영성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영성'은 '신학'이 하나님과 멀찍이 거리를 둔 채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으로 타락하지 않게끔 해 준다. '신학'은 '영성'이 그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이 되지 않게끔 해 준다."

영성신학에 대한 대화에서부터 시작해서 영적 독서에 대한 대화, 예수님의 길에 대한 대화, 예수님의 언어에 대한 대화,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에 대한 대화로까지 이어지는 영성신학 시리즈는 '목회 현장'에서 영성이 신학을 벗어나지 않고 신학이 영성과 무관해지지 않도록 그가 설교하고 가르친 내용이다.

그는 '살아 낸 신학(lived theology)'이라는 표현을 썼다. 목사나 신학생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누구나 살아 내야 할 신학이다. 이렇게 긴 대화를 시작하게 된 배경의 이야기로 그의 회고록이 있다. 혹 지금까지 피터슨의 영성신학을 미처 접하지 못했다면, 이번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이 대화에도 한번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양혜원 / <유진 피터슨> 번역자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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