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마지막 사역으로 택한 하용조 목사에게 바이런의 답을 전하며
건축을 마지막 사역으로 택한 하용조 목사에게 바이런의 답을 전하며
  • 최태선
  • 승인 2011.07.21 15:35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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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목사의 평화의 사람들, '주인을 만난 물'

어떤 대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은 종교학 시험 시간이었습니다.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의 기적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라는 것이 그날의 문제였습니다. 강의실 안의 모든 학생들은 저마다의 답안을 열심히 작성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감독을 하던 교수는 답안지에는 단 한글자도 적지 않은 채 창밖의 먼 산만 바라보는 한 청년을 발견했습니다. 그 교수는 그 청년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왜 답안을 작성하지 않나?' 그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쓸 말이 없습니다.' 교수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기 5분전까지도 그는 미동도 않은 채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강의실엔 그 교수와 청년만 남았습니다. 그 교수는 청년에게 다가가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쓴다면, 낙제는 없을 걸세.' 그 청년은 이윽고 펜을 들더니 그 답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 사진공동취재단  
 
이 답안으로 인해 최우수 학점을 받은 그 청년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었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바이런이 왜 불멸의 시인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천재성을 그는 그 한 줄에 유감없이 담아내었습니다. 그의 답안에 최고점을 준 교수 역시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이런의 답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통전적인 이해와 통찰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도 건축한다, 하용조 목사의 마지막 사역"
 
최근 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국의 온누리교회가 "우리도 건축한다", "하용조 목사의 마지막 사역, 예배당 부지 500여억 원에 매입"이라는 기사 제목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 제목 가운데 하용조 목사의 마지막 사역이라는 부분이 제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사람이 인생이 끝나가는 시점에 이르면 살면서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해 회한을 가지거나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그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어서도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영원을 감지할 줄 아는 존재의 몸부림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남는 경우가 거의 없고, 자신의 이름을 가급적 알리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남는다는 것을 역사는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notorious가 아닌)
 
성경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고자 애쓴 사람으로 우리는 헤롯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무덤 속으로 사라진 채 잊히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무덤은 사람들이 영원히 그의 권력과 중요성과 명성을 인식하고 그것에 감동하도록 고안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장엄한 장소였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사람들은 그곳을 방문하고 그 엄청난 규모와 크기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예수 탄생 교회가 있는 베들레헴으로 예배하러 가는 사람들의 숫자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1.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감람산에서 남쪽을 바라다보면 헤롯의 무덤인 산위의 궁전 헤로디움이 지금도 지평선 위로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헤롯이 해놓은 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34년 동안 팔레스타인을 지배했습니다. 정치적으로 그는 권력에 굶주린 로마와 종교적인 여러 유대 종파와 갈수록 늘어나는 헬라파 유대인들을 조정해서 질서와 번영의 외양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예술과 건축, 문학 작품과 연극 공연, 스포츠 등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특별히 그의 건축 사업은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 원형 경기장 및 각종 경기장, 궁전, 신전, 요새, 수도관, 광장, 도로, 신도시, 분수, 그리고 최고 업적인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 흔적은 오늘까지 남아 있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역을 가면 어디서나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온누리교회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땅 한 평을 주신다면'이라는 광고가 교회 곳곳에 붙었다. ⓒ뉴스앤조이 유영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의 DNA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의 DNA 속에는 가시적인 업적에 대한 영원한 갈증이 진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예외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피라미드와 만리장성 대성당과 모스크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는 인간의 야망과 그들이 꿈꾸었던 모든 것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졌듯이 그러한 모든 것들은 무너질 것입니다. 특히 어떤 것들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막13:2) 것입니다.
 
물론 건축이라는 것은 모두 다 의미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연방 유대교 최고 랍비인 조나단 색스는 이스라엘이 언약공동체로 탈바꿈한 것은, 애굽에서 경험한 이적 때문도, 광야에서 맛본 만나 때문도, 홍해가 갈라진 사건 때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 하나님을 모실 성막을 짓기 위해 협력하면서 그들은 분명한 지향점을 가진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건축의 과정을 지나면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모든 교인들이 합심하고 일치하는 단합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연습하는 좋은 훈련의 기회도 제공합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인생을 하나님 중심으로 모으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건축을 마친 후에도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더 많은 역할과 기회를 창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스라엘의 성막 짓기와 비교하거나 관련지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특히 개신교는 '개교회주의'라는 치명적인 암에 걸려 있습니다. 이제는 일반 암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암 덩어리 자체를 친구로 여기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무리하게 그것을 도려내려 하거나 파괴하려 한다든지, 그 반대로 정상적인 세포를 키워 암을 이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생명 자체를 죽이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규칙적인 운동과 바른 섭식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함으로써 몸의 면역력을 키우면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 가능한 바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기준이 되는 생활방식이다. 행복하길 원하면 보잘것없는 이웃을 사랑하면 된다. 보잘것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행복은 내 스스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영남)
 

   
 
  ▲ 민들레 국수집. (출처 : 민들레 국수집)  
 
민들레 국수집이 건물로 하나님나라를 웅변했나?

민들레 국수집 사장 서영남 님의 말입니다. 그는 2003년 4월 1일 만우절, 배고픈 이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하는 거짓말 같은 식당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국수라도 배불리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국수집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며칠씩 끼니를 거른 이들에게 국수를 대접할 수가 없어 밥을 짓기 시작한 이래 국수는 한 번도 팔아(?)본 적이 없는 이상한 국수집입니다. 하루 500여 명이 애용하는 이 식당은 이 시대 메마름 속에서도 기적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랑의 오아시스입니다.
 
정부 지원도 받지 않고 후원회 조직도 안하고, 프로그램에 공모하지도 않고, 특히 부자들의 생색내기 자선이나 기증은 아예 물리쳐버리는 민들레 국수집이 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들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들라면 간단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의 주인이 서영남 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릿 시냇가로 떡과 고기를 날랐던 까마귀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민들레 국수집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거기에서 그 어떤 안정된 힘이나 권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드러나는 모든 일들은 기적이 가능함을 말없이 웅변합니다. 하나님의 일상은 인간에겐 기적이라는 사실을 민들레 국수집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영남 사장은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환하게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나라를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바로 그 같은 모습이 이 시대 참된 하나님 백성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누구에게도 위압감을 주거나 큰일에 대한 집착이 없이도 가장 큰 일을 해내고 있는 그 모습이 바로 이 시대 교회가 해야 할 바로 그 일입니다.

   
 
  ▲ 민들레 국수집. (출처 : 민들레 국수집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우리 교회 일에 웬 참견이냐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마지막 사역으로 건축을 택하신 그분의 열정과 헌신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신의 속마음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백성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주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된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남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고 말하고 싶은 분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음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내 돈 내 맘대로 쓴다는 말도 똑같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용조 목사님에게 바이런의 답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헤롯의 누룩"(막8:15)을 피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최태선 목사 / 어지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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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기 2011-08-02 23:26:23
하나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와 간구로 오랜기간 준비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겉모습만 보고 비난하는데는 일분도 안걸립니다. 그 몇십초짜리 비난이 모여 큰 아픔이 되고 인간들은 누가 죽어야지만 그 더러운 입들을 다뭅니다.

달려갈 길들 다 가신 하용조 목사님, 이제 주님 품에서 편히 쉬십시요.

맨하탄 2011-08-02 10:46:35
주님께서는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귀희 쓰시는 종을 데려가셨습니다
그동안 온몸을 던져 주님께서 주신 귀한 사명을 다하신 하용조 목사님께 주님의 상급이 클것 입니다
이제 주님 곁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고 위로를 받으시기 원합니다
한국 기독교계의 큰 푯대가 되어오신 모세와 같은 하용조 목사님의 뒤를 이어 그에 못지않은 여호수아를 보내주셔서 한국교계와 온누리교회 그리고 그동안 애써 오신 많은 선교와 사역들이 더욱 빛나는 열매를 맺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김씨아저씨 2011-08-02 07:14:58
이것을 도대체 무슨 주의라고 해야할지 최태선목사같은 분들이...오늘날 이 한국교회를 썪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강단의 중요성, 말씀의 중요성,설교의 생명성,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육적배고픔보다도 오늘날 실질적인 기근은 말씀의 기근인줄알아야 합니다. 도대체 목사가 왜되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왜 목사완장을 차고계시는지...

김씨아저씨 2011-08-02 07:11:48
교회를 겨우 민들레 국수집에 비교하다니... 주여... 이를 어쩜 좋습니까?

david 2011-07-30 12:33:10
너무 아쉽네요. 죽을 고비를 하나님께서 몇번이나 넘기게 해주셨건만 마지막 관건이 건물을 짓는 거라니? 자기 이름을 낼려고 그러는지? 마지막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선교에 바치던지하면 얼마나 더 뜻 깊은 사역한 사람으로 남을까?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