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목사가 말하는 '신앙과 목회'
김영봉 목사가 말하는 '신앙과 목회'
  • 윤영석
  • 승인 2011.08.15 10: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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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4) '정신과 영혼을 하나님께 조율하라'

'제3회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는 2명의 강사와 50명의 참석자가 함께 진행하는 대담에 가까웠다. ‘멘토링’이라는 개념에 맞게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강사가 대답하는 진행 방식을 시도해, 의견을 나누며 함께 대안을 모색했다. 앞서 고민했던 김영봉 목사(와싱톤한인교회)와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가 ‘신앙’과 ‘목회’라는 화두를 번갈아 던졌고, 참석자들이 질문을 통해 구체화시켰다.

셋째 날 김영봉 목사가 진행한 순서에서 참석자들은 개인적 축복과 전도만 강조하는 단선적인 한국 교회의 신앙에 대해 안타까운 탄식을 터뜨리기도 했고, 교인들과의 관계를 ‘불가근불가원’ 정도로 규정하는 선배 목회자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목회자와 성도와의 ‘적정 거리’를 묻기도 했다. 이 외에도 ‘목회자의 경건’이 ‘교회의 경건’과 ‘사회의 경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목회자의 영성생활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편집자 주)

사회자 / 둘째 날, 목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교인들과 버티며 사는 것"이 마음에 남는다.

김영봉 목사 / 버티며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우선, 어려움 중에 있는 교인들과 함께 버텨준다는 뜻이다. 풀리지 않는 경제적 문제, 자녀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다. 이런 문제가 풀릴 줄 알았는데 좀처럼 해결되지 않을 때, 목회자는 같이 버텨줘야 한다. 버티고 견디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함께 견디며 기다리며 버티는 것이 필요하다.

   
 
  ▲ 김영봉 목사.  
 
우리 교회에 이 지역 대학에서 가르치는 성도가 있다. 아주 철두철미한 이성주의자다. 항상 신앙의 문지방에 서 있고 발을 들여놓지 않는 분이었다. 20여년 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세례를 받지 않았다. 너무나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분이 하나님 앞에 무릎꿇을 날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봄 그분이 눈 녹듯이 녹았고 가족 전체가 세례를 받았다. 나 자신도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목회하는 데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인간적인 판단으로 미리 포기하거나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이다. 목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나는 성도들을 붙들고 버텨야 한다. 내 책임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것이다. 설교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그것의 일부다.

"교회의 본질, 하나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참석자 / 목회의 현실적인 고민의 과정이 건강한 목회를 꿈꾸는 운동(movement)으로서 보게 된다. 이런 멘토링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것도 운동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 상황에서의 고민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고민이라 생각한다. 단발적 이벤트가 아닌 건강한 목회를 꿈꾸는 운동으로서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영봉 목사 / 운동으로 발전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세 해를 지나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코스타를 평신도 운동으로 키워낸 분들에 비해 나의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 해씩 뭔가 쌓이다 보면 작더라도 하나의 운동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교회 문제의 상당 부분이 목회자들에게서 비롯된다고 본다. 교회 갱신을 위해 목회자들의 변화와 갱신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이유다. 때문에 이같은 컨퍼런스가 필요하다. 목회자를 위한 많은 컨퍼런스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컨퍼런스가 기술과 방법론을 배우는 자리다. 본질을 배우려는 컨퍼런스는 그 수가 미미하다. 본질을 추구하는 멘토링 컨퍼런스가 계속해서 유지해야 할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모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기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참석자 /  이번 컨퍼런스에서 성숙한 성도, 건강한 교회를 꿈꾸는 등, 목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데 비해 성도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목회자도 성도의 한 명으로서, 또 교회의 일원으로서 중요하다. 목회의 본질을 알기 위해선 교회의 본질에 대한 정의(교회론)가 필요하지 않은가.

김영봉 목사 / 목사와 목회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성도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는 적었다. 연합감리교에 아담 해밀턴 목사가 있다. 이 분이 목회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한다. ‘Why do they need Christ?(왜 사람들에게 예수가 필요한가)’, ‘Why do they need the Church?(왜 저들에게 교회가 필요한가)’, ‘Why do they need this Church?(왜 저들에게 이 교회가 필요한가)’이다. 와싱톤한인교회가 왜 이 시점에서 그리고 이 지역에서 필요한지 질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다면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교회론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래도 질문이 나왔으니 대답해 본다면,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눈에 보이도록 드러내 주는 소명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하다.

"구원은 인격적, 관계적, 사회적, 그리고 우주적이다"

참석자 / 어떻게 하면 목회의 양심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 한국 교회의 신앙 열정을 긍정적으로 본다. 반면, 사회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기도와 언급이 전혀 없다. 개인적 축복과 전도만 강조하지는 않나. 타민족과 다른 종교가 겪는 이슈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개신교 신앙과 전통으로 볼 때 사회정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민중신학자'로 치부한다.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사회정의 사역에 참여하나. 만약 참여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는가.

김영봉 목사 / 그런 고민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짐 월리스가 진보 진영은 '경건 없는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 without piety)'을 강조하고 보수 진영은 '사회적 행동이 없는 신앙(piety without social action)'을 강조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분법적으로 갈린 이 상황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personal), 관계적(relational), 사회적(social), 그리고 우주적(cosmic)인 네 가지 차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원은 나와 주님과의 일대일 관계로 시작하고 이 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사회와 세계와 우주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회적 이슈를 나의 기도에 담으려고 애쓴다. 내 중보기도의 내용에도 개인 관심사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를 위해 기도한다. 연합감리교(UMC)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영성적인 면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본다. 경건(piety)과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을 통합하는 게 중요하다.

참석자 / 선배 목회자들에게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 있어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을 봐왔다. 목회자와 성도 관계의 적정 거리가 있나. 다른 질문은 쉽게 말해서, 교회 안에 교인들을 어떻게 묶어 놓는 게 바람직한가.

김영봉 목사 / 목회자의 가정이 쇼윈도의 역할과 같다고 말한 이재철 목사의 말에 동의한다. 목회자 가정에 숨겨야 할 것이 있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것이 잘못 되면 위선이 된다.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공개할 수 있도록 삶의 질이 변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목회자가 편애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때론 역차별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누가 봐도 성서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대접 받는 자리와 고통 받는 사람의 자리가 있다면 후자를 택해야 한다. 성도와의 개인적인 교제와 같은 경우는 내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능한 모든 성도들을 똑같이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교회 안에 교인들을 묶어 놓는 질문에 관해 교인들이) 교회에만 몰두하는 것은 경계한다. 교인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가정이 있는 교역자들에게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도록 권한다. 가정생활을 충실히 하도록 권면한다.

   
 
  ▲ 질문하고 있는 참가자.  
 
참석자 / '세상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세상의 희망'이 되는 교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다. 나는 개척 교회 목사인데 똑같이 삶의 현장에서 생활하는 딜레마를 가지고 목회를 한다. 어떻게 목회자의 경건이 교회의 경건으로 이어지고 사회의 경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김영봉 목사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게 한다는 뜻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삶 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예배가 얼마나 바르게 드려지고 있는냐를 판단하는 가장 믿을만한 판단 기준은 그 예배를 드린 사람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얼마나 예배다운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 사이즈 이야기가 어제 나왔다. 얼마만큼 수용하는 문제는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판단해 나가야 한다. 나의 경험에선 60년이 된 교회의 전통을 존중한다. 내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린다. 지금의 상황에서 교회의 본질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참석자 / 한국에서 온 사역자들이 정식 비자 서류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을 어떻게 보는가. 발각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목회자로서 법을 어기는 건 아닌가.

김영봉 목사 / 내가 있는 교회는 오래 전부터 법적으로 허락되는 한에서만 사역자를 선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학생 중에 교회에서 일할 법적 자격을 가진 사람은 영주권자나 시민권자 뿐이다. 그러다 보니 와싱톤한인교회는 영어 잘하는 사역자만 찾는다는 오해가 퍼지기도 했다. 나 자신이 유학생으로 살았기에  유학생들을 돕고 싶지만, 이민법을 악법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는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신학교의 유학생 담당부서(International Student Office)와 긴밀하게 협의하여 가능한 대로 돕고 있다. 

"내 영혼이 하나님께 완전히 조율되는 것이 성도들에게 더 유익하다"

참석자 / 개인 영성에 대해 관심이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영성을 추구하는데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봤다. 영성 생활에 대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김영봉 목사 / 유진 피터슨이 자서전에서 소설 <모비딕>의 작살꾼 비유를 든다. 작살꾼은 고래가 발견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언제든지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을 수 있는 기회만 노리고 있다. 만약 작살꾼이 다른 일을 돕는 데 허둥대다보면 본연의 일을 놓쳐버릴 수 있다. 마찬가지다. 목회자가 분주함에 빠져서 허둥대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큰 문제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의 개인 영성이 중요하다. 목회자의 영성 생활에서 새벽기도가 중요하다. 기도회 인도를 마친 후 혹은 전에 충분한 시간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 교수 시절엔 말씀묵상과 기도를 위해 한 시간 일찍 출근했다.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얼마나' 기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기도하느냐도 중요하다. 내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하나님께 조율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인형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내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성도들에게 더 유익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께 완전히 조율되는 것이 성도들에게 더 유익하다. 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하자면, 설교를 준비하는데 새벽기도가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다. 새벽에 기도하는 동안에 이슬같은 영감을 받곤 한다. 새벽기도는 의무가 아니다. 이 시간을 즐겨라. 

어제 이재철 목사가 교회의 갱신을 위해 100주년기념교회가 하고 있는 일들, 특히 호칭제에 대해 말했다. 이것에 관한 나의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우리 교회의 경우, 직분 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문제는 아주 적다. 담임목사 한 사람, 부목회자 두 사람, 장로 대표, 권사 대표 총 13명이 모여 기도와 회의를 거쳐 마땅한 사람을 추천한다. 그 사람의 의사를 묻고 임원회와 교인 총회의 승인을 받는다. 목사는 단지 13명의 한 명일 뿐이다. 이렇게 운영하니, 교인총회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전혀 없다. 이미 충분한 논의를 거쳐 될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재철 목사는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초청받은 강사가 아무것도 안 받으니까 초청한 교회는 매우 곤란하다(웃음). 나는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부터 사례비를 받아 그것을 따로 관리하여 학생들을 돕는 일이나 선교 혹은 구제에 사용했다. 교회로 돌아온 다음부터는 사례비를 모두 교회에 헌금으로 드리고 교회 재정부에서는 그것을 따로 관리해 구제나 다른 일을 위해 사용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집회 사례비를 나의 부수입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점에서는 이재철 목사와 같다 할 수 있다. 다만, 방법이 다르다. 

기존 관례를 벗어나는 다른 행동을 할 때 상당한 저항이 따라온다. 내 행동으로 인해서 그 동안 당연하게 받아졌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기존의 관례대로 행하지 않고 나대로 나의 정직성(integrity)을 지키고 선택할 때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렵게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일에 대해 지혜롭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

*후속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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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2011-08-19 02:43:15
"구원은 인격적, 관계적, 사회적, 그리고 우주적이다"는 말씀을 듣다보니.... "영성은 인격적, 관계적, 사회적, 그리고 우주적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개인구원'을 기냥 '구원'으로, '개인영성'을 기냥 '영성'으로 이렇게 이해하기를 힘쓰면 어떠까요... 구원이건 영성이건 항상 '개인'과 '사회'를 분리시켜 놓다보니, 더하여 개인(독립변수)이 먼저 사회(종속변수)가 나중이다 보니 인간의 속성상 '개인' 타령만 하다가 나자빠지는 경우가 아닐지... 출발이 '개인'이 될 수는 있겠지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