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교회, 동포 인권·권익 위한 제사장적 역할해야"
"한인 교회, 동포 인권·권익 위한 제사장적 역할해야"
  • 김성회
  • 승인 2011.08.22 15: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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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교수, "교회, 정치 세력화보다 사람 키우는 데 주력하라"

이만열 교수가 미주 한인 교회에 "동포들 인권과 권익 위한 제사장적 역할"을 주문했다.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남가주교협, 회장 민종기 목사)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서 이만열 교수는 "이민, 이민 교회와 민족 문제"라는 강의했다. JJ Grand Hotel에서 열린 이번 강연회에는 50여 명이 참여했다. 민종기 목사는 "교회 성장 세미나, 건강 세미나에는 사람이 참 많이 모이는데, 주제가 주제인 만큼 정말 이민 목회에 관심과 걱정을 가진 분들만 모이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인사했다.
 

   
 
  ▲ 이만열 교수. ⓒ 미주뉴스앤조이  
 
1992년 LA폭동 당시 프린스턴신학교에 연구 교수로 와 있었던 이만열 교수는 그 당시 작성한 논문을 기초해 발제하고 질의응답을 가졌다.
 
이만열 교수는 2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민족어 교육을 꼽았으며 '가능하다면 교회를 중심으로 한국어로 가르치는 고등 교육 기관 설립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성서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이민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적합하며 하나님이 민족을 주신만큼 민족의 전통과 문화 보존 역시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이민 교회가 "전국적인 교단 조직과 연계하여 필요할 때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며 강의를 마쳤다. 아래는 강의를 요약한 내용이다.

해방의 의미와 관련해서 현재적 의미를 이야기하며 더 이상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수치와 오욕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그 수치와 오욕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과거에 어려움을 당했던 경험을 제 3세계를 향해서 더 애정을 베풀 수 있는 기회로 삼자.

우리가 설움을 당하고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지금도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반식민지 하에서 고생하고 있는 많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우리가 설움을 겪었던 것을 그들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돕고 그들의 고난에 동참하자.

   
 
  ▲ 강연을 하고 있는 이만열 교수. ⓒ 미주뉴스앤조이  
 
이것이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보답하는 길이 아닌가. 수치와 오욕의 역사를 이제는 더 이상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걸 좋은 민족적 자산으로 해서 우리 후손들에게도 알리고 제3세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에너지로 승화시키자.

이민 교회와 한민족

1992년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연구 교수로 와 있게 됐었다. 그때 LA 폭동이 일어났다. 그 지역이 1968년 왓츠 폭동 지역과 겹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반성할 점이 있지 않겠나 생각하면서 당시에 프린스턴에서 오늘 발표하는 이 원고의 초안을 잡았다.

한인 이민의 역사는 신석기 문무토기인들 대량 유입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삼한 삼국 계통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형성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일종의 이민이다.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 넘어 간 것도 이민이다.
 
고구려 멸망 후 중국에 끌려간 사람들 중에서는 고선지 장군을 비롯해서 중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많다. 통일 신라 때 가면 도당 유학생, 장사하기 위해서 중국 간 사람이 많았다. 중국의 해안에는 신라방,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5만 명이 일본에 잡혀갔다. 5만 명 갔으면 오늘날 인구 비례로 본다면 미국 이주한 200만 명에 육박하는 숫자로 볼 수 있다. 청나라, 병자호란 때도 굉장히 많이 잡혀 갔다. 이 모든 것이 근대 이전의 이민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근대 이민이 시작된 것은 1902년 12월 22일 102명의 하와이 이민이다. 이민이 일제 하에 계속되다가 1924년 동양계이민금지법으로 중단되는 일을 겪었다.

미국 정부에서는 흑인과 백인 사이를 완충시키기 위해서 동양계를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이민법이 바뀌면서 다시 한국인들도 일본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이것이 1960년 대 중반의 일이다.

   
 
  ▲ 이만열 교수. ⓒ 미주뉴스앤조이  
 
1970년 대 미주 이민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어떤 때인가. 1972년 유신이 선포됐다. 민주화가 큰 탄압을 받는 시기였다. 1975년에는 베트남이 패망했다. 이 시기에 미주로 대량 이민이 일어났다. 당시 식자들의 의견을 옮겨보면 이것은 도피성 이민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이민과 관련해서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출산율 저하로 이민 보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가 땅은 좁은데 인구가 너무 많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과 비교를 해보니 미국 국토는 남북한 국토의 43배다. 한국 국토의 70%가 산지다. 미국은 가용 면적이 70-80%에 이른다. 가용지 대비는 100배 이상이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인구 비를 해보면 이 글을 쓸 당시는 2억 5,000만이었다. 남북한 인구는 7,000만 명이었다. 가용지는 100배가 되는데 인구는 4배 밖에 되지 않는다. 가능하면 미국 쪽으로 사람을 많이 보내는 것이 애국적인 길이라고 봤다.

이민의 세계사적 의의

유럽에서 게르만 100만 민족 이동이 유럽 역사의 큰 충격과 새로운 기원을 만들어 줬다. 이 게르만 족의 이동은 흉노의 유럽 진출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유럽에서도 이민, 이주의 역사가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유럽 사람들의 미주 이민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

   
 
  ▲ 강연회 참석자들. ⓒ 미주뉴스앤조이  
 
어느 사회학자는 어느 도시가 시들지 않고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같은 국토 내에서 시골 출신의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가져와서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골 사람들은 산에서 넓은 들을 보고, 도시 사람들은 옆집만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인생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었다.

이민이라고 하는 것도 이민 세대로 도전하면서 그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인들도 미국에 이주했으면 미국에 대한 도전을 일으켜줘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민자들의 정주 유형

개척형, 동화형, 조화형이 있다. 개척형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개척지에 들어왔을 때 기존의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깊은 신앙과 고도의 도덕성, 학문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정복형은 이민 지역 문화를 말살하지만 개척형은 기존 사회에 동화되지는 않지만 개혁을 해가는 특징이 있다.
 
동화형은 이민 현지에 와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고 점차 이민 현지의 전통과 문화에 매몰되어 버린다. 노르만족이 프랑스와 노르망디 지역을 정복하고도 그들은 언어 등 문화적으로 오히려 정복한 현지에 동화되고 말았다. 중국의 여러 민족들이 한족을 정복했다가도 한족 문화에 동화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조화형은 노르만족의 영국 진출과 유럽인들의 같은 지역 내에서의 이민 실태에서 보이는 것이다. 중국의 화교들이 대부분 이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일정하게 보전하면서 이민 현지의 문화에 대해서도어느 정도의 수용성을 띄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인정하면서 공존을 위한 성숙성을 모색한다.
 
세대 간의 다른 유형이 있다. 1세들은 정복형이 강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탓이다. 1.5세, 2세는 동화형이 되어버린다. 동화되고 난 뒤에 그들이 그 사회에서 출세도 하고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시기에 가면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다시 조화형으로 돌아간다.

성경에 나타난 이민과 민족 문제

아브라함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민을 떠났다는 이야기이다. 요셉이 요즘 말로 하면 초청 이민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끌고 나오는 것도 이민으로 볼 수 있다.

남, 북,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면서 흩어진다. 586년에 유다 왕국이 예루살렘에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정복되고 바빌론 왕국으로 잡혀간 것도 이민이다. 예수의 예언대로 기원후 63년 로마의 예루살렘 함락은 유대인들을 세계로 흩어져버렸다.

이민1세, 1.5세에 속하면서 이민 현지에서 성공한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어렸을 때 받는 가정교육과 신앙 훈련이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고 봐야 한다.

성경은 이들에 대하여 민족을 배반했다는 식으로 매도하지 않았다. 다니엘이 최고의 지위까지 올랐지만 이런 사람을 반민족주의자라고 성경이 매도하지 않는다. 현지에서의 공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에스더의 경우 이민 현지에서 국제결혼을 해서 유대인의 피를 이방인과 섞은 경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

모세의 족보를 가지고 보면 3세, 4세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긴 하진만 기간을 보자면 400년이니 적어도 10-12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정설이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경우는 분명치 않다. 이민 현지에서 당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았다. 모세는 최고의 교육이라 할 궁중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과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민 현지에서의 보장된 출세를 거부하고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여 백성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서도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해친 폐쇄적인 인물이나 반세계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국어를 고수하고 신앙 전통을 지켰다는 것이다.
 
아론, 미리암, 모세는 바로와 공주 앞에 섰다는 점에서 이집트어를 할 수 있었으며 모국어도 간직하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70만을 끌고 나오는데 통역 세워서 이집트어로 말했겠는가.

바빌론 강제 이민의 경우. 이민 현지에서 고급 관료로 일한 사람이 있고, 모세5경을 비롯한 성경을 히브리어로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그들이 이민 생활에서도 민족어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민족 문제의 발생

이집트 내에서 히브리인들과 이집트인 사이에 종교와 문화의 갈등이 있었다. 히브리 민족이 창대했기 때문이다. 이 민족의 창대가 민족문제를 일으켰다.

LA폭동도 그런 성격이 없지 않다. 한국인들이 상권을 쥐고 창대해지니까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공고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1.5세나 2세의 경우 자신이 미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분명치 않았는데 이때까지 자신들을 미국인들과 동일시했던 그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정확한 위치를 발견하면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민족 문제, 갈등은 둘째로 하나님 신앙과 민족사를 확고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신앙과 역사에 근거한 민족 문화를 정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식민지 지배를 당하는 것 자체가 민족 문제인데 이런 상황에서 민족적 문제에 대한 연구가 더 깊어지는 것이다.

민족문화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오경, 여호수아서, 에스겔서, 이사야서등이 이민 생활에서 야기된 민족 문제가 발단이 되어 형성된 것이다.
 
민족이 언제부터 이루어졌는가. 흔히 노아의 방주 이후의 바벨탑 사건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사실은 그 이전에도 성경에 보면 어느 족속, 어느 민족 이야기가 나온다. 바벨탑 사건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 보면 온 민족과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나온다. 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질서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를 창조하고 보존하기 위한 섭리적인 이유에서 하나님이 의도를 가지고 민족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 민족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질서에서 나왔다면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창조와 섭리의 질서에서 나왔다면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 순종한다면 혈통을 유지하거나 문화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식민 지배를 통해서 민족과 문화를 말살하려는 데 대해서는 저항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민족주의자라고 한다. 내가 민족주의자일지는 몰라도 나 역시 세계적인 관점을 놓치고 있지 않다. 나는17년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와 질서에 의해서 민족을 주셨다면 보존할 책임이 있다. 혈통적 보전, 문화적 보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식민주의자, 제국주의자들이 이것을 망가뜨리려고 한다면 거기에 저항해야 한다.

이민 교회와 민족적 사명

나는 한인 교회가 유대인들 디아스포라의 시너고그(회당)와 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민 교회는 위대한 신앙인 양성의 책임이 있다. 민족적 개성과 민족적 개성이 다양한 민족 문화를 통해 만나고 있다. 우리 역시 그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 남가주교협 회장 민종기 목사. ⓒ 미주뉴스앤조이  
 
민족 교육이라는 사명 역시 한인 교회가 짊어져야 할 의무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에 왔다면서 간접 투자인 돈 버는 일에는 집중을 하면서 정작 해야 할 직접 투자는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 대학교 보내야 한다고 하루 종일 가게에서 일하면서 정작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은 방치하고 있는 것이 이민 사회의 현실이다.
 
가치관이 형성될 청소년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과 교훈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미국은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사회는 아니지 않는가.

여기 살면 영어는 잘 하니 오히려 한국어로만 강의하는 학교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민족어야말로 민족정신이 깃든 가장 핵심처요,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범주화하고 드러내는 가장 진실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모국어 교육을 위한 기관으로 가장 훌륭한 역할을 감당해 낼 곳이 바로 한인 교회라고 볼 수 있다.
 
한인 교회에는 동포들의 인권과 권익을 위한 제사장적 역할이 있다. 이민 현지에서 한인들의 권익 보호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진출을 뒷받침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같은 단결이 성숙되면 그 단합된 선한 힘을 단지 한인 사회를 위해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소수 민족을 위해서 나아가서는 미국 내의 제반 이슈에 대해 성경적 대안과 하나님나라 확대 방안을 제공하는 일에도 단합된 세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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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2011-08-23 07:22:02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이런 모임에 좀더 많은 분들이 참석했으면 좋았을 것을 참 아까운 모임입니다...

한가지 코멘트. "모세는 최고의 교육이라 할 궁중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과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민 현지에서의 보장된 출세를 거부하고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여... 성경은 이들에 대해서도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해친 폐쇄적인 인물이나 반세계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있지 않다..."

현지 이민자들이 '창조성 있는 선구자'로서 현지 문화와 가치를 새롭게 하는 공헌자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민족의 아픔인 분단에 공감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공헌하는 인물로 키워내는 일도 매우매우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일제시대에는 이민자들을 조국의 해방을 위한 선각자들로 키워낸 것처럼, 분단시대에는 조국의 통일을 위한 선각자들로 키워낼 수는 없으까요... 이게 이 시대에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한인 이민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