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다'
'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다'
  • 박삼종
  • 승인 2011.09.01 14:4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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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로이스 바렛이 지은 [가정 교회 세우기]…교회의 편견을 깨는 책

얼마 전 김기현 목사(로고스교회 담임목사·로고스서원 대표)가 쓴 "가정 교회 하신다구요?"(바로 가기)라는 글이 '가정 교회'에 대한 화두를 던진 셈이 됐다. 글이 올라간 이후에 많은 독자들이 댓글을 통해 의미 있는 논쟁으로 이어갔다. 예전에 쓴 글이지만 논의를 발전시켜가는 데 유익하다고 판단해 박삼종 대표(평화의마을공동체교회 담임)의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함께 올린다.  (편집자 주)

가정 교회는 교회다

가정 교회는 진정한 교회이기에 다른 수식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정말 가정 교회를 교회라고 여길까? 한국의 많은 가정 교회는 정식(?) 교회로 가기 전에 개척 교회가 갖는 임시적인 형태로만 인식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가정 교회 운동이 일어나도 대부분의 성도들에게는 아직도 이런 생각이 뿌리 깊은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다.

   
 
  ▲ <가정교회 세우기>/ 로이스 바렛 지음/ 임종원 옮김/ 미션월드라이브러리 펴냄/ 196쪽/ 7000원  
 
지금부터 소개할 로이스 바렛이 지은 <가정 교회 세우기>는 이런 편견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15년 간 메노나이트 공동체를 이끈 여성 리더인 저자는 명쾌하게 가정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한동안 출판사에 근무한 경력에 때문인지 굉장히 쉽게 읽히는 문체에 여성다운 섬세함, 가정 교회 실재 사역에서 퍼 올린 구체적인 사례들이 더해져 마치 이 책은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

저자는 가정 교회는 대안 교회가 아니라고 한다.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만들어 가는 교회의 참된 모델이란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헌신과 소그룹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회

가정 교회는 언약과 헌신과 소그룹 모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다. 가정 교회는 선구자들의 대안 교회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교회다. 이들은 그저 성경공부 모임도, 대형 교회를 꿈꾸는 임시 정착역도, 선교단체도, 영성훈련 모임도 아니다. 가정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근본적인 교회다.

이들은 얼굴을 마주 대하기에 적당할 만큼 소수가 모여 함께 예배하고 함께 사역하는 사역자들의 공동체다.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속일 수 없다. 누구 하나 공동체 가운데 자신이 맡은 책임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게을러질 수가 없는 관계다. 규모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작은 공동체일수록 강한 책임감을 갖고 모임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사실 한자리라도 비면 그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것이 가정 교회다. 가정 교회는 가정에서 모이기에 적당한 수, 7~12명가량의 소그룹을 말한다. 이 교회에서는 방관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가정 교회는 교회다.

가정 교회의 역사는 길다.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였다. 성도들은 가정 교회에 모여 식사하고 주의 만찬을 나누고 찬송하였다. 가정 교회는 그저 말뿐이 아니라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이 공동체는 가정에서 모이는 가족 '같은' 모임이 아니라 진짜 가족 공동체이었다. 이들은 최소 2세기 동안 계속 모였고, 많은 가정집들이 모임장소로 개조되었다.

변화는 3세기 말엽부터 일어난다. 교회는 로마의 바실리카를 본떠 예배 처소를 만들기 시작하고 예배의 중심이 가정에서 제단으로 이동함에 따라 주의 만찬은 공동식사에서 성찬예식으로 바뀌었다. 떡과 포도주는 당시 이방 종교 희생 제물의 화체설에 그대로 영향을 받아 사제들에 의해 '불멸의 묘약'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가정 교회의 상실은 루터가 종교개혁의 비교적 초기에 가정 교회의 회복을 갈망하면서 다시 교회사의 전면에 등장해 '근원적 종교개혁' 혹은 '급진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 'Radical'의 라틴 어원은 'Radicus'로 기원, 뿌리라는 뜻이다) 교회 안에 계속 이어지는 전통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가정 교회 운동이 일어난다. 특히 20세기 기독교 부흥은 가정 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터교·감리교·디사이플교회·메노나이트교회 성도들이 가정 교회로 모이고, 브라질과 로스앤젤레스의 가톨릭교회는 '기본 교회 공동체'로 모인다. 중국과 북한의 수없이 많은 '처소 교회'들이 있고, 일본·필리핀·스페인에도 가정 교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한국에도 많은 가정 교회 공동체들이 '이미' 존재한다. 이들은 가정 교회에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눈다.

모든 가정 교회의 가장 큰 특징과 공통점을 들자면 바로 언약이다. 언약은 서로가 서로의 관계에 헌신하는 것을 구체적인 규약의 형태로 맹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 교회는 흔한 편견처럼 그때그때 되는대로 가는 교회가 아니라 철저히 '계획적인 교회'다. 성도들은 우연히 아무런 생각 없이 만나 즉흥적으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적어도 1년 이상 언약의 작성 작업을 가져야 하고, 더 나아가 언약의 세부사항들을 '협약'의 형태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서로가 궁합을 맞춰보고 계속 함께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어떤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참여가 있는 교회

가정 교회의 예배는 둥그런 하나님이 받으시는 둥그런 예배다. 둥그렇게 앉아 함께 드리는 예배는 어느 누구도 소외되거나 구경꾼이 되는 예배가 아니다. 둥그런 예배는 전신자가 예배의 참여자이며 서로가 서로를 섬기며 봉사하는 헌신된 제사장들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한다. 현대 교회의 예배는 잘 구성된 드라마를 무대에 올리고 연극이나 TV 프로그램을 보듯이 공동체적인 참여를 상실한 채 주연배우들과 구경꾼, 시청자들의 야단법석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정도를 예배라고 한다면 신실한 장로로 알려진 어떤 분이 사정상 예배를 TV 시청으로 대체했다는 소식이 전혀 놀라운 것도 아닐 것이다.

가정 교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때로는 배우며, 제자삼고, 가르치고, 어린이들을 예배에 참여시키고 공동 양육하고 각양의 은사로 서로를 책임지는 공동체다. 서로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삶을 깊이 나누고 위로를 경험할 수도 있다. 물론 인간은 서로 가까울수록 불편하기만 한 존재임이 분명하기에 의사결정과 공동의회에서 공동체적인 대화의 영성과 훈련, 지혜가 어느 곳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사례, 실천적인 지혜들은 독자들이 직접 책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성숙한 가정 교회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 십자가의 길과 부활을 따르는 사명을 깨닫고 모든 이가 이 사명에 각자의 소명에 따라 사역자로 헌신된 공동체이다. 존 하워드요더가 책 <예수의 정치학>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그분에게 배울 뿐 아니라 그분과 함께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다. 사명 공동체는 사역공동체일 뿐 아니라 운명공동체이기도 하다. 라틴 아메리카의 '기본 교회 공동체'들처럼 교회의 사명은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을 치유하고 부자들의 횡포라는 사회의 불의에 대항하며, 예수의 평화-샬롬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지 웨버가 말한 '무질서한 선행자'가 아닌 각자 자신의 구체적인 사역의 방향, 곧 소명을 발견해야 하는데, 중요한 한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면서 시작하는 퀘이커 교도들의 클리어니스 미팅(clearness meeting) 전통은 큰 도움이 된다.

가정 교회는 성장통을 겪는다. 사실 가정 교회처럼 성원의 구성이 빨리 변화하고, 한 사람의 직장·이사 등이 공동체의 존립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약하디 약한 교회도 없을 것이다. 또한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마치 누에가 고치를 벗듯이 가정 교회의 공동체성을 지키면서도 어떤 형태로 교회를 만들어갈 것인가의 심각한 고민이 각각 교인이 15명, 30~40명, 150명 정도가 되었을 때 발생한다. 바로 분립할 것인가, 아니면 가정 교회 연합으로 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아마도 정해진 답은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정황 가운데, 공동체의 정신이 지켜지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공동체 성도 전체의 결정이 중요하다.

한편으로 보면 가정 교회의 공동체 정신이 지켜진다면 교회 성장학자들이 말하는 공동체성이 지켜지는 50가정, 150~200명 이내의 규모의 한도 내에서 어떤 교회 행정, 정치 구조를 갖는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도전받고 가정 교회, 공동체를 꿈꾼다면, 몸을 움직여 발로 시작하자. 이미 먼저 시작한 춘천 예수촌교회 같은 가정 교회 공동체들을 방문해보고 그들의 조언을 구하자. 이들은 새로 시작하는 공동체가 겪어야 할 성장 과정에 대한 이해와 닥쳐올 문제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대처할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줄 것이다.

*박삼종 / 평화의마을공동체 대표

*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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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w w . B A C A 8 8 . c o m 2011-09-28 12: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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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2011-09-03 20:09:31
실제는 '인간의 나라' '시스탬의 나라'를 살고 있으면서 그걸 '하나님 나라' 운동쯤으로 착각하고 이걸 너얼리 너얼리 선전하고 다는 게 가정교회 문제 가운데 하나지요. '설렁텅 한 그릇에 영양이 모두 담겨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현재의 한인 가정교회 주창자들를 향해 그러실 거 같아요. "What are you doing there?"

Watch Dog 2011-09-03 15:29:25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spoke about the kingdom of God) " 행 1:3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인간의 시간 속에 함께 하심..

그 때에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교회에 대하여'가 아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꿈이 아니다.
신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의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고 교회는 그 '하나님의 나라'로만 존재 의미를 갖는다.

'가정교회"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또하나의 몸부림이기를...

atom 2011-09-02 12:14:48
역시 "이게 꿈이냐 생시냐"는 걸 느끼게 한 책인 듯 합니다. 특히 가정교회가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만들어 가는 교회의 참된 모델" "가정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근본적인 교회다." 진술은 압권입니다. 이 책 자체 역시 가정교회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군요. 가정교회가 마치 유형교회와 무형교회의 종결자인 듯 묘사되고 있는 점은 최영기 목사님 책들을 한발짝 앞서가는 느낌입니다. 지난 댓글에서 이에 대해선 여러 방식으로 언급했기에 이만... (*적절한 기회에 꽁트 형식으로 가정교회 풍경들을 담아볼까 합니다)

"인간사의 가장 큰 불행은 '용을 그리려다 이무기를 그려 놓고 용이라고 우기는 자들이 역사를 이끌기 때문이다"

저의 결론입니다.

촌스런 목녀 칭호 2011-09-02 11:20:51
한국형 가정교회에서 제일 먼저 개선할 것은 목녀입니다.
제발 목녀란 칭호는 사용하지 말았음 합니다.
다른 좋은 칭호를 두고 목녀가 뭔지 ...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