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와 노닥거린 장 집사, 곰배마을 영영 떠나다
이미자와 노닥거린 장 집사, 곰배마을 영영 떠나다
  • 김명곤
  • 승인 2011.09.09 1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수이름으로 예수이름으로1 : 깡촌 교회마을 ‘전축’에 얽힌 이야기

연재물 '예수이름으로 예수이름으로'는 기자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교회생활을 3인칭 콩트 형식으로 엮은 것입니다. 따라서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은 '허구'나 '있음직한 사건'이 아닌 '실제'를 뼈대로 하고 있으며, 스토리의 흐름을 위해 한 두 개의 사건이 혼합된 경우도 있습니다. 스토리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은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연재 목적은 이미 사회문제화 된 한국 교회 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정당화 되고 있는 허위와 부조리 등 비 신앙적 요소들을 성찰하자는데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바랍니다. (기자 주)

"세상에나 장동백이 아들 실성혔나벼! 밥도 제대로 못 끓이는 주제에 전축이 다 뭐다냐?"
"뭐시기라? 얼마 전에는 옆집 이장에게 쌀 산다고 500원만 빌려달라고 했다는구만요."
"얼라리, 기가 맥혀! 땅 한 뙈기 없는 집구석에 밤이나 낮이나 그 놈의 이미자 노래 백남봉이 코맹맹이 소리 틀어놓고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100여 년 전 초 양코쟁이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는 교회가 훤히 올려다 보이는 동네 고샅에서 곰배마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수군댔다. 80여 가구 동네에서 전축을 가진 집이라곤 3대째 술도가를 운영하고 있는 조부자네 집과 서울 사는 아들이 알루미늄 새시 공장을 차려 성공했다는 '판석이 양반네' 뿐이었다. 선거 바람에 동네에 전기가 들어온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곰배마을에 전축은 호화 사치품이었다.

병들어 누워 있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장철식 집사가 동네 어른들에게만 욕을 먹었다면 덜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네들이 아침저녁으로 뒷덜미에 대고 욕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지게를 지고 당산에서 내려오던 불알친구 병석이까지 "어이 철식이, 산지 얼마 안 된 전축이니 되팔 수는 없을 팅께로 몇 주만이라도 끄고 살지 그랴. 동네 사람들도 그렇고 교인들도 말들이 오가고 있응께 좀 거시기 허네" 하고 우물거리듯 내뱉었다. 철식은 마치 불붙은 부지깽이로 얼굴을 덴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뿐 아니었다. 매일 같이 새벽기도에 나다녔던 철식은 어느 날부터인지 기도회 시간에 달라진 목사님의 설교와 기도 내용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교회를 오가며 느꼈던 상큼한 아침 공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처음 며칠엔 "내가 죄를 지어 그렁거지 뭐, 주의 종이 하시는 말씀잉께로 회개기도나 열심하면 될꺼구만" 내심 그렇게 맘먹고는 짐짓 지나쳐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목사님 사택에 드나들던 병석이 동생 봉례가 철식네 사립문으로 고개를 삐쭉 들여 밀고서는 "오빠, 목사님이 오늘 저녁 시간 되는 대로 좀 오시라네요" 하며 씨익 웃고 사라졌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철식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 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사택에 철식이 도달하니 어두운 표정의 목사님과 정 장로가 함께 마루에 앉아 있었다. 정 장로는 곰배마을을 끼고 흐르는 금강변 간척지 개발 열풍에 묻혀 이태 전에 곰배마을로 이사를 온 분이다. 행색이나 언변이 세련되고 자신감에 넘쳐 있는 표정만으로도 시골 교회 장로나 집사들을 지레 쫄아들게 하는 분이었다. 정 장로가 교회에 거액의 십일조를 했다는 것은 알만한 교인들은 다 알고 있었고, 장철식 집사네조차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아 왔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장 집사, 어찌 된 거요. 듣자하니 날마다 이미자와 백남봉이하고 노작(닥)거린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그게 사실이요? 뭐가 어찌된 거요. 난 장 집사가 성실하고 믿음 좋은 줄 알고는 있지만…"

"에, 거시기 그렁께로 좀 사정이…"

장 집사가 죄지어 주인마님에게 불려온 종복처럼 왼손으로 오른쪽 팔을 문지르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물거렸다.

"집사님,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스럽지 못한 행동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찮아도 당산(무당이 천제를 지내던 야트막한 산) 고목나무가 불에 타 없어지고 난 후에 안 믿는 동네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데…"

   
 
  ▲ 꽁트의 배경을 이룬 40년 후의 곰배마을. 왼편에 보이는 동산이 고목나무가 사라지고 없는 ‘당산’이다. 저 멀리 금강이 흐르고 있다.  
 
목사님은 순박한 철식의 표정과 행동거지에 마음이 쓰였는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 그만두고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하는 표정으로 지긋이 철식을 내려다보았다. 옆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정 장로는 '세상 방가와 만담이나 즐기는 서리 집사 주제에 사정은 뭔 놈의 사정'이냐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맛을 쩍쩍 다시며 저만치 당산 쪽에 눈길을 보냈다.

얼마 전 철식이네 바로 뒷켠의 당산 한가운데 우뚝 버티고 서 있던 고목나무가 한밤중에 불에 타 없어지는 장면을 지켜본 동네 사람들은 마을에 변고가 생길 징조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100년이 되었는지 200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고목나무는 밑동 쪽에 큰 구멍이 나 있었고, 송 집사의 어린 동생이 그 속에서 불장난을 하다 그냥 두고 내려오는 바람에 몽땅 타 버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산자락 바로 밑에서 시시때때로 백남봉의 만담이 흘러나오고 이미자 의 동백아가씨가 시드러지게 흘러 나왔으니...

목사님의 호출을 받아 눈총을 받고 나온 며칠 후 1년여를 투병하던 철식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무슨 질환인지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고물 장사로 전국을 떠돌던 철식의 아버지는 외부와의 접촉을 거부한 채 약 한 첩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교회에서 장로들과 집사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고, 이내 논란이 벌어졌다. 장 집사를 보아서는 교회에서 장례를 치러야 마땅하지만,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장 집사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교리 상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전례조차 없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다. 장 집사의 친구인 병석 집사가 '그래도 안됐는데 청년 교인들을 중심으로 장례를 치르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내놓았으나, 정 장로가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냐며 내지르는 바람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짐짓 의견을 모으는 듯하던 목사님조차도 묵묵부답으로 장례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었으니 재수 없게 감염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다 바로 얼마 전까지 '전축 사건'으로 미운 털이 박혀 있던 터였으니 '교리'가 아니라도 '교회장'은 난감한 일일 터였다. 결국 친구 병석이를 비롯한 동네 청년들이 추렴을 한 돈으로 상여를 빌려서 장례가 치러졌다. 그리고 장례를 치른 날 저녁 철식네 집에서 들려온 대성통곡 소리에 동네 사람들은 잠을 설쳐야 했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아부지. 세상에서도 지옥살이 하다 죽어서도 지옥 가서 어쩐대요. 예수님 우리 예수님, 죽은 사람 위해서 지옥에도 가셨다는디 우리 아부지 좀 꺼내주쇼잉. 아이고 아이고."

철식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어느 날, 마침 집 앞을 지나던 고물장수에게 전축을 팔아 치웠다. 그날 밤 늦게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불콰해진 얼굴로 곤두박히듯 병석이네 사랑방을 찾아온 철식은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고물 리어카 끌고 다니며 백남봉이 만담과 이미자 노래를 그렇게나 좋아 하시던 우리 아부지 땜시 전축을 샀는디, 다 소용없는 일이 돼 버렸당께. 이제 고민도 끝나부렀시야. 돈까지 빌려서 장만한 전축도 팔아 치웠응께 이제 우리 하나님 아부지만 잘 믿으문 되능거 아니겄어? 컥컥컥, 으허 으헉 아이고!"

얼마 후 고물장수 장동백 아저씨의 외아들 장철식이는 곰배마을에서 자취를 감췄고, 이후로 그의 소식을 들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던 오두막마저 어느 해 장마로 사라지고 말았다.

김명곤 / <코리아위클리>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