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하이벨스, '9·11 대응, 정의였나 복수였나'
빌 하이벨스, '9·11 대응, 정의였나 복수였나'
  • 빌 하이벨스
  • 승인 2011.09.23 02:5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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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다음 참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마 나와 같은 세대라면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세대는 비슷한 경험을 9•11때 세계무역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보던 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또렷하게 기억을 할 것이다.

   
 
  ▲ 9·11 현장 항공 촬영 사진. (출처 : 위키페디아)  
 
우리가 유별나게 이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9•11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로 미국 본토에 대한 첫 공격이 바로 9•11이었다. 미국이라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최첨단의 군사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지만 그것이 적으로 부터 우리를 막아주지는 못했다. 우리 국토는 너무 넓고 적들은 날이 갈 수록 교활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연약하다. 우리는 새로운 현실에서 살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 훨씬 더 불안한 인생이다.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

우리가 9•11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다른 기억 하나는 소방수와 구조대원들이 빌딩으로 전력질주해 들어가는 모습니다. 그 당시 윗층에서 사람들이 무너지는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들은 임무와 자긍심과 용기를 가지고 자기 개인이 가지고 있던 공포를 누르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 346명의 소방대원과 구조대원들이 9•11 사태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대부분의 구조대원과 소방대원들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빌딩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9•11 직후 나는 목사 자격으로 그라운드 제로(건물이 무너진 현장)를 방문했다. 구조대원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구조대원들은 거기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난 그 당시 그 장소의 풍경, 냄새, 소리 등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먼저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난 한 번도 수 천구의 시체가 부패하는 현장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뉴욕 경찰관이 현장으로 나를 인도하면서 나에게 마스크 끼기를 권유했다. 나는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대응했다. 2분 후 나는 경찰관에게 마스크를 달라고 했다. 그날 하루 종일 단 한 번도 그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그 냄새라는 것은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 (출처 : 윌로우크릭교회 웹사이트 갈무리)  
 
두 번째는 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현장의 소리에 대한 기억은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내 경험에는 그랬다. 그 때는 기중기가 들어왔을 때도 아니었고, 사이렌 소리도 없었고, 경적 소리도 나지 않았다. 수백 명의 구조원들이 조심스래 바닥의 잔해를 치우면서 돌 하나를 걷어 내면서 혹시나 있을 생존자가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나 지하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침묵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누군가 살아있기를 절실히 기대하고 있었다.

구조대원들,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구조를 하다 지친 사람들이 구조 현장에서 나와서 나를 찾았다. 내가 기도하는 사람(prayer guy 목사의 자격이 아니라 현장에서 기도를 돕는 자원봉사자였다는 의미. 역자 주)으로 보였기 때문에 나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두들 와서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손을 잡았다. 모두가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내놓았다. 생존자들이 아직 저 밑에 살아있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나는 그렇게 기도하는 도중에 구조원들과 구조원들의 가족을 위해서도 기도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구조대원들은 내 어깨를 꽉 쥐고 이야기했다. "생존자들요, 목사님", "생존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나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아달라.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실종자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혹시나 살아있을지 모르는 자기의 형제나 친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근처의 응급실과 야전 침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실종 가족, 친구의 사진을 확대해서 목에 걸고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사진을 들었다. 영어를 못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혹시 이 사람을 보신 적이 없나요? 나의 아내, 나의 남편, 이 사람을 어디서 보신 적이 없나요?"라고 애타게 물으며 계속 돌아다녔다.

이 실종자 가족들도 나에게 찾아왔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와서 이 사람을 본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기도를 위해 두 손을 모았고 나는 그 사람들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나는 최대한 프로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기는 너무나도 힘들었고, 여러 차례 실패했다. 내가 만약 저들 중 하나였다면, 내 목에 나의 아내나 내 자식들의 사진이 걸고 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계속 상상하게 됐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이 사람을 본적이 없느냐고 묻고 다녔다.

가족을 잃고 애태우는 사람들, 사람을 잃고 애태우는 하나님

잠깐 시간을 들여서 그 사람들이 얼마나 큰 도움을 필요로 했을지, 얼마나 절박했을지 함께 묵상했으면 좋겠다. 목에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걸고 아무나 붙들고 제발 도와달라고 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내 뒤에 도왔던 목사들을 나중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실종자의 가족들은 몇 주 동안 그 일을 하고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때 그 풍경에 대한 충격이 너무나 커서 난 그 문제를 신학적으로도 고심하게 됐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집)을 나가 실종된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잃어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목에 걸고 돌아다니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얼마 전에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교인이 아니니 나는 아주 짧게 말을 했다. "내가 이 말만 하고 가겠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당신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고통받고 계신다."

성경은 돌아온 탕자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모두가 축하하고 기뻐했다고 했다. 내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해 봤을 때, 사진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이 가지고 있었을 가족에 대한 사랑, 동료에 대한 사랑을 내가 가늠해 봤을 때, 나는 하나님이 잃어버린 사람들,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떠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클 것인지 묵상하게 된다. 만약 지금 당신이 하나님의 가정으로 부터 떠난 사람이라면 오늘이 돌아오기 좋은 날이다.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라.

악은 현실에 존재한다

내가 9•11로 부터 배운 다른 교훈이 하나 있다면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설교에서였다. 워싱턴디씨에서 열린 추모식에 빌리 그래함 목사가 설교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추도식에 참가한 청중들과 미국 시민들과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방송에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누구나 다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추모사를 낭독하며 부드럽게 넘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데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설교를 듣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오늘 우리는 악의 미스테리와 실존에 대해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된다"라고 했다.

   
 
  ▲ 2001년 9월 14일에 있었던 추모식 행사에서 설교하는 빌리 그래함 목사. (출처 : 워싱턴국립대성당 웹사이트)  
 
나는 "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은 악의 입안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줬다. 우리 마음의 심연에는 악의 꼬임에 속게 되는 그런 마음이 있다. 성령의 막강한 개입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이 세상을 무너뜨릴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험난한 현실에서 희망이 세상을 보듬고 다시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것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설교 말미에 찬송가 한 구절을 읽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오 낙담치말라,
이는 내가 너의 하나님임이요, 변치않고 네게 도움을 줄 자니라
내가 너를 강하게하고 너를 도우리라, 너를 세우리라
나의 의로운 전능한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 견고한 반석, 미국 찬송가)

찬송 구절을 읽는 동안 그 예배당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뿐만 아니라  방송을 보고 있던 미국 사람들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이 순간이 목회자로서 그럴싸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순간(9•11)이야 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무엇인지 붙잡고 해결책을 고심해야 할 순간으로 본 것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영적 거듭남이 개개인에게서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청중들을 똑바로 바라 보며 말했다. "지금이 당신이 영적으로 거듭날 순간입니까? 당신이 영적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입니다"라고 했다. 그날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설교가 맺은 열매들을 지금 보고 있다. 그의 말들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9•11 직후 해석이 궁금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다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미국 내의 또한 전세계가 연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전국 방방 곡곡에서 성조기가 휘날렸다. 성조기를 만드는 회사는 재고가 하나도 남아나질 않았다. 

한 번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 조차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 공부에 나오고 기도 모임에 참여했다. 공공 집회나 콘서트장이나 경기장에서 모두들 묵념을 했다.

편견과 폭력에 매몰된 사람들

가족들은 모두가 살아서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 자체를 축하했다. 서재에 혼자 있다가 9•11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내 아들이 이 문으로  걸어들어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주겠다. 저 문으로 아이가 걸어들어 오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아버지의 절규를 들었다. 서재에 혼자 앉아 있는데 마음 속이 복잡해졌다. 5분 후에 내 아들 타드가 서재로 걸어 들어왔다. 난  너무 반가웠던 나머지 아들을 세게 껴안았다. 아들은 내게 왜 이러냐며 나를 살짝 밀쳐냈다. 아들은 "아빠, 잘 시간이 된 것 같아요"라며 핀잔을 줬다.

전 세계 곳곳의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묵념의 시간을 가지고 미국을 애도했다.  내가 30년 동안 전 세계 방방곡곡을 방문해 봤지만 이런 풍경은 정말 처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매우 부끄러운 경험도 함께 했다. 수많은 모슬렘들이 단지 모슬렘이라는 이유로 멸시 받고 차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곳곳에서 그들은 폭력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모스크는 불탔고, 모슬렘들이 하는 사업체는 공격당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는 복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라도 이 일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할 심산이었다. 시카고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나는 우리 교회로 모슬렘 이맘(기독교의 목사와 같은 종교 지도자, 편집자 주)을 우리 교회 주일 예배에 초대했다. 주일 예배 시간에 나는 이맘을 인터뷰했다. 교인들 앞에서였다. 나는 코란이 가르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거침없이 질문했다. 폭력에 대해서, 지하드(성전)에 대해서, 이슬람교의 교리를 믿는 사람들은 다 똑같은 생각을 가졌는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코란이 가르치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매우 지적이고 신실한 모슬렘이었다. 언론에서 왜곡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깨주었다. 난 윌로우크릭교회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우리 교인들은 "그래, 한 번 들어보지 뭐", "나는 이해를 하고 싶어", "나는 다른 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우리 교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 중 하나였다.

   
 
  ▲ 컨트리 가수 토비 키이쓰가 9·11 직후 발표한 앨범. (출처 : 위키페디아)  
 
그 일이 있고 얼마 안돼서 토비 키이쓰라는 컨트리 가수가 9•11에 대해서 복수심을 불태우는 노래를 발표해서 전미를 강타했다. 노래의 제목은 <레드, 와인 앤 블루>였다.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 할 노래였다. 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은 "자유의 여신상이 주먹을 뻗어 올리는 순간 너희들의 지옥은 시작될 것이다. 너희는 미국을 건드린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였다.

이 노래는 전국적으로 크게 흥행했다. 수만 번씩 반복해서 나왔고 사람들의 복수심을 자극했다. 이런 식의 예수답지 않은 반응이 단지 컨트리 음악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복수에 대한 갈망이 많은 사람들을 현혹했다. 이해할 수는 있다고 쳐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복수에 대해 이야기했고, 심지어 강대상의 설교자조차 잘못 된 조언을 주고 있었다.

또 다른 복수가 낳은 비극

이런 것들이 자라고 자라서 복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복수의 마음이 두 개의 전쟁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수십 만명의 피해자들을 만들어 냈다. 이들의 죽음은 9•11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죽음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조성된 이 악감정은 결코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떤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물론 우리의 군대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도 전혀 없다. 나는 국가 지도자들과 군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는 우리가 공격 당했을 때 더 강하게 맞받아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전 세계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모슬렘들과 대화하려는 시도 자체를 우리의 유약함을 보여주는 일이라 반대하기도 한다.

난 이 논리가 매우 이상했다. 지금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가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통해 배울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지 복수를 위해 뛰고 있는 중인지를 구분할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의 공의로운 하나님은 세계의 정의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다. 세상 모든 곳에 정의가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시는 분이시다. 특히나 세계적인 사건들, 예를 들자면 진주만,아우슈비츠, 아파르트헤이트, 9•11까지 일하시는 분이시다.

빈라덴을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은 우리가 검거해서 법정에 세워 법의 심판을 통해 정의를 세워야 했다.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우리나라가 잘못되는 것을 볼 때 마음 속에 무엇인가 불끈한다는 것이다. 그 컨트리 가수의 주장처럼 자유의 여신상이 주먹을 불끈 쥐고, 빛이 없는 곳에 폭격을 가하고 모든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복수를 하자는 주장을 들으면 내 마음 속에도 꿈틀하는 것이 있다.

나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적대감과 분노가 올라왔다. 내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시각을 잃게 되면서 나는 '눈에는 눈'식의 대응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눈을 당했으면 적의 머리통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늘의  예수님이 다시 내려오셔서 말씀이라도 하실 기세였다. "화평하게 하는 자(peacemaker)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그리고 사도 바울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벧전 3:9)고 했다.

막상 험한 꼴을 당한 사람은 복수를 하고 싶게 마련이다. 만약 당신이 결혼을 망쳤거나 사업이 망했거나 이웃과의 관계가 망가졌다면 당신은 "악은 악으로 갚겠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악은 선으로 극복하라, 복수는 하나님의 몫

성경은 악을 악으로 돌려주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은 악을 무엇으로 극복하라고 하나? 그렇다. 선이다. (롬 12:21)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라고 하셨다.

성경적 지혜가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통제 불능이 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굉장히 다혈질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난 불같이 대응하는 사람이다.

9•11 10주년을 맞아 우리는 단순히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 봐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좀 더 합당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내가 정의를 찾는 일과 복수를 원하는 일을 구분할 힘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지금 보이고 있는 행동이나 말이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길과 같은가?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당신은 아직도 '설마 악이 세상을 지배하겠어?'라는 질문을 던질만큼 순진한가? 아니면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대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를 믿는가? 악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믿냐고 묻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사단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단이 힘을 가지고 이 세상을 부시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가? 악이 일어났을 때, 뭔가 대참사가 벌어졌을 때 우리는 "어휴, 여러 가지로 상황이 안좋았지?"라고 말할 것인가? 그저 한 번 일어난 일이라고 말 할 것인가?

우리는 악과 악이 구축하고 있는 이 구조에 대해 너무나도 순진하게 대하고 있다. 9•11같은 비극이 일어나고 빌리 그래함 목사가 말한 것 처럼 "지금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우리는 그와 같은 악에 대항해서 우리 인생을 성령으로 단단히 감싸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는 질문을 하고 싶다. 9•11 이후 '언제 또 공격을 당할까?' 등의 불안에 떨고 있는가? 자신이 너무 노출되어 있다고 여기는가? 당신은 '내가 위험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잡고 계신 이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실꺼야'라고 굳게 믿고 있는가?

이런 현실 사회에서 불안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앞을 놓고 보자면 9•11이 미국에 가해질 마지막 공격일리도 없고 더 큰 비극이 세상에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뭄바이 호텔, 마드리드 폭발, 런던 테러 등 수많은 사건들이 2001년 9•11 이후에도 일어났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카탈리나 수해, 아이티 지진 등 수많은 재해 역시 일어났다.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복수가 아닌 정의를

질문은  "또 이런 일이 일어날까?"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인간에게 닥쳐올 이 수많은 재앙과 재난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가 다음 번 재앙이 닥쳤을 때 교회 자신이 될 것인가? 우리가 교회 공동체가 될 것이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러한 재앙에서도 성경 말씀을 믿고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재난에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악의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응해 오로지 "정의를 찾는 일"만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복수를 하자"고 소리를 칠 텐데, 복수의 대상 따위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물어보자. 당신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다면 성령으로 충만하고 합리적인 사람이 되어 사람들에게 잠깐만,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으니 지금은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것을 찾을 수 있겠는가? 분노와 절망에 빠져 복수를 소리치지 않고 말이다.

나는 우리 교회가 닥쳐올 재난이나 사고에 어떻게 대처하게 될 지 궁금하다. 우리가 10년 전 했던 대응보다 좀 더 나은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부모들에게 물어보자.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나면 당신은 자식들에게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당신은 복수를 원하는 스타일은 아닌가.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이렇게 일어났으니 우린 이렇게 대응해야만 한다!"고 할 사람은 아닌가?

아니면 침착하게 앉아서 "수지야, 우리에겐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신 훌륭한 하나님이 계시단다. 악이라는 것은 정말 있단다. 그 악이 이 끔찍한 일을 계획했단다. 하지만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대응하실 꺼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침착하고 준비된 대응이 어린 아이들의 영혼의 틀을 잡아주게 될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다음 세대를 이어 예수님을 알릴 사람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묻고 싶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9•11 이후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 돼버린 듯 싶다. 정의를 추구하는지 복수를 원하는지의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해왔나? 

예수는 우리에게 어두운 곳에 빛이 되라 하셨고, 무언가 잘못 됐을 때 정의를 찾는 사람이 되길 바라셨다. 복수 대신 화해를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 화평을 찾는 사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라 하셨다. 우리에게 이 망가진 세상에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라고 하셨다. 과연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 다음 번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기도해야 한다.

9년 전 리사 디머 씨를 우리 교회로 초청했다. 그녀의 남편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9•11 당시 워싱턴디씨의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을 노리고 납치 됐던 비행기의 승객이었다. 몇몇 용감한 승객들이 조종석을 탈취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비행기 조종석을 다시 빼앗은 후 테러리스트들이 백악관에 비행기를 충돌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냥 추락시켜버렸다. 모두가 생명을 잃었다.

리사는 젊은 미망인으로 우리 교회에 와서 이야기를 했다. 이 모든 참사와 비극 중에 그녀는 우리 교회에 와서 기독교인으로서의 그녀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우리에게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읽을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잠시 일어서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9•11 사태로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지듯 아팠을 것입니다. 9•11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여러가지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미국의 교회들이 세계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기울일 수 있다면 이 세상으로 나아가 그들을 위해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화해자로 치유하는 사람으로 사역을 더 열심히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9•11을 겪은 미국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은 애국심은 아닙니다. 이러한 경험이 우리를 갑자기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9•11을 통해 단련된 예수를 닮은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일 것입니다."

9•11로 인해 더 잔인한 복수와 공격적인 대응을 할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는 한 여인의 편지다. 9•11사태가 우리로 하여금 더 단련된 예수를 닮은 섬기는 자가 되게 만들고자 했다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주 견고한 반석이라는 찬송가의 가사를 다시 한 번 읽겠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오 낙담치말라,
이는 내가 너의 하나님임이요, 변치않고 네게 도움을 줄 자니라
내가 너를 강하게하고 너를 도우리라, 너를 세우리라
나의 의로운 전능한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 견고한 반석, 미국 찬송가)

빌 하이벨스 목사(윌로우크릭교회) / 번역 · 김성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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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2011-09-24 13:53:55
이 글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은 미국의 기독교는 완전히 미국식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기독교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빌 하이벨스 - 나는 이 사람의 책을 한 두 권 앍다가 내팽개쳤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는 귀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윌로우 크릭 교회가 자신들의 목회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어느 정도 시인하면서 방향성의 재고를 선언하였을 때에는 새들백 교회처럼 상업주의를 완전히 드러내는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과는 그래도 조금은 다른 교회라고 생각했었지만 하이벨스의 철학은 역시 대중을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자기 계발의 도구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번 기사도 그가 얼마나 미국이 꿈꿔 오던 로마제국의 부활에 대한 열망에 깊이 빠져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기사는 끝까지 읽지 않아도 이미 도입부부터 그가 어떤 이념속에서 헤매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그것이 적으로 부터 우리를 막아주지는 못했다. 우리 국토는 너무 넓고 적들은 날이 갈 수록 교활해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 뒤에는 9/11 사태에 동원된 소방관을 이웃이라고 부르며 또 다른 모습을 부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미국의 적과 미국의 국민인 그의 이웃으로 양분된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제시하는 세계관을 아무런 비판이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미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구절 위에 자신의 국가관과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적이 어디에 있으며 원수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들은 단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괴물같은 욕망이 정의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이벨스는 계속해서 악과 선에 관한 명확한 이원론적인 정의를 보여주면서 자신이 속한 측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것을 가정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정신 차리라 늙은 목사여!

그대가 악이라 부르는 쪽의 사람들에게는 당신과 당신의 이웃이 악이며 당신의 이웃이 그 처참한 사건을 통해 목숨을 잃었다면 당신이 축복을 빌고 있는 당신의 조국은 그들의 이웃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총을 겨눈 자들 가운데는 당신 교회의 교인들도 혹은 당신의 이웃도 있을 것이다.

적당히 정부를 비난하며서 진보적인 모습을 흉내내고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좋게 보일지 몰라도 진실을 막을 수는 없다.

악을 악이 아닌 선으로 갚으라고 듣기 좋은 말을 할지라도 당신의 생각속에는 당신은 선이요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악이라고 이미 선을 그어놓고 결론 지어진 것 밖에는 없다.

당신이 낸 세금으로 총을 만들어 그것으로 가족을 잃은 자들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 그들이 받은 아픈 상처를 또 다시 후벼 파는 행위란 것을 왜 모르는가?

당신의 입에서 평화, 치유, 소명을 말하기 전에 인간이 왜 인간을 미워하고 왜 이웃과 적을 구분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부터 고민해보라.

인간의 역사를 통해 기독교가 더 많은 이웃을 얻었는지 아니면 더 많은 적을 만들어냈는지부터 살펴보란 말이다.

기독교에서 지성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자들이 기독교의 지성을 대변하는 자처럼 리더의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를 외친다는 것은 그들을 더 바보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짓은 정치가들이나 하는 짓이다. 자신의 권력을 지켜나가기 위해 대중에게 환심을 사려는 종교정치꾼들이 미국에서 우글우글하니 그것을 보고 배운 한국도 그 모양새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사라지는 시대가 언제나 올런지...

아툼 2011-09-24 12:56:35
상당히 전향적인 듯 한 내용이긴 하지만... 여전히 미국 중심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선이고 알카에다 그룹은 악이고... 그런데 하나님 믿는 우리 살람은 다른 미국인들처럼 악을 악을 악으로 갚지는 말자... 뭐 그런 논조 같습니다. 남쪽은 선이고 북쪽은 악인데 악을 악으로 갚지말자 그러시는 홍정길 목사님들처럼요.

"우리는 악과 악이 구축하고 있는 이 구조에 대해 너무나도 순진하게 대하고 있다."

마냐게 마냐게 마냐게... "악과 악이 구축하고 있는 이 구조" 속에 미국을 포함시킨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요 미국을 제외한 것이라면 갖은 좋은 말을 했더라도 '꽝!이요' 그런 말을 하고 시픕니다. 전제가 잘 못된 논리는 모래위에 성을 쌓은 거나 마찬가지 일 터이니...

정말 이런 분들이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분들의 얘기를 깊게 경청했더라면 세속사에서 미국이 깊게 관련된 구조악에 대해 가슴아파 했을 거이고, 이같이 두루뭉술한 글을 쓰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악과 악이 구축하고 있는 구조에 대해 시원하고 명쾌하고 날카로운 지적이 없는지...이것이 알고 잡습니다.

그런데 빌 하이벨스... 이분 영적 리더십에 대한 주장들은 영 맘에 안차던데 꽤 괜찮은 얘기 자주 하네요,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