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수룩한 수염, 검은 사제복'이 동방정교회의 전부?
'덥수룩한 수염, 검은 사제복'이 동방정교회의 전부?
  • 윤영석
  • 승인 2011.09.29 16:1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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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정교회 칼리스토스 주교가 말하는 '신학과 영성'

동방정교회(이하 정교회).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가 주를 이루는 한국과 미주 한인 사회 속에서 생소한 이름이다. 한국의 정교회 신자는 왠만한 중형 교회의 교인 수보다 적은 약 2,500명이다. 미국 내 한인 동방정교회는 전무하다. 게다가 입 주위의 덥수룩한 수염과 검은 사제복을 입은 동방정교회의 사제들의 외모도 낯설다. 모슬렘인지 기독교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정교회는 필리오케("그리고 성자로부터"라는 라틴 문구, 기자 주) 논쟁으로 서방 교회(가톨릭교회)와 갈라섰다. 앨리스터 맥그래스 교수(옥스퍼드대)는 "서방 교회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한다'는 이중 산출 개념으로 헬라권 교회들을 자극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다수의 학자들은 교황 수위권과 함께 필리오케 논쟁을 1054년 동, 서방 교회의 분열의 주원인으로 본다. 이런 논쟁을 중재하기 위해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해"라는 문구가 제안되기도 했다.

복잡한 역사 속에 가려져 낯선 모습의 그들이지만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신앙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한다. 그들의 역사는 초기 기독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동방정교회에서 한국 교회와 한인 이민 교회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신학과 영성이 구별되고 때론 대립되어 '신학 무용론'이 대두되는 한국 교회와 한인 이민 교회의 상황이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계몽주의와 근대주의의 영향을 적게 받은 동방정교회는 신학과 영성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신학과 신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지난 9월 15일 뉴욕 용커스에 위치한 성블라디미어신학교는 35년 간 옥스포드대학의 동방정교회 연구 교수로 역임한 신학자이며 수도사인 칼리스토스 웨어 주교의 공개 강좌를 열었다.

   
 
  ▲ 이날 강연을 맡은 칼리스토스 주교.  
 

이날 공개 강좌에 앞서 성블라디미어신학교는 칼리스토스 주교의 학문적 업적과 영미 문화권에 정교회를 알린 공헌을 높이 평가해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칼리스토스 주교는 <동방정교회의 역사와 신학>(The Orthodox Church)와 <동방정교회의 길>(The Orthodox Way) 등의 저서와 4세기와 15세기 사이에 동방정교회의 성자들에 의해 집필된 <필로칼리아>를 번역했다.

약 50여 명이 모인 이날 강연에서 칼리스토스 주교는 "정교회 신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몇 가지 화두를 던졌다. 정교회에서 신학은 무엇인가. 21세기를 맞이해 정교회의 신학적 초점은 무엇인가.

칼리스토스 주교는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접근의 신학 이해는 신학의 전례적이고 신비스러운 측면을 배제시킨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신이 신학자라면 진리 가운데 기도할 것이고, 당신이 진리 가운데 기도한다면 당신은 신학자다"라고 주장한 4세기 사막 교부 성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을 인용하며 "신학은 기도의 삶과 덕의 실천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신학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기독교인의 영적 삶 가운데 맺는 내적 순결함의 열매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비전, 곧 인격적 하나님의 즉각적인 비전과 창조되지 않은 은총(uncreated grace)에 의해 변모된 창조에 관한 인격적 경험과 함께 한다. 신학은 세계에 대한 이론이나 형이상학적 시스템이 아니라 교회가 경험한 신비의 표현이며 서술이다. 지적 분과가 아니라 경험적 참여이자 교통(communion)이다." (칼리스토스 웨어)

칼리스토스 주교에 따르면 신학은 은총이다. 이 '창조되지 않은 은총'은 단순히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이며 조물주와 피조물의 인격적 만남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학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칼리스토스 주교는 "신앙 없는 신학은 없으며 신학 없는 신앙 또한 없다"고 말했다.

긍정을 위한 부정

칼리스토스 주교는 하나님의 신비를 서술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다'라고 말하는 긍정의 방법(via postiva 또는 cataphatic way)보다 '하나님은 –이 아니다'라는 부정의 방법(via negativa 또는 apophatic way)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신비를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성으로 담으려는 하나님에 대한 획일화된 정의를 부정함으로 하나님의 신비를 긍정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신비다. 모든 신학적 명제를 말하는 사람의 이성은 그 명제에 미치지 못한다. 신학이 인간 이성의 한계를 잊고 부정(不定: apophatic)의 영성적 측면을 무시할 때, 신학은 신의 말(theo-logia)이 아니라 기술의 말(techno-logia)이 된다···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고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표현이다. 동시에 신학은 신중하게 논증되고 일관성있게 표현돼야 한다. 결코 비이성적일 수 없다. 명료성은 성령의 선물이다. 모호함과 혼란은 성령의 선물이 아니다." (칼리스토스 웨어)

교회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21세기를 맞이해 정교회 신학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칼리스토스 주교는 "20세기에는 교회론이 정교회 신학의 주요 관심사였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이 관심은 인간론으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유전공학의 발전과 이와 관련된 생명 윤리적 문제, 또 전통적인 성적 윤리와 결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들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첫째로 인간은 인간 자신에게 신비다. 부정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 부정의 인간학이 필요하다. 둘째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의 의미를 묻지 않고선 우리가 누군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각자는 창조되지 않으신 하나님의 창조된 성화(icon)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이란 끊임없이 자기 초월적이다. 이런 명제들을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한다." (칼리스토스 웨어)

   
 
  ▲ 참석자가 칼리스토스 주교에게 질문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 신학의 몸과 마음을 나눈 이원론적 인간 이해를 정교회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몸과 마음을 나누는 플라톤의 인간 이해가 아닌 전인적이고 통전적으로 인간을 이해한다. 나는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내 몸이다. 그리고 내 몸이 곧 나다···이집트의 성 마카리오스(300년-390년)는 '마음'이라는 헬라어 누스(nous)가 아닌 히브리어 레브(lev), 즉 '심장'(lev)을 쓴다. 심장은 지성 뿐만 아니라 의지, 감성, 몸을 비롯해 전인격적 인간을 포함한다." (칼리스토스 웨어)

칼리스토스 주교는 "기독교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신다'고 말씀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에 영감 받아 앞으로의 신학적 논의들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이날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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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요한 2011-12-09 23:40:14
샬롬! 정교회의 전인적 신학이 이 시대 교회들엑 등대 같은 역활이 할 것이다. 이는 감리교의 요한 웨슬리가 정교회로 부터 감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와와/카/지/노★ w w w . w a 2011-10-19 19: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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