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티셔츠 한 장으로 전쟁 멈추게 만든 여성들
흰 티셔츠 한 장으로 전쟁 멈추게 만든 여성들
  • 박지호
  • 승인 2011.10.25 13:3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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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레이마 그보위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서 소감 밝혀

   
 
  ▲ 201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보위는 지난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모교인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갈등전환 석사 과정)을 찾아 수상 소감과 평화운동의 여정을 소개했다. ⓒ 미주뉴스앤조이  
 
"지쳤다. 우리 아기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지쳤다. 우리는 지쳤다. 강간의 악몽에 시달리는 것에 지쳤다. 여성들이여 일어나라. 평화를 외치자."

서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내전이 극에 달하던 2002년, 앙숙이던 기독교와 이슬람 여성들이 '평화'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위해 함께 울부짖었다. 평화운동가인 레이마 그보위(Leymah Gbowee)가 평화운동을 이끌며 정치 지도자와 반군 지도자들을 압박했고, 15년 동안 20만 명이 넘게 희생된 내전을 종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9년 뒤 그보위는 엘렌 설리프(라이베리아 대통령)와 타와쿨 카르만(예멘의 민주운동가)과 함께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됐다.

"여성들을 모아서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

201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보위는 지난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모교인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갈등전환 석사 과정)을 찾아 수상 소감과 평화운동의 여정을 소개했다. 15일에는 그보위가 트라우마를 씻어내기 위해 시간을 보냈던 학교 실내체육관에서 참석자들과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악마는 지옥으로 돌아가라고 기도하기(Pray the Devil Back to Hell)>를 시청했다.

현재 '평화 구축 여성 네트워크 아프리카(WIPSEN-Africa)'의 사무총장인 그보위는 내전이 한창이던 2002년 무렵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소년 병사들을 상담하고 있었다. 어느날 사무실에서 골아떨어져 꾼 꿈이 그보위의 삶의 궤적을 극적으로 바꾸는 시발점이 된다. 꿈속에서 들었던 "여성들을 모아서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Gather the women and pray for peace!)"라는 한마디가 평화운동의 씨앗이 된 것이다. 이후 그보위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 여성들을 연합해 2002년 '평화를 위한 라이베리아 여성 대중행동'을 조직해 평화운동을 이끌었다.

   
 
  ▲ 평화를 상징하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시위하는 라이베리아 여성들. (출처 : 위키피디아)  
 
"해방시키겠다면서 국민 모두 죽이면 누굴 해방시키나"

평화를 위한 기도 모임은 거리 시위로 발전했다. 그들이 가진 무기라곤 고작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색 티셔츠뿐이었다. 성경 속에서 불의한 재판관을 괴롭히던 과부처럼, 기독교인과 무슬림 여성들은 매일 대통령궁으로 출퇴근하던 찰스 테일러 당시 대통령을 향해 평화를 외쳤다.

이들의 외침은 악명 높은 독재자의 귀마저 열었다. 대통령의 초대로 대통령의 면전에 선 그보위는 '배고픔과 강간과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 것에 지쳤다'고 외치며 평화 협상에 나서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낸다. 그보위는 반군 사령부 지도자를 직접 찾아가 "국민을 해방시키겠다면서 모두 죽여버리면 도대체 누구를 해방시키겠단 말인가" 하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보위를 돕던 동료 운동가의 증언으로 알려진 일화다.

"강간이 상존하는 상황이었다. 젊은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든 여성들까지 강간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때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먹을 게 없으면 굶었고, 차비가 없으면 걸었다. 우리의 운동은 정말 진지하고 심각한 여정이었다."

   
 
  ▲ 그보위가 주도했던 평화운동을 주제로 만든 다큐멘터리.  (출처 : 위키피디아)  
 
"No Peace, No Sex"

그보위를 비롯한 라이베리아 여성들은 성적 주체성을 강조하며 치마를 들어올리는 '아나시마' 와 총을 놓지 않으면 남편과의 섹스를 거부하겠다는 '섹스 파업' 등의 비폭력 저항 운동을 발전시켜갔다. 섹스 파업이 실제로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도와 무슬림 여성들에게 내전 기간 동안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하라고 해 남자들이 총을 버리도록 압력을 넣었다.

그보위는 수천 명의 기독교인과 무슬림 여성을 규합했다. 교회와 모스크를 오가며 함께 기도했다. 그런 그가 평화를 위해 운동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에 장벽부터 허무는 일이었다.

"매주 기독교인과 무슬림 여성들이 모임을 가졌다. 첫날 모임에서 서로가 가진 모든 선입견들을 적었다. 부정적인 것, 긍정적인 것들을 모두 적었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서로가 적은 것을 함께 읽었다. 먼저 부정적인 것들을 읽을 때는 '뭐야? 뭐라고?' 하는 소리가 나왔다. 긍정적인 것들을 읽을 때는 '오, 이건 너무 좋은데', '음, 이건 사실이 아닌데' (청중 웃음) 하는 말들이 나왔다. 어느 무슬림 여성이 '크리스천 여성은 남편을 존경하고 헌신적이라'고 적었는데, 크리스천 여성들이 '정말 그래?' 하고 되묻기도 했다.(청중 웃음)"

자식 잃은 미국인 어머니와 아프간 어머니의 눈물이 다른가?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허물어가면서 우리는 동일한 사람이라는 명제를 가슴 속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보다 나은가? 나으면 뭐가 나은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보위는 '이념과 종교 등 외적인 것을 초월해, 내면의 휴머니티를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아프간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미국 기독교인 어머니와 미군에 의해 아들을 잃고 울부짖는 아프가니스탄 어머니의 슬픔과 고통의 크기는 동일하다. 눈물의 양도. 우리는 서로에게서 휴머니티를 봤다. 우리는 당신과 동일하다. 나은 게 없다. 이 작업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첫걸음이다."

   
 
  ▲ 그보위가 타인의 모습에서 휴머니티를 발견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 미주뉴스앤조이  
 
그보위는 미국 이민국에서의 짧은 일화를 예로 들었다. 

"언젠가 새벽 5시에 워싱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싫어하는 곳 중 하나다. 별도의 심사를 하는 이민국 사무실은 히잡을 쓰거나 모슬렘 복장을 했거나, 나와 같은 복장을 한 아프리카 여성들로 가득 찼다. 당시 딸이 한 살 정도였는데, 할줄 아는 영어가 '날 내버려둬(leave me alone)'였다. 계속 징징대기에 짜증이 나서 내려놓았더니, 딸이 미국 국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그 국기를 몸으로 감싸고 영어로 '날 내버려둬'라고 외쳤다.(청중 웃음) 이민국 직원은 좋은 티를 입고 미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민국 직원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의 휴머니티를 봤냐?'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휴머니티를 봤다. 당신은 누군가의 아버지고, 삼촌이고, 아버지고 아들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면 더 깊은 차원의 휴머니티를 들여다보라." 

그보위는 각자의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가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킬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보위는 함께 평화운동을 했던 여성들과 돌아가면서 상처를 나누는 시간을 회고하며 "비극적인 당신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커뮤니티를 변화시킬 것인가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여성 한 명이 울면서 강간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수치심에 차마 말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용기를 내고 어떻게 당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이후 다른 이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또 다른 어떤 여성의 이야기다. 아들은 죽고, 딸은 난민촌에 들어가 있었다. 10년 뒤 그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목사였다. 딸이 남편의 사진을 보내왔는데 그 사람은 아들을 죽인 사람이었다. 그 여성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우리 각자는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로 커뮤니티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당신에게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가 있는가. 계속 실천하라. 비극적인 당신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커뮤니티를 변화시킬 것인가 생각하라.."

   
 
  ▲ 그보위는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 교직원들과 학생들에게 자신의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로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격려했다.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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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2011-12-16 17:09:16
ㅋr지노ㅅr이트, W W W . A D D 77 . C O M 주,소 직접 타,이,핑 오,늘 ,대,박, 잡으세요,

,무,료, 관,전 보시고 판,단 하세요 오,늘 대,박입니당.

atom 2011-10-26 23:43:22
이 기사를 읽다보니 얼마전 타계한,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역사의 진보를 믿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실천적 지식인 하워드 진 교수의 고백이 떠오르는군요.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행위라도 불쏘시개 더미에 더해지면 어떤 놀라운 상황에 의해 점화되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그는 "내겐 절망항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며 역사의 진보를 믿었더랬지요...

박지호 기자님의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