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이제 '묻지자 투표' 하지 말자
한국교회, 이제 '묻지자 투표' 하지 말자
  • 김동수
  • 승인 2012.04.05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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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 투표 기준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아빠, 이명박 대통령 장로님이지요?"
"응. 장로님 맞지."
"아빠는 목사님이니 이명박 대통령 찍었겠네요?"
"아빠가 목사인 것 하고, 이명박 대통령 찍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니?"
"아빠가 목사님이니까, 당연히 장로님인 이명박 대통령 찍어야지요?"
"그게 무슨 말이니? 아빠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반 ○○○ 부모님은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님이라서 찍었대요."
"인헌아!"
"예"
"장로님하고, 대통령은 아무 관계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장로이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면 바른 판단이 아니다. 대통령은 장로님이 아니어도 더 훌륭하게 나라를 이끌 수 있고, 장로님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로 대통령 나라를 잘 다스린 사람이 없다."

큰 아이 "아빠는 목사님이니까 장로님 찍었겠네요?"

지난 2009년 1월 어느 날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큰 아이와 저녁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아빠는 목사님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로님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큰 아이 질문을 받고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안 된다"고 했었습니다. 아이를 설득하자 알았다는 시늉은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합니다. 많은 기독교인은 지역감정을 조장했던 이들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던 것처럼 '장로', '집사'라는 이유로 "우리는 같은 예수쟁이다!"라는 말로 후보의 정치철학, 지도자 자질, 도덕성은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찍는 것입니다. 교회판 '묻지마 투표'입니다.

장로라는 이유로 뽑아준 대통령이 제대로 나라를 이끈 적이 없습니다. 독재자 이승만, IMF 당사자 김영삼 전 대통령, 그리고 우리 '가카'까지 장로만 되면 나라가 독재국가 아니면 경제파국으로 끝났습니다. 우리 '가카'는 지금 '불법사찰' 논란으로 야당으로부터 "탄핵, 하야"라는 맹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도 사찰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강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당연히 '가카'는 '침묵증진'입니다. "나도 해봤다" 시리즈는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장로 대통령이 나오면 대한민국이 '천국처럼' 될 것이라는 이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 제대로 비판 조차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하는 이들에게 붉은 덧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비극을 막기 위해 기독인들이 "묻지마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또 다시 "묻지마 투표"라는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반민주적인 불법사찰이 밝혀졌는데도 무조건 찍는다면 비극은 재생산될 것이고 한국교회는 비기독교인에게 가혹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윤실 "묻지마 투표하지 말아야"

이에 대해 기독교 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지난 3일 '4·11 총선의 올바른 기독교적 참여를 위한 성명'에서 "일부 기독교 단체나 교회의 '묻지마 투표' 주장을 중단해 주십시오"라고 촉구했습니다.

기윤실은 "십수 년 동안 일부 기독교인들은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기독교인 혹은 직분 있는 후보들에게 '묻지 마' 투표를 하고 또 이를 독려해 왔다"며 "이는 또 다른 연고주의적 투표 행태로서 우리의 정치문화를 타락시키는 중대한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공평과 정의를 무시한 이런 식의 투표는 교회를 시민으로부터 유리시켰고 교양 있는 신앙인들에게 자괴감을 안겨 주고 있다"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티-기독교 분위기나 청년층의 교회 이탈 현상도 이처럼 무분별한 기독교적 정치참여의 결과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한국교회의 '묻지마 투표'가 한몫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특히 기윤실은 "일부 목회자들이 자신의 교인들에게 단순히 기독교의 이름을 사용한 정당에 투표하라고 독려하거나,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견강부회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확대 해석하여 어느 후보자나 정당을 기독교의 적으로 선언하는 행태는 그만 중지되어야 한다"고 교회의 특정 정파 지지나, 반대는 하지도 해서도 안 된다고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기독인 투표 기준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

이유는 교인들의 정치적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이번 4·11 총선에서도 그 같은 어리석고도 편향적인 주장이 신앙의 이름으로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기윤실은 일부 기독교인의 독단적이고, 편형적인 주장으로 또 다시 기독교 전체가 사회의 조롱을 받거나 청년들이 좌절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기윤실이 촉구한 내용에는 ▲ 어느 정당이 기독교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에 투표해서는 안 된다 ▲ 어느 후보자가 기독교인이거나 교회 직분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투표해서는 안 된다 ▲ 목회자가 개인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교인들에게 어떤 정당을 지지하라고 강요하거나 어떤 정당을 기독교의 적이라고 선언해서는 안 된다 ▲ 한국 기독교에 유리한 제도 혹은 금전적 이익에 대한 보상으로 기독인의 투표를 약속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따위입니다.

그럼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요?

"우리가 선택할 정당 혹은 후보는 하나님의 성품 즉 인애와 공평과 정직에 더 가까운 정책을 제시하거나 실천한 증거가 있는 정당이나 후보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우리 기독시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과 지성을 잘 활용하여 자신이 선택하는 후보자나 정당을 면밀히 살펴보고, 과연 그러한가를 시민과의 대화로 확인해보고, 기도로 참된 후보의 자격을 묵상한 후에 투표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한국교회 "우리는 예수쟁이다!"라는 '묻지마 투표' 끝내야 합니다.

4.11 총선의 올바른 기독교적 참여를 위한 성명
 

일부 기독교 단체나 교회의 "묻지마 투표" 주장을 중단해 주십시오

최근 십 수 년 동안 일부 기독교인들은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기독교인 혹은 직분 있는 후보들에게 '묻지 마' 투표를 하고 또 이를 독려해 왔습니다. 이는 또 다른 연고주의적 투표 행태로서 우리의 정치문화를 타락시키는 중대한 잘못입니다. 공평과 정의를 무시한 이런 식의 투표는 교회를 시민들로부터 유리시켰고 교양 있는 신앙인들에게 자괴감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티-기독교 분위기나 청년층의 교회 이탈 현상도 이처럼 무분별한 기독교적 정치참여의 결과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일부 목회자들이 자신의 교인들에게 단순히 기독교의 이름을 사용한 정당에 투표하라고 독려하거나,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견강부회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확대해석하여 어느 후보자나 정당을 기독교의 적으로 선언하는 행태는 그만 중지되어야 합니다. 이는 교인들의 정치적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이번 4.11 총선에서도 그 같은 어리석고도 편향적인 주장이 신앙의 이름으로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에 우리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일부 기독교인의 독단적이고, 편형적인 주장으로 인해 또 다시 기독교 전체가 사회의 조롱을 받거나 청년들이 좌절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음 사항을 한국교회와 성도들께 촉구하고자 합니다.

1. 어느 정당이 기독교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에 투표해서는 안 됩니다.

1. 어느 후보자가 기독교인이거나 교회 직분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투표해서는 안 됩니다.

1. 목회자가 개인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교인들에게 어떤 정당을 지지하라고 강요하거나 어떤 정당을 기독교의 적이라고 선언해서는 안 됩니다.

1. 한국 기독교에 유리한 제도 혹은 금전적 이익에 대한 보상으로 기독인의 투표를 약속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1. 우리가 선택할 정당 혹은 후보는 하나님의 성품 즉 인애와 공평과 정직에 보다 가까운 정책을 제시하거나 실천한 증거가 있는 정당이나 후보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우리 기독시민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과 지성을 잘 활용하여 자신이 선택하는 후보자나 정당을 면밀히 살펴보고, 과연 그러한가를 시민들과의 대화로 확인해보고, 기도로 참된 후보의 자격을 묵상한 후에 투표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012년 4월 3일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김동수 / <오마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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