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과 비전사이
야망과 비전사이
  • 양승훈
  • 승인 2012.05.07 21:1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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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욕망 대신 사람을 품자

   
 
 

▲ '야망을 가져라'고 외치던 윌리엄 클라크 (위키피디아 갈무리)

 
 
19세기 미국 화학자, 생물학자이자 농업교육가였던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1886) 교수는 일본정부로부터 현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学)의 전신인 삿포로농대(札幌農学校) 설립 프로젝트에 외국인 고문관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당시 명치유신(明治維新)을 계기로 서구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정부는 클라크가 낙후된 일본 농업교육을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여 클라크는 삿포로에 불과 8개월 정도 머물렀지만 삿포로농대의 기초를 놓았을 뿐 아니라, 홋카이도의 과학과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면서 일본학생들에게 남긴 말은 일본 열도는 물론 현해탄 건너 한국인들에게까지, 그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소년들이여, 야망을 품어라!'(Boys, be ambitious!).

그런데 근래 미국 노트르담대학교 젓지(Timothy Judge) 교수는 흥미로운 논문을 한편 발표했습니다. 그는 <응용심리학저널>(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실린 논문을 통해 야망(ambition)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야망은 긍정적인 효과도 있고 직업적 성공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히 그런 듯이 보일 수도 있지만 연구 결과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말해준다. …야망이 있는 사람들은 많이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약간 더 행복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일찍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젓지의 결론은 70여년에 걸쳐 유능한(high-ability)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 방대한 연구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는 717명의 유능한 사람들을 선정하여 이들의 아동기로부터 청년기까지 야망의 정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하고, 이어 이들의 성취와 행복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당연히 야망이 큰 사람들은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며, 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야망은 삶의 만족과는 큰 관련이 없었고, 수명에는 도리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야망이 있는 사람들은 더 성공적인 직업을 가졌지만 그로 인해 더 행복하거나 건강한 삶을 누리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젓지는 야망과 행복의 연관성은 크지 않으며, 야망이 강한 사람들은 가장 덜 야심적인 사람들보다 사망률이 50%나 높았다고(45.5%와 30%) 했습니다. 특히 야망을 가지고 성공을 추구했는데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상황이 더욱 좋지 못했습니다. 명문대를 나오고 고소득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수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다소 만회할 수 있었으나 목표를 실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래 살지도 못했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야심 때문에 삶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기준을 높여가기 때문에 항상 성공에 대한 갈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행복의 조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고, 오히려 더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젓지는 인생에서 성공으로 규정한 것이 행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며, 성공 못지않게 안정된 가족관계, 지속적인 우정 등도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소년들이여, 야망을 품어라!'고 했던 클라크 자신이 바로 젓지가 말한 유능하고 야망을 가진 사람의 불행을 실증한 예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던 시절, 50세의 나이에 일본에서도 가장 외진 삿포로까지 와서 일했던 그는 누구보다 야망이 컸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똑똑한 미국 학생들은 독일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미국의 유수한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클라크는 22세인 1848년에 엠허스트대학(Amherst College)을 졸업하고, 불과 4년 뒤인 1952년에 독일 게오르그-아우구스트 대학(Georg-August-Universität Göttinge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곧 이어 모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모교에서 교수를 하는 동안 일어난 남북전쟁 중에 클라크는 잠시 대학을 휴직하고 군에 입대하여 대령까지 진급했고, 해당 부대 연대장까지 역임했습니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후에는 불과 41세의 젊은 나이에 매사추세츠농대(Massachusetts Agricultural College, 현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3대 총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대학을 가장 혁신적인 학사 프로그램을 가진 학교로 만들었고, 이 소문이 국제적으로 퍼져 1876년 일본정부의 초청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1877년 일본에서 돌아오고, 1879년 매사추세츠농대 총장직을 사임한 후부터 클라크의 인생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떠난 후 그는 보트웰(John R. Bothwell)과 합작으로 클라크 & 보트웰(Clark & Bothwell)이라는 광산회사를 시작했고, 유타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여러 은광을 매입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업자 보트웰의 부정으로 인해 회사는 도산했고, 클라크의 명성은 물론 자신의 재산과 많은 친지, 가족들의 재산까지 날렸습니다. 급기야 이어지는 스캔들로 인해 클라크는 건강까지 해쳤으며, 결국 그는 59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엠허스트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물론 19세기 후반, 물밀듯한 서구문물의 유입으로 급변하는 일본에서 유배지처럼 소외된 홋카이도 청소년들에게는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는 클라크의 말이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에 자극을 받아 후에 큰 일을 한 사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을 오해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야망을 품으라고 강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3-40대 사람들에게는 '장년이여 사람을 품으라'고 말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4-50대의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중년이여 야망을 버려라'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클라크와 같이 자신과 가족을 포함하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면서 단명하는 불행한 야망의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일전에 한국 교계에 잘 알려진 어느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 신문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목사님에게 목회의 비전이 무엇이냐고 묻자 목사님은 "저는 목회의 비전이 없는 사람이에요. 비전은 CCC 졸업할 때 같이 졸업해 버렸습니다. 대부분 비전이라는 목표를 세워 놓고 사람 상하는 것을 불사하더라고요. 사람의 영혼이 상처입고 고통을 받는 것이 정말 비전일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대답을 통해 비로소 그 분과 함께 일했던 여러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복해 하고 그 분을 존경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에는 야망을 가진 지도자들이 많고, 목회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강대상에서 외치는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비전'이 실제로는 이기적인 자신의 야망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들먹거리면서 예배당, 교육관 짓느라고 난리를 쳤지만 결국 자식에게 세습하는 야망의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예배당 건축은 말 할 것도 없고 사도 바울은 심지어 전도하는 것조차 자신의 야망을 위해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빌1:17). 하나님과 무관한 비전과 야망은 탐심에 불과한 것이고,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말합니다(골3:5). 야망을 가진 사람은 장수하지 못한다는 젓지 교수의 지적도 결국 마음을 비운 사람, 즉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한다는 잠언 기자의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잠28:16).

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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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2012-05-30 11:03:46
뭐 양교수님 주장의 뼈대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찬성합니다만, 내용 전개가 '야망 없으면 오래산다'는 '장수만세' 쪽으로 흐르는 듯 하여, 쪼매 불편하군요... 읽기에 따라서, 글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뭐 짧게 굵게 사는 것도 좋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들 거 같습니다. 비전으로 둔갑한 인간적 야망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죄성에 의해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정도라면 모르까...

다 좋은데.... 2012-05-30 04:57:07
뭐 양교수님 주장의 뼈대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찬성합니다. '야망없음'하고 '장수'하고 관련짓은 '장수 예찬론' 처럼 읽혀져 불편하군요... 제 주변에는 야망없이 끌끌하게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이 오래 살기는 하지만 별~로 부러워 보이지는 않더라구요...

philip im 2012-05-09 01:52:13
제가 알고 있기로 번영신학을 추구하는 분들의 모토도 야망을 품으라인 줄 압니다. 이를 좀더 그럴듯하게 기독교화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품으라"고 하지요. 사실 부족한 나 자신만 되돌아 보아도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낮추라고 싸인을 보내시지만 그때 뿐 돌아서면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저주의 자식"처럼 행할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늘 성령의 인도하심만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분명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위선적으로 내세우는 분들은 차치하고라도 진심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사탄의속임과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파수군 같이 늘 깨어 지키고 경성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저를 되돌아 보게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