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넘어 성경 바라보기
과학 넘어 성경 바라보기
  • 양승훈
  • 승인 2012.05.23 01: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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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

   
 
  ▲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 숫자가 다르다는 것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별과 모래의 숫자가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성경의 정확성이나 권위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리집 사진 갈무리)  
 
인터넷 검색창에서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라는 말을 넣고 찾아보면 많은 글이 떠오릅니다. 이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쓴 글이며, 또한 성경의 과학적 정확성을 증거 하기 위해 쓴 글들입니다. 말 할 필요도 없이 이 말은 성경에서 따 온 말입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축복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바닷가의 모래가 많다는 것은 누구라도 아는 것이지만 하늘의 별들이 많다는 것을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사실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숫자는 이상적인 상태 아래에서 최대 약 6500개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도시의 불빛이나 스모그와 같은 대기오염, 안개나 구름, 달빛 등으로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공해와 전깃불이 많은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그러했습니다. 근대 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덴마크 티코(Tycho Brahe)는 별들의 수를 775개로 계수했고, 그의 조수이자 제자였던 케플러(Johannes Kepler)는 1,005개로 추정하였습니다. 당시는 이렇게 별의 수를 인간이 셀 수 있는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경 기자는 하늘의 별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사람들은 이것이 성경의 영감성을 증거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바닷가의 모래 수를 조사해 봤더니 놀랍게도 1022개 정도였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알아냈습니다. 성경에서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는 말씀과 얼마나 놀라운 일치인가”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과학자들이 바다의 모래숫자를 실제로 측정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전 세계 바닷가 모래 알 수는 정확히 1000억 개 곱하기 1000억 개, 즉 1022개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정밀하신 분이라서 농담을 해도 수학적으로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하늘의 별이 바닷가의 모래알 숫자와 비슷하다는 것이 성경의 영감성을 나타낼까요? 창세기 22장 17절에서 말하는 바가 성경이 과학적으로 정확함을, 하나님이 과학적인 분임을 나타낼까요? 이 질문은 우리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질문은 신학에서 중심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성경 해석의 가장 중요한 원리와 지침을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성경 해석의 첫째 원리는 그 구절의 앞뒤 문맥과 더불어 성경 기자의 의도,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 그 글이 읽혀지고 이해되는 그 시대의 문화 등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그 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성경의 메시지를 찾는 것입니다. 성경은 시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은 그 시대와 문화 속에 살았던 기자를 사용하셨기 때문에 본문에 대한 그 시대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현대의 적용도 정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창세기 22장을 기록한 모세가 하늘의 별들과 바닷가의 모래알의 숫자가 비슷하다는 과학적 영감을 받아서 그 글을 썼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경의 과학적 정확성을 제시하는 것은 성경의 영감성, 나아가 성경의 권위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순진한 사람들은 "성경은 과학 교과서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성경의 영감성을 과학적 정확성에 호소하는 것이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것일까요. 이것은 성경을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엉뚱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자칫 성경보다 과학이 더 믿을 만하다는, 다시 말해 과학이 성경보다 더 권위 있는 것임을 은연중에 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과연 과학이 성경보다 더 정확하고 더 권위 있는 것일까요.

과학사를 살펴보면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하며, 어제의 진실이 오늘의 부정확 내지 오류가 되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천동설, 열소설, 연금술, 임페투스설 등 당시에는 그렇게 분명한 진리처럼 보였던 과학 이론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틀렸음이 밝혀졌습니다. 한 때 영구불변의 진리일 것 같았던 뉴턴 역학 체계가 지난 세기 초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나오면서 다만 물체의 운동을 근사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의학이나 생물학 등으로 가면 더 심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이 철석같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 중에도 100년 후에는 많은 것들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것이 명백합니다. 다만 우리는 틀린 것으로 판명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뿐입니다.

성경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지난 2000년 동안, 아니 구약성경 시대까지 포함하면 지난 3500여 년 동안 진리임이 거듭 증명되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위한 수많은 교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통해 구원을 받았고, 바른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권위를 끊임없이 변하는 과학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위에서 예를 든 창세기의 표현은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 땅 위에서 번성하고 편만할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일 뿐입니다. 바닷가의 모래와 하늘의 별의 숫자가 비슷함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토지를 정부가 법으로 정한 것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처벌을 받듯이 과학적인 목적을 위해 기록된 내용이 아닌 것을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자칫 성경이 가진 신적인 권위가 마치 과학적 증명이나 정확성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경 내용은 시대에 따라 불변하는 초월적 권위를 갖지만 과학은 시대에 따라, 혹은 과학적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 숫자도 이미 이전에 사람들이 제시한 과학적 연구결과와는 다릅니다. 이전에는 바닷가의 모래와 하늘의 별의 숫자가 대체로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근래의 연구에 의하면 별의 숫자가 바닷가의 모래알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은 발전하는 것이고, 계속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별과 바닷가의 모래 숫자가 다르다는 것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의 숫자가 틀린다는 것은 성경의 정확성이나 권위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하늘의 별의 숫자와 바닷가의 모래의 숫자가 똑 같다고 말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나아가 이들 숫자의 일치여부는 성경을 통해 인간 구원의 길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혹은 사람들의 연구가 진척되면서 변하는 과학에 성경의 영감성이나 권위를 기대는 것은 성경을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본질적이지도 않은 것을 두고 거품을 품고 논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근래에 그리스도인들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외계생명체 논란이나 창조연대 논쟁 등도 거품을 품고 논쟁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비본질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 전에 "본질적인 것에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서는 자유를, 이 모든 것들에서는 사랑을"이라고 외쳤던 루터교 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멜드니우스(Rupertus Meldenius, 1582-1651)의 모토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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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깃장을 놓을려고 하는 2012-05-24 14:21:19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비본질입니까? 창1장을 하나님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했다 라고 요약할 때, 여기서 6일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면 주어와 목적어, 술어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가요? 창1장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 창3장은 문자적, 비유적 둘 중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성경 내용도 변해왔고, 해석도 시대와 사람에 따라 변하였으며 각양각색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불변하는 것이 있다면 가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