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개신교의 잘못된 만남
신자유주의와 개신교의 잘못된 만남
  • 박지호
  • 승인 2009.04.2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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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이은영 씨, UCLA서 현대 한국 교회 변화 신자유주의로 풀어내

"한국 일부 대형 교회들은 교회 성장을 위해 내부적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사회 변화에 영향을 받아, 무한 성장과 팽창을 시도하는 기업 운영과 유사하게 변화하여왔다. 또한 이 교회들은 현 사회 체제를 수용하고, 성공을 긍정하는 담론을 종교적 윤리 강령으로 만들어 신자들이 사회 변화에 적응하도록 사회화 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은영 씨는 1990년대 한국 기독교의 변화를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연세대학교대학원에서 '신자유주의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형교회의 변화'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은영 씨(현재 SK LA 지사 근무)는 지난 4월 18일, UCLA 한국학연구소가 주최한 '2009 Im Conference of Korean Christianity'에서 자신의 논문을 바탕으로 1990년대 이후 한국 기독교의 지형 변화를 설명했다.

▲ 이은영 씨는 1990년대 한국 기독교의 변화를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UCLA 한국학연구소는 매년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의 연관성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열고 있다. 이번 컨퍼런스 첫째 날에는 한국 기독교 초기 상황에서 미국 교회와 캐나다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있었고, 둘째 날에는 현대 한국 교회의 현상(성장 과정과 선교 전략 등)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이어졌다. 

둘째 날 발표를 맡은 이은영 씨는 신자유주의에 물든 미국 교회의 예를 제시하며, 미국 교회의 변화를 한국 교회가 어떻게 답습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이어 신자유주의가 교회 구조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신념들을 기독교 윤리적 담론으로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분석했다.

기존 연구가 외부적인 요인은 무시한 채 기독교 내적인 요인에만 집중해 한국 교회의 변화를 설명해왔다면, 이은영 씨는 신자유주의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반응해 왔는지를 분석하며, 교회의 구조적인 변화와 내용적인 변화를 지적했다.

다음은 이은영 씨의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한국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1990년대 이후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몇몇 대형 교회들은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고, 한국 교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한국 교회의 성장 침체와 일부 대형 교회의 약진이 두드러진 90년대는 우리나라가 신자유주의 사회로 전화되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불안정한 미래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계발에 몰두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이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시장을 구축하고 그 흐름에 따르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는 경제 철학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두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여긴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사회의 지배 가치가 되면 '효율성'이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부각되면서, 사회는 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구조로 흘러간다. 이런 구조적 변화는 노동 시장의 유연화를 촉진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한다. 불안정한 고용 체계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사람들은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계발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IMF 이후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으로 대표되는 자기 계발 서적과, 인생 경영 프로그램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매뉴얼 식의 인생 지침서는 인생을 불안하게 만든 시대의 흐름을 간과한 채, 개인의 변화에만 몰두하게 만든다.

신자유주의와 개신교가 만나서 낳은 괴물은?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시대에 신자유주의가 급속히 확산됐다. 교회보다는 가족들과의 여가를 즐기는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으로 미국 교회는 쪼그라든 출석률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 이때 피터 와그너 박사를 중심으로 교회 성장학파가 풀러신학교를 통해 등장하면서, 침체에 빠져 있던 미국 교회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한다.

교회 성장학파는 교회 운영에 기업의 경영 이념과 마케팅 개념을 도입한다. 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효율성'이다. 얼마나 작은 자본으로 교회를 크게 불리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교회도 목을 잘 잡아야 하므로 도시에 위치해야 하고, 신자의 욕구를 면밀히 파악해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도록 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교회를 개척할 때는 지명도가 높은 대형 교회가 지교회를 세우는 방식을 제안했다.

교회 성장학파는 교회의 형식뿐 아니라, 설교의 내용까지 변하게 만들었다. 비판적이거나 우울한 현실을 드러내는 메시지는 삼가고 가급적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담는 내용을 강조하도록 했다. 그 1 세대가 로버트 슐러나 빈센트 노말 필이며, 그들의 주 목적이 개인의 사고방식 개조라는 방향성의 제시였다면,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 기독교적 자기 계발서 제 2세대의 문을 열었다. 그는 더없이 불안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일관된 삶의 서사를 써나갈 수 있는 '40일 특급'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일약 유명스타가 되었다. 이 모든 담론들은 비전, 은사, 사명 등의 기독교적인 언어들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관리 감독하고 발전시키라는 자기 계발서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로버트 슐러 목사가 목회했던 수정교회의 예배 모습이다. 예배당에 들어오지도 않고, 차 안에서 편안하게 예배를 보고 놀러 갈 수 있도록, 교회에도 일명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시스템을 적용했다(위 사진). 예배당에 있는 교인들과 주차장에 있는 교인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예배당 귀퉁이에서 설교하는 로버트 슐러 목사(아래 사진).
미국 교회 열심히 뒤쫓는 한국 교회

1990년대 성장이 침체되면서, 한국 교회 역시 미국 교회의 교회 성장 모델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90년대 후반 급격하게 성장한 온누리교회와 높은뜻숭의교회가 대표적이다. 이 두 교회는 90년대 후반 교인 '수평 이동'에 의해 급성장한 교회로서, 한국 교회 내에서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델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소비자 중심 예배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성도의 욕구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예배가 '열린 예배'라는 형식으로 한국 교회에 퍼지게 된다. 온누리교회의 성장은 이런 열린 예배의 보급과도 맞물려 있다. 온누리교회의 경우 85년에 개척한 이후 완만한 성장 곡선을 그리다가,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를 초청해 '열린 예배'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97년부터 이를 실행하기 시작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현대적이면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매력적이고 깨끗하고, 강요하지 않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열린 예배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초 단위로 나뉜 큐시트에 따라 진행된다. 예배하러 온 교인들은 편하게 참석만 하고 돌아가면 된다.

▲ 일부 대형 교회들은 교인들의 다양한 자기 계발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갖가지 프로그램과 예배가 만들어냈다.
"(우리 교회의) 매트릭스 조직은 이렇듯 전문성을 보장해주고 공급받는 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온누리교회 대전캠퍼스 아무개 목사)

기업 중심의 생각을 소비자 중심의 생각으로 바꾸는 마케팅을 교회에 도입해 평신도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교회에서 경영 용어가 남발하고, 소비자 중심의 예배가 등장한다. 다양한 자기 계발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갖가지 프로그램과 예배가 등장한다. 소수를 공략하라는 마이크로 마케팅이 교회에서 실현되는 순간이다.

국경을 초월하는 메가처치의 등장

이런 대형 교회는 교단과 국경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온누리교회의 경우 국내에 9개의 캠퍼스와 해외에 29개의 비전교회가 있다. 온누리교회의 지성전 체제는 중앙 통제 방식이다. 제정과 인력도 모교회에서 관리한다. 이런 지성전 체제는 견제 장치가 없다. 교단과 교파의 규제도 의미가 없다.

이런 대형 교회의 등장으로 교단과 교파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지고, 교회의 브랜드와 스타 목사의 이름만 남는다. 교회의 브랜드가 강조되기 시작하면 새신자 교육이 강화된다. 일반 대기업에서 신입 사원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자유주의에 물든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된다. 변화된 구조 속에서 현 사회를 긍정하고, 사회에서 성공해, 주변 사람들에게 성공의 콩고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패는 개인의 선택과 태도의 문제로 소급될 뿐이다. 교인들이 교회와 설교자에게 들을 수 있는 대안은 결국 가난하지 말고 부자가 되라는 말이다.

▲ 불안이 상존하는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는 교회까지 나서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보수주의 설교와 담론의 유행

불안이 상존하는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는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의 중요성이 필연적으로 강조된다. 선발 대형 교회들이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말했다면,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은 후발 대형 교회들은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친절한 매뉴얼까지 제시하고 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욕심내고 도전해야 할 것은 우리가 부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할 수 있는 대로 강한 자가 되라. 높은 자가 되라. 부한 자가 되라. 뛰어난 사람이 되라. 그렇게 되기를 힘쓰라.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 로마 시민권을 쓴 것처럼 부함과 강함을 주님을 위해 선용하라."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

결국 한국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사회로부터 변화를 받아 성장이 정체된 교회 구조와 내용에 개조하고, 교인들을 변화된 사회 속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화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은영 씨의 발표를 흥미롭게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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