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가난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 양승훈
  • 승인 2012.06.28 21: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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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

산 밑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에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웃 마을까지 갈 수 있는 길은 산을 넘어가는 단 하나의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 길은 좁고, 가파르고, 미끄럽고, 굴곡이 심했습니다. 산을 넘어가는 동안 사고가 자주 발생했고, 다치고 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사고가 났습니다. 부서진 차에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끌어내면서 그 마을에 있던 세 교회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교회 대표들이 모여 오래 논의한 끝에 앰뷸런스를 한 대 구입하고, 사고가 나면 즉시 부상자를 싣고 이웃 마을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을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합쳐 24시간 앰뷸런스 자원봉사에 동참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적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자원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의 수고로 이전에는 죽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사고로 평생 불구로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생겼습니다.

어느 날 외지에서 토목 기술자 한 사람이 마을에 왔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사고 다발 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산길을 당장 폐쇄하고 터널을 뚫자고 제안했습니다. 산 중턱에 있는 식당과 정비공장을 운영하던 마을 시장은 기술자의 제안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터널 뚫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지만 현실적인 대안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위험한 산길을 그대로 뒀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다치거나 죽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런히 앰뷸런스로 사람들을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토목 기술자는 사람들의 생명보다 마을 시장의 경제적 이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시장을 몰아내고 새로운 시장을 선출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개인이 시장에게 직접 말하기 어렵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장도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장로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젊은 기술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젊고 과격한 청년 기술자에게 교회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교회는 오직 복음을 전하고,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소명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구조나 정치 제도라는 세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토목 기술자는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마을을 떠났습니다. 마을을 떠나면서도 그의 마음속 한 구석에 계속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한 행위가 무엇이지. 헌신적으로 앰뷸런스를 운행하면서도 악한 사회 구조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 경건한 행위인가.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더 경건한 행위일까.

이 이야기는 로날드 사이더(Ronald J. Sider)가 쓴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Rich Christians in an Age of Hunger)에 있는 내용을 조금 다듬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좁은 의미의 복음만을 고집하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그리스도인들이 가난을 원천적으로 유발하는 사회적, 경제적 구조를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행동을 지적합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로 인해 좋은 외국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하고, 경쟁력 있는 우리 상품들을 세계 시장에 마음대로 팔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의 약속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세계화가 만드는 양극화 문제를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계적인 산업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들은 국제적으로 무역 장벽을 허물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산업 경쟁력이 없는 나라들은 더 가난해 집니다. 무역 장벽이 있을 때 후진국 기업도 자기 나라에서 경쟁력이 있으면 생존하며 국제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선진국 기업들에게 문호를 열면 후진국 기업들은 견디지 못합니다. 이는 대학생과 유치원 아이가 권투 시합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계를 상대로 경쟁력 있는 제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있는 사람, 기업, 국가는 더 부유해 집니다.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시간, 기회를 갖지 못해 가난으로 떨어집니다. 자국 시장까지 선점한 선진 기술을 가진 기업들때문에 후진국 기업들은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미국이 세계를 압박하면서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재촉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우리나라에는 경제 양극화의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극화가 정치권의 실정(失政)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양극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 정권의 실정과 세계화라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틀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세계화로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갖지 못한 자들은 더욱 더 가난하게 되는 양극화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문제입니다.

자유무역협정이 빈익빈부익부를 가속화 시킨다면,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경건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파에만 관심을 두며, 복음의 내용과 관련한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무관심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자들'이 가난으로 떨어지며 실족한다면 도대체 우리의 경건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앞의 이야기에서 사이더가 말하는 악한 시장이나 이원론적 사고를 가졌던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의 경건이… 우리의 경건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약 1:27·표준새번역)."

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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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2012-07-04 01:43:32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요... 해서 늘 생각하는 것은,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 절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죄에 대해서도 구원에 대해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총체적인 이해가 여전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죄는 인간과 그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도, 해서 구원은 인간 개개인뿐 아니라 그 환경에도 미쳐야 한다는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개인과 상황 속의 '모든 죄'에 미친다는 당연한 이해...

개인의 구원의 키는 이웃의 구원의 키를 넘지 못한다... 뭐 그런 이해가 여전히 필요한 시점입다.

양교수님의 글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