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감별사, 진짜 선교사를 감별하다"
"선교사 감별사, 진짜 선교사를 감별하다"
  • 김종희
  • 승인 2012.07.05 01: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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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니 쑤웅아]에 담긴 남태평양 선교지 취재 이야기

   
 
 

▲ 숫자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사진)의 사역은 그리 화려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지와 다름없는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교회를 세우려면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지경이라는 사실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6~7년 전에 작은 선교 단체에서 감사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단체는 기도 많이 하고 선교사 후원 많이 하는 아줌마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선교 '계' 모임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감사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 역할은 재정 감사(監査)가 아니라 그분들이 후원하는 선교사 감별(鑑別)이었습니다. 저 선교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분들과 같이 인도와 베트남 선교지를 다녀왔습니다. 참 씁쓸한 역할이었지만, 다행히 제가 직접 감별(?)한 선교사들 중에 엉터리는 없었습니다.

2010년 초 어느 날, 홍성사 정애주 대표께서 남태평양에서 사역하시는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에 대해 말씀하면서 그분의 선교 현장을 취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의 이력으로 비추어 보건대, 좋게 말하면 취재 요청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뒷조사 의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4월에 뉴질랜드로 날아가서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2010년 4월 25일 주일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환태평양복음교회에서 섬나라 선교사로 파송되기 위해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한 달 동안 이여호수아 선교사님과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돌아다녔습니다. 93년 시작된 남태평양 선교 사역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입니다. 취재를 목적으로 동행하는 것이지만, 그 기간만은 저도 임시 단기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이날 예배는 일종의 파송 예배였습니다. 저는 원주민 전통 예복을 입었습니다. 피지까지 동행할 이 교회 원주민 사역자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았습니다. 등불을 움켜쥐고 찬송가 '하나님의 진리 등대'를 부를 땐 손이 떨렸습니다. 등불의 열기 탓도 있었지만, 마음도 조금씩 뜨거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 2010년 4월 25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환태평양복음교회에서 섬나라 선교사로 파송되기 위해 안수를 받았습니다(사진 가운데).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생명과 호흡을 그곳에서 느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80년대 중반 대학 시절 비전트립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한 달 동안 선교 활동을 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하네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일본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가 역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반일 감정이 본능적으로 솟구쳤습니다. '여길 왜 왔나' 하는 후회가 물결처럼 밀려왔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기자가 되어서 여러 선교지를 다니며 취재했습니다. 그때마다 대학 시절의 공포가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보려고 침대맡에 앉아서 성경을 펼쳤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을 유심히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직접 주신 분입니다.…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분을 더듬어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내일부터 인간 문명과 단절된 곳으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졸지에 선교사 파송식을 했지만, 그곳에서 나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으로 건방진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생명과 호흡을 그곳에서 느껴 보고 싶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보고 싶습니다.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느껴 보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이 원주민들과 공유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끝까지 이 마음을 놓치지 않고 선교지를 다니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 달간의 오지 선교 현장 취재를 마치고 뉴질랜드를 거쳐서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6개월 동안 바쁘게 살다가, 2010년 12월 한 번 더 현지를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도 기간은 한 달.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남태평양 선교지에서 보냈습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곳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하고 성탄과 새해 인사를 나누는 어색한 체험도 했습니다.

두 번째이니까 조금 익숙해졌을까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모를 때는 덮어놓고 뛰어들었는데, 조금 알고 나니까 머리보다 가슴이, 가슴보다 몸이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필요한 곳이면 거기가 어떤 곳이든 달려가는 것이 선교사의 운명인 것처럼, 사건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어떤 곳이든 찾아가는 것이 기자 아니겠습니까. 선교사와 기자는 자기가 보고 겪고 들은 것을 정직하게 알려야 하는 '증인'(證人)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이여호수아 선교사님과 함께 지난 20년가량의 발자취가 남겨진 오지를 다녔습니다.

'참치 통조림'과 '2차 대전'밖에는 남태평양에 대한 지식이 없던 저에게 이곳은 환상과 악몽을 동시에 안겨 주었습니다. 다랑어와 고래가 휘젓고 다니는 드넓은 바다, 그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울창한 밀림, 물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에메랄드 빛 해안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명조끼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작은 모터보트에 몸을 싣고 바다를 달릴 때의 공포는 타면 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배가되었습니다.

   
 
 

▲ 남태평양 섬나라의 주요 이동 수단인 모터보트. 구명조끼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바다를 달릴 때의 공포는 타면 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배가되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악어가 웅크리고 있는 강을 숨을 죽인 채 지나가면 정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름 모를 독충이 득실거리는 나무에 피부가 닿지 않도록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진공청소기마냥 발을 쭉쭉 빨아들이는 늪지대를 걷는다는 것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오지 생존 체험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말라리아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 끈적끈적한 폭염 가운데서도 옷을 꼭꼭 쟁여 입고 자야만 했습니다. 배가 끊겨서 고립된 섬에서는 다람쥐만큼 큰 들쥐들이 숙소 천장에서 어슬렁거리는 바람에 밤을 지새웠고, 예정된 비행기가 오지 않는 바람에 안식교에서 운영하는 숙소에서 며칠을 묵어야 했습니다.

수도 없이 비행기와 배를 타고, 끝없이 걷고, 함께 먹고 자면서, 선교사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눈물도 많이 보여 주었고, 웃음도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동고동락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믿음의 우정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기초 골조 공사를 했고, 그 위에 이 선교사님이 그동안 쏟은 땀과 눈물과 탄식과 감사거리들을 정직하게 쌓아 올리신 것입니다.

숫자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의 사역 내용은 그리 화려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수십 개의 교회와 신학교를 세우고, 수십 수백 명의 사역자를 키우고, 수백 수천 명의 결신자를 만들어 낸 선교 보고서와 증빙 사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 기준으로 보자면,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군데 한 군데 둘러볼 때마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교회를 세우려면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지경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그마한 모터보트에 몸을 싣고 험한 파도를 타고 거친 늪지대를 헤치고 가야 합니다. 깨진 거울 조각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는 산을 오르내리고, 악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물을 몇 번이나 건너야 합니다. 식인 문화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생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원주민들이 정글용 칼을 곧추세우고는 복음의 길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안전을 절대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순간의 연속입니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부딪혀서 몸 곳곳이 망가지고, 무더위와 말라리아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고, 배고픔과 외로움에 부들부들 떨어야 합니다.

   
 
 

▲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는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할 때는 표정이 달라집니다. 아픈 이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보면,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워지는데 손아귀에 어떤 힘이 몰리는 것 같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배신과 질투, 오해와 미움의 물살은 단 한순간도 그치지 않습니다. 죽을 고생을 해서 간신히 다다른 곳에 머물면서 현지 사역자를 격려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 다음 돌아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려오는 소식은, 사역자가 하나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갔다는 것,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 애써 장만한 물품을 훔쳐 사라졌다는 것, 자기 공만 자랑하고 남을 질투하고 이간질하다가 결국 갈라섰다는 것, 이처럼 가슴 무너져 내리게 만드는 이야기들입니다.

성경은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사 52:7, 롬 10:15)"라고 미화(?)하지만,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의 발 모양과 걸음걸이는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몸만 아니라 마음에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아픔의 흔적이 깊이 새겨 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선교사로서 기본적인 체력 조건이 많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섬나라에서 교통수단은 경비행기 아니면 작은 모터보트나 카누입니다. 저는 8명이 타면 꽉 차는 좁은 비행기 안에서 몸을 좌우로 움직여 가면서 카메라로 바깥 풍경을 찍고 있는데, 선교사님은 휴지 조각으로 귓구멍을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배 위에서도 저는 꼼짝 않고 서서 비바람을 맞으면서 열 시간 넘게 버텼습니다. 선교사님은 멀미를 잊기 위해서 온몸을 쪼그린 채 잠을 청했습니다. 양쪽 무릎 연골이 파열된 바람에 산을 오르거나 강을 건너거나 늪지대를 지날 때면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거나 막대기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목 디스크도 장난이 아닙니다.

그에 비해 저는 선교사 체질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풀을 빚어 만든 수프든 고구마와 무를 적당히 섞은 것같이 애매한 맛을 내는 열매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엄지손가락만 한 굼벵이를 구워 먹기도 즐겼습니다. 머리만 닿으면 언제 어디서건 잠에 빠졌습니다. 입던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원주민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아이들과 신나게 춤도 추었습니다.

비행기와 배도 잘 타고, 걷기도 잘 걷고,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즐기는 저를 보면서 선교사님은 "하나님은 왜 이런 분을 안 쓰고 나 같은 사람을 쓰시나 모르겠다"고 입맛을 다십니다. 심지어 밥을 빨리 먹는 것 가지고도 "딱 선교사 체질이야" 하면서 감탄합니다. 저처럼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는다고 맛있게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은 절대 말라리아에 안 걸린다면서, 여기 그냥 남아도 되겠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궁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습니다. 잘하기는 참 잘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하느냐'는 것이라고 정곡을 찌릅니다. 마음속으로 은근히 잘난 척했는데,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겸손해지기로 했습니다.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는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표정이 달라집니다. 아픈 이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보면,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워지는데 손아귀에 어떤 힘이 몰리는 것 같습니다. 더러운 악령을 쫓아내는 기도를 할 때 내지르는 호통 속에 담겨 있는 단호함과 결연함은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역시 선교사님은 저 같은 사람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선교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취재를 위해서 선교와 관련한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그때 읽은 한 권의 책에 어느 분이 이런 추천의 글을 썼습니다.

"복음의 가치가 단순히 개인 구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그 종족의 운명을 바꾸기까지 역사하는 힘이 있음을 확증해 준다. 필자 역시 몽골에서 사역하는 과정에서 그 민족이 복음이 없어서 망하고 있으며 그 민족을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복음을 심어 주는 것임을 절감했다."

저는 그 단락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과연 그런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종족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복음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그런 능력을 발휘하려면 선교사가 먼저 복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며, 그런 방향으로 선교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 표시를 붙인 것은 한국교회 선교에는 그런 의식도 별로 없고 전략도 희박하다고 평소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은 때가 2010년 2월 22일이니까,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입니다. 2011년 6월에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를 '!'로 바꾸었습니다. 피지에 가서, 똑같은 피지배의 아픔을 안고 있는 피지 원주민과 인도 이주민이 한 교회에서 가족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 가서, 내전으로 인해 원수처럼 지내던 과달카날 섬의 헤브론 부락과 사베카오 부락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서로 얼싸안은 채 화해의 예배를 드리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의식도 약하고 전략도 빈곤하지만,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과 무지를 뛰어넘어서 스스로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확고한 의식과 치밀한 전략 이전에 복음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배웠습니다.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은 아마 그런 의식을 하지 않고 '복음만'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뿌린 희생의 씨앗을 잘 자라게 하셔서 화해와 용서와 회복의 열매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유난히 사랑하시기에 '기자'라는 신분 외에 '선교사 감별사'라는 새로운 별정직을 주신 것 같습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번에 진짜를 감별해 내는 은총과 감동을 누릴 수 있는 호사를 허락하셨으니 말입니다.

김종희 / 한국 <뉴스앤조이> 대표

* 이 기사는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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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2012-07-11 18:28:21
좋은 글 읽게 되어.... 더위가 좀 가셨습니다.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