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드러나는 바른 영성
삶 속에서 드러나는 바른 영성
  • 양승훈
  • 승인 2012.07.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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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이적 같은 것들이 영성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근래에 많이 회자되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찾기 어려운 단어를 하나 든다면 영성이란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성(spirituality)이란 단어를 뜻으로만 본다면 ‘영혼의 품질’, ‘영혼의 성향’ 혹은 ‘영적 센스’를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영적인 존재(homo spiritualis)이며,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영성을 갖고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떤 것이 영적인 성향이고, 나아가 어떤 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른 기독교적 영성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용어는 오랫동안 사용되어왔으며, 그 동안에는 주로 수도원이나 성직자들 중심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인 대화에서 영성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근래에는 영성신학이라는 분야도 등장했고, 출판사 CUP에서는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는 책을 번역· 출간했는데, 여기에 보면 기독교 영성의 다양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공동체 영성, 기도 영성 등 때로는 영성이란 말이 아무 데나 붙어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으로 사용되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영성이란 종래에 사용해 오던 신앙, 경건 혹은 믿음이란 말과 거의 동의어인 듯이 보이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점이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기독교 영성에 대한 간단한 해설로는 이정석 교수의 "영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cf. www.jsrhee.com/WR/spirituality.htm


무엇이 영성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우리 주님께서 가장 깊은 영성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어떤 면이 영성의 기준일까요? 혹자는 예수님의 인격 혹은 예수님의 삶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은 정답이긴 해도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인격이나 삶의 어떤 면 혹은 특성을 영성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질문은 영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래의 질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말의 정확한 의미를 정의하기 곤란할 때는 일련의 부정을 통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뭐가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설명인가를 장황하게 늘어놓다보면 결국 남은 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정답이 되는 것처럼 뭐가 진정한 영성이 아닌가를 찾다보면 남은 것이 진정한 영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영성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흔히 혼동하는 잘못된 영성에 대한 개념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설교와 영성의 관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은 영성이 탁월할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설교는 영성과 큰 관련이 없습니다. 설교를 잘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일상적인 삶이 예수님과 전혀 다른 분들이 많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설교를 잘하는 것은 타고난 은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설교를 잘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 타고난 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 내용을 잘 파악하고 사람들에게 이를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정보 처리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말 할 필요도 없이 청중들을 울고 웃기는 능력은 타고난 개그맨 은사일 뿐 영성과는 무관합니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만 설교를 잘하는 데는 영성과는 무관한 요소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설교와 더불어 탁월한 글을 쓰는 것도 영성과 큰 관련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도 글은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자기 자신조차도 자기가 쓴 글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글 쓰는 사람의 영성이 그가 쓴 글의 감동에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와 같이 글을 잘 쓰는 것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고, 또한 오랜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영성과 관련하여 감동적인 설교나 탁월한 필재보다 더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기적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병자를 낫게 하며, 능력을 행하는 이들은 대단한 영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많은 능력을 나타내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흔히 영적 능력은 영성과 무관한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병은 잘 고친다고 하는데 인격을 보면 예수님과 촌수가 먼 사람들이지요. 특히 예수님과는 달리 자신이 얼마나 많은 환자를 고쳤는지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의 영성은 거의 파산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기적을 많이 일으킨 분들 중에는 결국 자고(自高)해서 기적 때문에 도리어 영성이 황폐해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습니까? 그나마 기도는 영성과 상당한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이며, 예수님도 많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영안 혹은 영적 센스가 탁월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영성이 깊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자기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자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제대로 된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면서 다니는 사람들, 아무리 바빠도 자기는 하루에 적어도 몇 시간은 기도한다고 떠들면서 다니는 사람들은 영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성경 읽는 것은 어떻습니까? 신약에 예수님께서 성경을 많이 읽으셨다는 얘기는 없지만 구약 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지식이 해박한 것으로 미루어 성경을 많이 읽으셨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많이 읽는 것도 영성과 관련은 깊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영성이 깊은 분은 성경을 많이 읽지만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영성이 깊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특히 자기가 읽고 싶은 곳만 읽거나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더 편견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한 예로 조지 부시 같은 사람은 날마다 성경을 본다고 하는데 그의 정책이나 언행을 보면 그는 날마다 ‘내가복음’만 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선행은 어떨까요?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선행을 많이 하셨으니 선행은 영성의 한 부분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고 반드시 영성이 탁월할까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행은 설교나 글 쓰는 것보다는 영성과 관련이 깊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영성의 절대적인 잣대는 아닙니다. 영성이 있는 사람은 선행을 하지만 선행을 한다고 영성이 탁월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영성이라는 모티브가 아니더라도 선행을 할 수 있는 내적, 외적, 때로는 사회적 인센티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도, 글도, 이적도, 기도도, 성경 읽기도, 선행도 영성의 궁극적인 잣대가 되지 못한다면 영성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영성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성경을 따라, 다시 말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누적되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을 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순종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열매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영성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 자신의 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중심을 살피는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정확하게 말 할 수 없습니다. 이후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사람이 진실한 영성을 가진 사람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내적, 외적 증거는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성령의 열매가 드러나는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의 연륜이 성숙한 인격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영성이 깊은, 성숙한 인격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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