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성경 읽기가 만든 '이데올로기'
맹목적 성경 읽기가 만든 '이데올로기'
  • 양승훈
  • 승인 2012.09.14 16: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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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승훈 교수, "바른 성경 읽기가 필요하다"

해마다 추석이나 설 등 큰 명절이 되면 매스컴에서는 명절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를 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입니다. 특히 지난 추석을 전후해서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결혼을 통해 국내에 거주하는 며느리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얘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다인종 국가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외국인들, 특히 그 중에서도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을 돌보는 여러 교회들의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지난 십 수년을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에서 사는 저로서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고통이 남의 얘기 같지가 않습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언어와 문화도 낯선데 외모가 달라서 느끼는 이질감에 더하여 인종차별까지 겹친다면 정말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근래에 저는 인종차별, 특히 성경을 빙자한 인종차별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의 뿌리가 정말 깊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일부 근본주의 단체들의 인종차별이나 악명 높은 KKK단의 인종차별도 노아의 아들 함에 대한 저주에 근거하고 있음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인터넷 블로그 갈무리)

 
 
17세기, 유대인이자 프랑스 개신교도였던 라페이레르는 <아담 이전의 사람들>이라는 저서를 통해 아담과 하와는 첫 인간이 아니며 다만 유대인들의 조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구약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 이외의 민족들은 아담과 하와보다 먼저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주장은 아담과 하와가 첫 사람들이었다고 할 때 설명하기가 곤란한 가인의 아내와 놋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아담의 범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구속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심각한 신학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이 주장은 자연스럽게 인류의 다중기원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중기원론은 영국과 프랑스 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후에 이 이론을 가장 열렬하게 받아들인 것은 미국인들, 그 중에서도 노예들을 많이 부렸던 미국 남부인들이었습니다. 미국이 다중기원론에 특히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부분적으로 흑인들에 대한 차별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졌지만 백인들의 인종적 우월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의 대표적인 한 예가 내슈빌 출신의 인종주의자 페인(Buckner H. Payne)이었습니다.

페인은 1867년, <흑인: 그들의 인종적 지위는 무엇인가?>라는 소책자를 통해 아프리카 흑인들은 열등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 가까운 유인원(subhuman)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성경의 히브리 원문을 자세히 해석한 것을 자신의 어설픈 과학지식과 결합시켜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의 지위가 더 높아지게 되면 사회적, 정치적 재난이 닥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페인은 성경의 창조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흑인은 아담과 하와 이전에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흑인들은 동물계에 속해 있으며, 영혼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흑인이 원숭이와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면서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했던 '뱀'이 바로 흑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의 다른 동물들은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진짜 인간'이 흑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혹독하게 벌하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의 홍수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인해 노아의 홍수라는 대재앙이 왔듯이 만일 미국 정부가 자연과 성경의 명령에 반하여 흑인들에게 정치적 평등권을 부여한다면 하나님이 미국을 반드시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기가 막힌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페인과 같이 성경을 빙자하여 이데올로기를 만든 '폐인(廢人)'들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빙자하여 악한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를 만든 것은 미국뿐만이 아니며,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여러 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남아공이 오랫동안 시행했던 아파트헤이드 정책은 다만 한 예일 뿐입니다. 남아공에서는 공식적으로 1991년에 이 정책을 포기했지만 아직도 곳곳에 인종차별의 잔재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근본주의 단체들의 인종차별이나 악명 높은 KKK단의 인종차별도 노아의 아들 함에 대한 저주에 근거하고 있음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인종차별 외에도 성경을 빙자하여 일어난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이데올로기들의 생성이 그러하듯 성경을 빙자한 이데올로기도 열정이 없는 곳에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성경에 대한 열정이 강한 곳에서 자주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정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강한 열정이 자칫 혁명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면 성경을 있는 그대로 문자적으로 믿는다고 하는 열정이 자칫 반지성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기 위한 바른 영적 분별력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때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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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2012-09-15 11:31:39
마땅하고 정당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근데요... 마지막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기 위한 바른 영적 분별력"이 어떻게 담보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뭐 올바른 영적 분별력이란 용어를 너도 나도 사용하는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