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영화 <도가니>가 던진 충격은 남달랐다. 동명의 소설 <도가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준 분노는 비단 소재의 잔혹함 때문은 아니었다. 한 장애인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이 실제 했다는 것과, 그 일이 '기독교인'이라는 인간의 손에 저질러졌다는 것. 분노한 이들은 '기독교인이 어쩜 그럴 수 있느냐'는 말과 함께, 종교라는 이름에 가려진 추악함을 보았노라고 말했다.
물론 현실이 전부 그렇지는 않다. '도가니' 사건 해결에 앞장선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애인을 바르게 돌보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장애인의 인권과 계몽을 위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뛰어들었다.
▲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 상임대표로 활동 중인 김용목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실 | ||
하지만 영화에서 교회의 현실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봉사와 동정의 '대상'이 된 장애인들은 인격 없는 유기체로 존재하며 인간성을 거세 당해왔다. 인격 아닌 대상에게 왜곡된 욕망을 토해내는 이들. 참란한 범죄로 이어지지 않았어도 장애인들은 늘 날카로운 시선 아래 방치되어 있다.
명분을 쫓아가는 장애인 사역. 장애인을 대하는 바른 태도가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장애란 무엇인가. 성경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예수는 장애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동정의 그늘에 가려진 장애인의 삶을 비추려는 시도가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가 장애를 둘러싼 물음을 쫓아가봤다.
축복 또는 저주 만드는 '시선'
김선근 전도사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4살 무렵 앓은 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김 전도사의 몸은 단단하다. 18살부터 태권도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했다. 처음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어려웠다. 줄넘기부터 시작해 조금씩 나아졌다. 운동을 좋아하게 됐고 이제는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취미가 됐다. 운동은 그를 건강하게 만들었다. 김 전도사는 운전도 하고, 신학교도 나왔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부해 얻은 성과다. 그는 운동으로 건강해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밝게 성장한 김 전도사지만 외로움은 끝이 없었다. 미국으로 이민 온 뒤 장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하다. 자신이 발달장애와 신체장애의 중간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그는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축복으로, 때론 저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면서 일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 장애라는 축복을 감사한다고 한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는 것은 힘이 들었다고 한다.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자신의 장애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마주할 때면 장애가 저주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 전도사가 다른 장애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뉴욕밀알선교단을 처음 찾았을 때다.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을 만나지 못하고 자라는 일은 흔하다. 특히 한인 사회에서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동들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심하다. 시선 때문이다. 부모 본인이 겪을 문화적 차이를 감당하면서 아이를 주류 사회에 편입시키려 노력한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는 마치 죄인처럼 숨어 지내려 한다. 시선 때문이다.
장애를 향한 시선이 축복을 만들기도, 저주를 만들기로 한다. 배려 없는 관심은 장애인의 마음 또 다른 장애를 입힌다. '쯔쯧' 혀를 차며 건조한 동정을 보낸다.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장애인을 무능력자로 만들어버린다. 장애인을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하기보다, 봉사와 섬김의 '대상'으로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 김선근 전도사.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 ||
김 전도사는 고민이 많다. 목사 안수를 받아야하지만 교단(RCA)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교단에선 특별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는 다른 교단으로 옮기기 위해 곧 사역지를 옮기려고 한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자신을 그저 '전도사님'이라고 불러주던 교인들의 따뜻한 목소리와 시선에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장애인 전도사'라는 호칭을 들어야 될지 모른다.
김 전도사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의 비전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좋은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가 푯대 삼는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9장 3절이다. '장애인 으로 태어난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을 다시 되새긴다.
너도 나도 다른 장애, '사랑'으로 덮어야
장애란 무엇일까. 2010년 미국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장애'의 뜻은 "특정 기능(시력·청력·언어·행동)이나 활동 또는 일상이나 사회적 역할(학교·직장) 등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미국 인구의 22% 이상, 노인층(50세 이상)의 53% 정도가 장애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장애인은 미국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비주류' 집단이다.
장애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신체·내부·발달 영역에서의 장애에 따라 나뉜다. 장기기능 장애라고 할 수 있는 내부장애는 당뇨·심장질환·호흡기질환 등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시력·청력에 장애가 있거나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신체장애인들과, 뇌성마비·자폐를 앓거나 지적 능력이 신체 성장에 따르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을 '장애인'이라고 한다. 미주 장애인 사역 단체들은 주로 신체장애인들과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장애인이 생각하는 '장애인'은 어떤 이들일까. 장애인 사이에도 저마다 '장애'를 정의하는 방식과 시선도 다르다.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차원이 존재한다. 신체 능력에 따라, 지적 능력에 따라 서로를 동정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장애인 봉사 활동을 오랜 시간 해온 한 청년은 "발달장애인들은 신체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 사이에도 저마다 서로를 보는 시선이 다를 때도 있따고 한다. 지적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체장애와 발달장애,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각각 다른 정도의 장애가 있다. 서로를 향한 인식이 크게 다른 이유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도 서로 다르다. 무조건 도와야 된다는 인식과, 장애인은 모두 착하다는 인식, 장애인은 뒤떨어졌다는 인식, 그리고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다는 인식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그대로 드러난다. 어떤 이는 장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도우려 든다. 어떤 이는 장애인은 다 착하다며 인간의 죄성을 잊는다. 또 어떤 이는 '장애인은 저주 받았다'며 경멸한다.
장애사역을 해온 사역자들은 비장애인들의 이 같은 인식이 '장애인을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 한다. 장애에 대한 많은 생각과 편견들이 있지만, 정작 직접 대면해서 겪어보질 못했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말은 이처럼 서로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비장애인이 보는 장애도 그 정도가 다르고, 장애인 생각하는 장애도 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장애에 다가서는 일이 간단치만은 않은 이유다. 서로 다른 장애의 그늘에 사는 이들이 아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을 향한 동정의 손길은 때론 단순하고 때론 위험하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 ||
장애인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보다 장애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 목사는 그 이유를 예수에서 찾는다. 예수의 삶에 어울린 장애인의 모습을 떠올리라는 것이다. 예수의 삶에서 멀어져가는 교회의 모습이 장애인과 같은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고나 오해하는 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고 얘기다. (아래 박스 기사 참조)
장애가 보이지 않는 교회
예수를 쫓는 이들, 교회. 미주의 한인 교회는 장애인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미주 지역 대표적인 장애인 사역 단체인 밀알선교단을 기준으로 한인 교회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가늠해보자.
뉴욕은 400여 곳의 한인 교회 중 10개 안팎의 교회가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350개 한인 교회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워싱턴 지역에서는 60여 곳 정도의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 1200여 교회가 있는 남가주 지역에서 남가주밀알선교단을 정기적으로 돕고 있는 교회는 50여곳, 비정기적으로 한 차례 이상 도움을 나눈 곳은 200여 곳이다. 후원 이외에 장애인 사역을 개별적으로 하거나 다른 장애인 단체와 연계해서 사역하고 있는 교회는 손에 꼽힌다.
남가주밀알선교단 단장 이영선 목사는 "최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손 사레를 치던 교회들이 장애인을 위해 도움을 구하면 대부분 긍정적으로 답을 한다. 현재의 후원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이라는 셈이다.
▲ 숫자는 적지만 꾸준히 밀알선교단을 통해 장애인과 만나는 교회들도 있다. 사진은 밀알선교단을 방문한 뉴욕우리교회(조원태 목사). (사진출처 : 뉴욕밀알선교단) | ||
미주밀알선교단은 지역 한인 교회가 장애인 사역을 하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은 장애인들을 위한 주말 활동 장소를 제공하는 것과 교회 안에 장애인 사역부를 두는 것, 장애인 단체를 돕는 것 등이다. 밀알선교단은 이런 사역에 관심 있는 교회를 돕기 위해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전문 사역자를 추천해주는 등 교회와 함께 하는 사역도 해오고 있다.
교회는 예수와 다른 길 가고 있나
예수의 사역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이들이 있다. 중풍병자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그리고 한센병으로 장애를 앓게 된 이들과 귀신 들린 자들이다. 당시 시대 상황이 발달장애의 원인을 모두 '귀신 들렸기 때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일부 학자들은 해석한다. 이 해석에 비춰본다면 예수의 복음은 장애인을 향해 처음 손 내밀었다.
복음을 외치는 오늘날 교회는 장애인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와 상관없는 이들인가, 예수의 현존인가. 예수의 공생애가 손 내민 장애인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 공생애의 창조물인 교회는 어디쯤에서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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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진 기자 / jin23@www.newsnjoy.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