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가, '기복교'인가?
'기독교'인가, '기복교'인가?
  • 진구섭
  • 승인 2007.04.22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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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참된 부흥을 위해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둘 중의 하나

기독교는 '기복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의 재림에 대한 믿음이지, 결코 재물이나 성공에 대한 집착과 같은 기복에 있지 않다. 그러기에 왜곡된 신앙관을 신앙의 본질을 훼손시키며 갖가지 병폐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지난 한해 한인 교계는 잇따른 분규와 가짜 박사 파동 등으로 세간의 눈총을 받았다. 몇몇 교회가 소유권과 교회 분열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였고, 반목 질시의 불씨를 안고 지내는 교회도 적지 않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지탄의 대상으로 추락한 한인 교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초기 한인 교회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웨인 페더슨이나 김원용, 이덕희 등이 저술한 초기 한인 이민사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실은 한인 사회에서 차지하는 교회의 지도적 위치다. 1903년 사탕수수밭에서 최초의 예배가 드려진 이래 교회는 한인 사회의 구심점이었다. 신앙활동은 물론 사회의 단합과 2세 교육, 그리고 독립운동 등 모든 활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가히 '황색의 청교도들'이라 불릴 만했고 그 가운데에 교회가 있었다.

이런 전통은 1960년대 후반 한인 이민이 재개되면서 이어졌다. 새 이민자의 정착을 돕는 사역과 구제, 2세의 한글 교육과 세계 선교, 그리고 탈북자 지원 등 한인 교회는 그 어느 단체도 해내지 못한 일을 감당하며 한인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민 사회가 팽창하고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세속화의 어두운 모습이 깃들기 시작했다. 특히 케리그마(말씀)보다는 풍요와 빈곤에 대한 기독론적인 접근이 널리 퍼지면서, 신앙이 종종 개인의 욕망 달성을 위한 도구적 신앙으로 변질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따라서 역사 속에 임하는 하나님나라의 신비나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에 대한 언급은 점차 희귀해졌다.

사실 한인 교회의 다툼과 분열의 이면에는 물량주의 혹은 기복신앙으로 통칭되는 세속화 현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 분란의 특징이 주도권 다툼이라는 점에서 보다 분명해졌다. 즉 교리에 대한 해석 차이가 아니라 교회 건축이나 건물 구입 또는 재정 운영에 대한 목회자와 평신도 간의 힘겨루기가 자질 문제와 함께 갈등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이다. 이런 다툼은 결국 교회의 재산권을 둘러싼 법정 싸움으로 비화하기 마련이고 이 와중에 용서나 화해와 같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가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 비록 분규에 휘말린 교회가 소수라 할지라도 모든 한인 크리스천은 이런 현상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07년 1월 14일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한국 초유의 대부흥이 일어났던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 자리에 모인 1,500명의 신도들은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는 뜨거운 기도와 함께 회개 운동을 전개했다. 미주 한인 교회가 다시 한 번 부흥을 꿈꾼다면 먼저 이들처럼 신앙의 본질 회복에 주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의 토대는 주술이 아니라 역사며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 섭리의 도구라는 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성경은 한 종이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한인 교계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기독교'인가, '기복교'인가?

* 진구섭 / 맥퍼슨대 사회학과 교수
* 이 글은 LA기윤실 소식지 4월호에 실린 것으로, LA기윤실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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