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형교회가 싫다'
'난 대형교회가 싫다'
  • 한재경
  • 승인 2014.06.2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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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자리에서 초대교회를 꿈꾼다"
   
 

얼마 전 사랑의 교회 목사셨던 고(故) 옥한음 목사의 자제인 옥성호씨의 장편소설 <서초교회 잔혹사, 박하출판사>를 읽었다. 서초교회에 새로 부임하는 담임목사의 이름은 김건축! 그가 부임하면서 선포한 ‘글로벌 미션’은 서초교회를 재편시켰다. 이에 줄타기 하는 부목사들, 그리고 스펙이 약한 주인공의 타락은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책을 읽어 가면서 대형교회의 현실을 실감했다. 주로 200명 이하의 교인이 계신 교회에서 생활한 나로서는 부목사들 사이의 암투는 경험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은 ‘이게 교회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김건축 목사는 두 가지 기준으로 부목사들을 판별했다. 첫째는 충성도다. 그래서 군대 장교 출신을 선호한다. 두 번째는 영어를 얼마나 잘 하냐? 하는 것인데, 글로벌 미션에 따른 것이다. 교역자 회의를 영어로 한다고 난리법석을 떤다.

이 기준에 따라 부목사는 세 개의 군으로 나뉘는데, 핵심 요원, 잉여 요원, 건전지 요원이다. 핵심 요원은 이해가 갈 터이고, 잉여 요원은 퇴출 대상이다. 두 가지 범주에 들지 못하는 불온 세력이다. 마지막 건전지 요원은 있어도 그만, 그렇다고 없어져도 특별히 불편할 거 없다.

주인공 청년담당 목사는 건전지 요원에서 핵심 요원으로 ‘등용’된다. 원로 목사와의 갈등을 봉합할 해결사로 인식된 것인데, 사실 이 또한 오해였다. 아무튼 주인공은 핵심 요원으로 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른다. 원로 목사의 서재에서 수첩을 훔쳐, 김건축 목사의 대규모 건축사업을 무마시키려는 조작에 일조하는데, 일명, 원로목사 수첩 조작사건이다.

소설 이야기는 이쯤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난 대형교회가 싫다.’ 물론 메가 처치는 더 더욱 싫다. 작은 교회지만 대형교회를 추구하는 해바라기 소형교회도 싫다.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담임목회자로 9년간 교회를 섬겨오고 있는데, 그 동안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다. 9년이란 시간의 겹이 이 결론에 차곡히 쌓여있다.

스티브 잡스는 ‘작게 생각하라’에서 소규모 집단의 원칙을 주장했다. 애플의 마케팅 전체를 아우르는 회의는 8명 이상이 참석하지 않았고, 맥 컴퓨터를 담당하는 핵심 팀도 백 명 이상을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켄 시걸, 미친듯이 심플, 68쪽).

대형화의 폐단은 아무리 주장해도 잔소리가 아니다. 2012년 뉴저지 한인교회 공식적인 통계는 239개였다(미주 중앙일보1/14/2013기사). 이 중에 대형교회를 손으로 꼽아보니 10여개 남짓이고, 백분율로는 4.2%다. 까놓고 얘기해서, 대형교회는 메가 쳐치로 가고 싶어 안달이다. 물론 말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건강한 교회는 철저히 자기 비움에 있다. 교인이 갑자기 많아진다는 건 수평이동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증축을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많이 언짢다.

왜 소명에 따른 건강한 분가를 준비하지 못하나? 예산을 분배하고, 지도자를 찾고, 함께하려는 지지자를 찾지 못하나.

이 참에 이민교회 교인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교회를 정하는 우리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들 때문에 교회를 선택했다면, 정신차려야 할 것이다. 이 지점에 우리 신앙의 변색이 있다. 세상도 알고, 우리 양심을 통해 들리는 하나님의 소리도 있는데, 우린 귀가 멀었다. 교회는 내 목적과 편리를 위해 이용하는 곳이 아니다. 깊이 성찰할 일이다.

경쟁과 힘있는 자만이 독차지 하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중산층은 사라졌다. 가난한 이들과 돈이 너무 많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부자 병’까지 출현한 이 기막힌 사회에서 우린 살고 있다. 이민교회도 똑 같이 판박이가 아닌가! 왜 허리 역할을 하는 중간 사이즈의 교회가 전멸해 가고 있는지, 우리 안에 들어온 이 탐욕을 봐야 한다.

왜 이 시점일까?

2월에 경주 리조트 참사, 4월의 세월호 침몰, 그리고 구조자 zero. 요즘 수장된 어린 생명들의 꿈을 꾸었다. 지독했다. 나도 꿈에서 울었으니까.

탐욕은 세상을 이토록 무자비하게 파괴한다. 약하고 순결한 어린 생명을 재물로 삼는다. 2천년 전 예수님을 십자가 재물로 삼았듯이.

주일날 교회에서 속 터놓고 얘기할 사람도 없고, 자꾸 내 옷 매무새를 신경 쓰고, 남과 비교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면, 정말 제자리에 있는지 성찰할 일이다.

사도행전 교회는 달랐다. 모든 것이 막힘 없이 통했다. 음식, 재물, 마음, 영혼까지. 우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안주하지 말고, 참된 교회를 위해 도전하는 ‘깨인 성도’를 기대한다.

한재경 목사 / 하늘뜻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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