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성서를 읽지 않았다
그들은 성서를 읽지 않았다
  • 길벗
  • 승인 2014.06.2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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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의 몰래 읽은 책 5]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계몽주의 시대의 종교학은 고등 종교 원시 종교라는 식으로 종교의 등급을 나누었다. 아무리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어도 기독교 세계관에 익숙한 이들에게 기독교는 고등종교였고 그밖에 고등종교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제도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정비가 잘 된 종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종교학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사용하지 않는다.  교리적으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어떤 이들의 믿음에 대하여 함부로  ‘원시적’이라고 부를 수 없는 까닭이다.  사실 주관이 아니라 객관적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원시적이고 저급해 보이는 것들이 기독교 내에 넘쳐나는데도 이런 용어를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로 보고 자제하기에는 답답함이 있으나 비평과  학문에도 시대성이 있는 법, 꾹꾹 눌러 참는 수 밖에 없다.

진짜로 성서에 그렇게 써있는 줄 아는 사람들

그렇다면 이런 비평은 어떤가? (계몽주의적으로) 저급하고 천박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부를 수 없는 기독교내 근본주의자(이런 용어 조차도 아깝기는 하지만)들은 처음부터 성서를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에게 구약의 이야기는 승전가에 지나지 않고 바울의 이야기는 죄를 무조건 용서하는 싸구려 은총인 것을 보면 성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 싶다면 왜 굳이 성서를 읽는가? 삼국지를 읽어도 하늘이 도운 승전의 ‘기쁜 소식’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막장 드라마를 봐도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가 코끝을 자극하는데 말이다.

이른바 진보적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도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성서를 읽지 않은’ 근본주의자들이 성서를 왜곡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면 그들의 무지를 탓해야 하는데 진짜로 성경에 그렇게 써 있는 줄 알고 진보의 이름으로 히브리인의 배타성, 폭력성 운운하거나 바울이 진짜 무조건적 용서를 이야기한 줄 알고 바울에 흠집을 내고 성서를 난도질 한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이 왜 아직도 신학자 행세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근본주의자들의 성서해석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은 진보 신학계라는 역설은 그들도 성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기도와 시련으로서의 독서

일본의 젊은 인문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은 책읽는 것이 곧 혁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한 번 읽어서는 부족하고 수없이 다시 읽기를 반복하다 보면 텍스트에서 혁명이 나온다는 것이다. 100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 意自見)이 아니라 100번 읽으면 혁명이 일어난다는 독서 백편 기혁명이라고나 할까?

다시 읽기는 처음 읽었을 때 잊어버린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독자들은 책이 가진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성에 두려움없이 자신을 맡길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인생이 바뀌는 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파울 첼란의 시구를 제목으로 가져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부제도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일 정도로 저자는 책읽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사사키 아타루는 그가 대혁명(개혁이 아닌)이라고 부르는 루터의 종교개혁, 무함마드의 혁명, 그리고 12세기 해석자 혁명을 소개하는데 루터에 대한 그의 분석에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그가 말하는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 아니라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이다. 루터는 성서를 모국어로 다시 쓰면서(번역하면서) 지금껏 성서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루터는 수도원 시절부터 쉬임없이 읽어온 성서를 통해 마침내 당시 기독교 세계의 질서가 성서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렇게 성서를 읽은 루터의 저작은 127권에나 달한다고 한다. 루터는 읽고 또 읽고 다시 쓰는 사람이었다.  1517년 루터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의 반박서를 발표하는데  당시 독일의 문맹률이 95퍼센트에 달했지만 즉 누구도 반박서가 뭔지도 몰랐을 것 같지만 그것은 혁명이 되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반박문 발표 겨우 2년 뒤인 1519년 루터 책의 출판 부수가 독일 전체 출판물의 3분의 1, 1523년에는 5분의 2에 달할 정도로 루터의 읽기와 쓰기는 혁명이 되었다. 루터 스스로도 말했듯이  인쇄술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최대의 은총이었다.

루터와 토마스 뮌처

루터의 흠은 농민전쟁에 대한 배신이었다. 루터는 농민의 저항운동을 부추기는 말을 많이 했지만 혁명이 일어나자 그의 든든한 후원자들이었던 영주들의 편을 들며 농민 전쟁을 탄압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비난받을만한 대목이지만 사사키 아타루는 농민 전쟁 조차 종교개혁의 일환이라고 루터 편을 들어 준다.

그 이유는 농민 전쟁을 일으킨 쪽에서 요구한  농노제 폐지, 교회 이자 수입 금지 같은 12조항을  95개조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농민 전쟁을 일으킨 이들에게도 혁명의 본체는 텍스트였다. 농민 전쟁이 진압된 1년 뒤인 1526년 슈바이엘에서 열린 제국회의에서 농민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되었으므로 10만 여명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코 실패한 혁명이 아니었고 기본적으로는 루터가 뿌린 씨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너무 루터 편을 들어 주는 주장같기는 하지만 저자는 텍스트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역사에도 텍스트에 기초한 동학 혁명이 있었는데 농민전쟁 만큼이나 무참히 진압되었다. 농민 전쟁과 동학 혁명 각각에서 텍스트가 어떤 기능을 했는가를 연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특정 주제에 대해 똑같은 성서를 읽고도 의견은 다양성을 넘어 적대적으로까지 발전한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고, ‘용서와 칭의’가 그렇고, ‘동성애’가 그렇다. 과연 누구의 해석이 옳을까? 답은 간단하다.  처음부터 텍스트 앞에서 겸손하고 바르게 그리고 쉬임없이 다시 읽는 사람의 해석이 옳다. 나아가서  성서를 다시 쓰듯이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읽은 사람의 해석이 옳다. 더 쉽게 말하자면 누군가의 성서 읽기가 혁명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혁명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읽기가 옳다.

다음은 파울 첼란의 시 전문이다.

잘라라 그 기도하는 손을

하늘에서 허공에서

눈의 가위로

그 손가락을 잘라라 너의 입술의 가위로

이렇게 접혀진 것이 숨을 삼키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길벗 / <미주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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